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어온다. 가을바람 그 쓸쓸한 소리. 기러기 떼를 떠나보낸다. 앞마당 나무에 몰아치는 바람 소리. 이른 아침 길 떠나는 나그네가 홀로 듣는다. 중당(中唐)의 시인 유우석의 가을 노래다.
풍요로움의 황금빛도 이미 사라졌다. 잿빛 일색에 빛바랜 무거운 갈색이 점점이 박힌 들녘. 겨울의 문턱에 들어선 11월 풍경의 소묘(素描)다.
그 늦가을의 황폐 감을 에드거 앨런 포는 이렇게 묘사했다. “음울하고 적막한 날이었다. 무거운 구름이 하늘에 걸려 있었다. 그런 그해 가을 어느 날 어스름이 내릴 무렵 황량한 시골 길을 지나…”
모든 것이 시들고 떨어지는 조락(凋落)의 계절이다. 그래서 가을의 노래에는 어딘가 외로움이, 삶의 덧없음을 한탄하는 슬픔이 묻어 있기 마련이다.
이 가을에 한 시인은 기도하게 해달라고 노래했다. 사랑하기를 소망했다. 그리고 풍파를 거치고 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면서 가지게 된 지선(至善)의 존재와의 은밀한 만남을 감사했다. 홀로 기도의 불을 밝혀드는 계절로 가을을 노래한 것이다.
잿빛 모노톤의 단조로운 풍경이 순간 바뀌는 느낌이다. 잘 구운 터키와도 같이 윤이 나는 아늑한 갈색에 빨강, 초록 등의 색상이 겹쳐진다. 훈기가 넘쳐난다. 우수(憂愁)의 계절이 홀연히 기쁨의 계절로 바뀐 것이다. 마치 저주의 주술이라도 풀린 것 같다. 무엇이 빚어낸 기적인가. 감사가 가져온 기적이다.
붉은 글씨로 쓰여 있다. 그 감사절 날짜가 눈에 들어온다. 며칠 있으면 12월, 한 해가 벌써 다 갔다는 상념이 먼저 스친다. 그리고 지나간 한 해가 이상하리만치 길게 느껴진다.
참으로 어려운 시절이었다. 한 해가 넘게 불황의 깊은 그림자는 가실 줄 모른다. 일상이 바뀌었다. 당연시되던 것들이 이제는 내 차지가 아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주변에서 멀어졌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제는 아주 먼 길을 떠났다. 그래서일까.
그 존재, 존재들이 짙은 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했던 일상, 단조로워 지루하기까지 했던 그 일상의 소중함이 새삼 깨달아진다. 그리고 감사에, 나눔에 인색했던 부끄러운, 아주 초라한 자화상을 발견하게 된다.
나눔은 설렘이다. ‘아름다운 글’에서 발견한 문구다. 누군가를 위해 선물을 고르고 정성껏 포장을 한다. 그 행위 하나하나가 설렘의 기쁨 속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나눔은 채워짐이다. 이어지는 문구다. 채워짐을 기다리는 빈자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 빈자리, 부모의 자리가 비어있는 아이들, 자식의 자리가 비어 있는 노인들. 나눔은 그 빈 자리를 채워주는 것이라는 것이다.
나눔은 어울림이고, 순환이라고 했다. 또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고 합리적인 선택이라고도 했다. ‘1달러의 기부가 19달러의 수익을 창출 한다’는 미국의 경제학자 아서 브룩스의 분석을 그 이유로 제시하면서.
나눔은 그래서 희망이고 고난을 견뎌낼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했다.
“나눔은, 드림은 그 자체가 기도다.” 워싱턴 트리니티 교회의 깁 마틴 목사의 정의다. 인간이 만유의 주재에게 돌려드릴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오직 감사의 기도뿐이다.
인간을 향한 그 되돌림의 구체적 표현이 나눔이다. 때문에 나눔은 기도 그 자체라는 것이다. 나눔은 눈물이다. 시인의 정의다. 눈물은 인간만이 가진 최대의 보물이다. 생 떽쥐뻬리의 말이다. 그래서 외롭고 힘든 남을 위해 함께 흘린 눈물은 하늘의 별이 된다고 한 소년 시인은 노래했다.
다형(茶兄) 김현승 시인은 한 걸음 더 나간다. 인간이 신 앞에 드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눈물밖에 없다는 고백이다. 그 눈물은 그러므로 옥토에 떨어진 작은 생명으로 가장 값진 열매라는 것이다.
사랑의 쌀 나누기가 전개되고 있다. 만남의 계절에 밝은 등불 아래 먹고, 마시고 즐기는 사람들을 어둠 속에서 우두커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주위의 작은 자들을 돌보자는 운동이다.
교계가 하나가 됐다. 언론들도 하나가 됐다. 총영사관이 나섰다. 한인단체들이 후원하고 있다. 모처럼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이 운동은 그저 쌀이나 전하는 연말연시의 이벤트가 아니다. 설렘의 운동이다. 빈자리를 채우는 운동이다. 눈물을 드리는 기도 운동이다. 한인 커뮤니티의 새로운 희망이다. 이 축복의 잔치에 모두가 함께 하기를 기대해 본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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