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들이 사회를 이루며 살기 시작한 이후 때때로 속임수와 편법은 생존하는데 없어서는 안 될 수단으로 기능해왔다. 강자들은 더 많은 것을 얻고 성공의 계단을 오르기 위해, 약자들은 약자들대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거짓과 편법에 의존해 왔다.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거짓과 편법에 대한 공동체의 시선은 이런 행위를 억지하는 작용을 할 만큼 엄중하고 따가웠다.
그런데 이런 시선은 1980년대를 기점으로 서서히 사라진다. 이른바 무한 경쟁과 승자 독식을 근간으로 하는 신자유주의가 급속히 확산되면서부터 거짓과 편법에 브레이크를 걸어 온 사회와 개인의 의식은 점차 자취를 감췄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은 별로 문제되지 않는다”는 풍조가 만연하기 시작한 것이다.
바로 이런 풍조는 20여년 지나 발생한 현재의 경제위기를 잉태한 씨앗이었다.
성공의 유혹 앞에서 속임수와 편법의 유혹은 커질 수밖에 없다. 일단 이런 수단을 통해 돈을 모으고 권력을 손에 쥐게 되면 과정과 절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손에 쥔 성공은 적어도 그러한 환상과 착각을 심어준다.
공공정책 연구소를 운영하는 사회학자 데이빗 캘러헌은 이같은 풍조를 ‘치팅 컬처’(Cheating Culture)라고 부른다. 그는 사적인 영역은 물론 공적인 영역에서도 편법과 속임수의 문화가 판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손 쓸 수 없을 정도가 된 불법 다운로드에서부터 전문인들에 의한 수수료 과다 혹은 허위 청구, 수많은 기업들의 회계부정, 스포츠 스타들의 불법 약물복용에 이르기까지 미국사회를 병들게 하고 있는 거짓과 편법의 사례는 끝도 없다.
문제는 이런 풍조가 ‘승자 계급’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승자들이 부와 권력을 독식하면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을 지켜보는 약자들(캘러헌은 이들을 ‘불안한 계급’이라 부른다)은 자신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릴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된다. 안 하면 바보가 되는 분위기 속에서 ‘치팅 컬처’는 플루처럼 번져간다. 속임수는 인간들 사이에 항상 있어왔지만 지배적인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데 심각성이 있다.
캘러헌은 지배층의 속임수와 편법에 특히 더 비판적이다. 그러면서 “최고에게 주어지는 보상이 클수록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무슨 짓이든 불사하려 한다”고 꼬집는다.
이 지적을 대하면서 문뜩 떠 올린 것은 이명박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한 발언이었다. 그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의 자동차 산업 때문에 한미 FTA 재협상을 요구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선거 때 한 발언을 가지고 계속 얘기할 필요가 없다. 선거 때 무슨 애기를 못하나. 그렇지 않은가. 표가 나온다면 뭐든 얘기하는 것 아닌가. 세계 어느 나라든지”라고 답했다.
이런 생각을 하더라도 속에 담아만 두는 것이 보통인데 그것을 거침없이 말로 쏟아 내는 솔직함과 배포가 놀랍다. 목적을 위해서라면 말 바꾸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편리한 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다.
사실 캘러헌이 언급한 미국의 위기는 대한민국의 위기이기도 하다. ‘치팅 컬처’가 미국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곳이 대한민국이다. 치열한 생존경쟁 속에서 편법과 반칙이 용인되고 어떤 경우에는 장려되기까지 한다. 일단 목표를 성취하면 절차상 하자는 얼마든지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다.
미디어법과 관련한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우려되는 것은 법원이 바로 잡아 줘야 할 바람직하지 못한 사회적 현상에 오히려 법률적인 정당성까지 부여해 주고 있기 때문이다. 헌재는 “절차상 하자는 있지만 무효로 할 정도의 하자는 아니다”라고 판결했다. 이 결정은 기괴하고 기만적이다.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논리를 찾아간 흔적이 보인다.
“처리과정은 위법했으나 결과는 유효”라는 판결은 “성공한 거짓말과 편법에 대해서는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말과 같다. ‘치팅 컬처’를 뒷받침 하고 있는 전형적인 논리다. 헌재의 판결은 지금 대한민국을 지배하고 있는 가치관과 문화가 무엇인지를 더 할 수 없이 확실하게 보여 주었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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