지난 주 골드만 삭스는 스몰비즈니스 1만개를 지원하는 자선 프로젝트를 위해 5억달러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거액이다. 그런데도 여론은 별로 호의적이지 않다. 지난해 금융위기가 월스트릿을 엄습했을 때 골드만 삭스도 휘청거렸다. 위기의 골드만을 구해준 것은 공적 자금이었다. 특히 AIG 보험에 쏟아 부었던 천문학적인 액수의 공적 자금은 결과적으로 골드만 삭스의 영업 손실 수십억달러를 막아준 것으로 최근 감사에서 드러났다.
납세자들이 떠안은 부담 덕으로 골드만 삭스는 1년도 안 돼 엄청난 흑자를 기록했다. 영업수익 가운데 올해 종업원들 보너스 잔치를 위해 따로 떼어 놓은 액수만 160억달러에 이른다. 5억달러는 종업원들에게 풀게 될 보너스에 비하면 참새눈물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자선 프로젝트발표에 “PR용”이라며 여론이 시큰둥해 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들은 기부에 인색해진다. 주주들의 이해가 걸려 있으니 그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려울 때 개인들의 기부는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나타난다는 것이 구호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10여년 전 한국이 IMF 사태로 휘청거렸을 때 개인들의 작은 기부는 그 어느 해보다도 활기를 띠었다. 당시 한 중학교에 다니던 어린 소녀 가장이 새벽에 신문 돌려 번 돈으로 월 1만원씩 자기보다 더 어려운 처지의 아이를 후원해 온 사실이 밝혀져 잔잔한 감동을 안겨주기도 했다.
구호단체 관계자들이 ‘작은 이타심’이라고 부르는 이런 소액 기부는 경제적으로 모두가 어려웠던 올 한해도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어려운 사람의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는 사람들은 역시 어려운 사람들이다. 흔히 가진 것이 많아야 남을 도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의외로 경제적으로 풍족하지 않은 후원자들이 많은 것은 이런 공감의 작용 때문이다. 이것은 “나도 이렇게 힘든데 나보다 못한 사람들은 어떨까”라고 헤아려 보는 측은지심이다.
몇 년 전 책에서 읽었던 한 잡지의 광고카피가 생각난다. ‘라지’(Large)라는 제호의 호주 잡지 의 광고였는데 내용은 “For people who think bigger than they are”였다. “스스로의 존재보다 생각이 더 큰 사람들을 위해”라는 뜻인데 인상적인 것은 이 문구 밑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었다.
누가 봐도 거지임에 틀림없는 한 남자가 길거리에 앉아 동냥을 하고 있는 거지 앞을 지나면서 돈을 건네는 모습이었다. 돈을 주는 사람은 비록 거지일지라도 잡지 문구가 말하고 있듯이 주어진 삶의 크기를 넘어서 그보다 더 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요즘 한국에서는 한 여대생의 키 관련 발언으로 불거진 ‘루저’ 논쟁이 한창이다. 이 발언에 열 받은 키 작은 남자들이 소송을 제기하고 논란이 뜨거워지면서, 한 인터넷 패러디처럼 ‘신종 인플루저’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키는 루저와 위너를 가르는 기준이 될 수 없다. 사람의 크기를 결정하는 것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크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힘든 형편이지만 자신의 처지에 갇히지 않은 채 좀 더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있는 사람들은 위너다.
다른 지출을 줄여가며 소액 후원을 계속하는 개인들과 비즈니스가 휘청댈 정도의 불경기 속에서도 불우이웃 돕는 일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는 업주들, 그리고 재정자립조차 버거운 형편임에도 헌금의 일부를 커뮤니티와 나누고 있는 작은 교회 등등은 모두가 위너들이다.
반면 많이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누는 일에 벌벌 떠는 사람들과 거액을 벌고도 환원에 인색한 기업들은 생각의 크기가 존재의 크기에 훨씬 못 미치고 있으니 루저라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과부가 낸 적은 헌물의 소중함과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한 성경의 비유는 진정한 위너와 루저에 대한 아주 명쾌한 설명이라 생각된다.
키가 작아서, 또 가진 것이 별로 없어 루저가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왜소한 삶의 크기에 갇혀 옴짝달싹 못하기 때문에 루저라는 사실을 되새겨보는 계절이 되었으면 한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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