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1년에 몇 번 있는 댄스파티 때면 부모들은 은근히 불안하다. 아무리 학교 행사라고 해도 한창 호기심 많은 나이의 아이들이 밤늦게까지 어울리다 보면 ‘금지된 장난’들에 노출될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지난주말 북가주에서는 부모들의 일반적 불안을 훨씬 뛰어넘는 악몽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샌프란시스코 인근의 리치몬드 고교 교정에서 15살짜리 여학생이 끔찍하게 집단성폭행을 당했다.
토요일인 24일 그 학교에서는 홈커밍 댄스가 있었다. 소녀는 저녁 7시부터 열린 댄스파티에 참석한 후 9시30분쯤 나와 픽업하러 온 아버지에게로 걸어가는 중이었다. 그때 한 남학생이 불러서 따라간 것이 소녀에게는 평생 다시없을 불행이 되었다.
교정 뒤편 후미진 곳에서 브랜디를 주는 대로 받아 마신 소녀는 금방 취해 버렸다. 그러고 나서 2시간여 동안 15살부터 20살 정도의 청소년 10명이 돌아가며 소녀를 성폭행하고 때리고 강탈하는 광란이 벌어졌다. 옆에서는 다른 10여명이 둘러서서 낄낄 대고 셀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환호하며 광란에 동참했다.
어린 소녀가 덫에 걸린 짐승처럼 무참하게 학대당하는 앞에서 ‘그만 두라’고 말린 학생, 경찰에 신고한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학교 밖에서 우연히 사건을 전해들은 여성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을 때 소녀는 반쯤 의식이 나간 상태로 하반신이 벌거벗겨진 채 벤치에 널 부러져 있었다. 소녀는 상태가 너무 위중해서 헬리콥터로 이송되었다.
금방 나오겠다던 아이가 오지 않고, 셀폰도 받지 않을 때 그 아버지는 얼마나 걱정을 했을까. 걱정이 끔찍한 현실로 드러났을 때 그 아버지는 얼마나 충격이 컸을까. 딸 가진 부모라면 상상만으로도 몸이 부들부들 떨리는 참혹한 사건이다.
청소년들의 폭력성이 심각하다.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될 일을 구분하는 가장 기본적 윤리의식이 실종된 채 아이들이 자라고 있다. 섬뜩할 정도로 냉혹한 그 아이들의 도덕적 불감증은 국가와 인종을 초월해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한 공간으로 만들고, 그 공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곧바로 전 세계로 퍼지는 시대에 피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요즘 한국에서는 ‘로우 킥(하단차기)으로 꼬마 패는 청소년’이라는 동영상이 유포돼 경찰이 수사 중이다. 10대 남자아이가 길 가던 대여섯 살짜리 사내아이를 느닷없이 뒤에서 걷어차고 달아나는 장면이다. 아이는 충격으로 공중에 붕 떴다가 뒤통수를 땅에 부딪치며 떨어지고, 폭력을 휘두른 소년이나 그 장면을 찍은 자나 재미로 그런 짓을 한 분위기가 역력하다.
남학생들만 폭력적인 것이 아니다. 여학생들의 집단폭행 사건도 남학생들 못지않게 자주 보도된다. 최근 중국에서는 여중생들이 또래 여학생을 집단 구타하고 속옷까지 벗기며 괴롭히는 동영상이 퍼져 문제가 되고 있다. 남을 해치고도 죄의식은커녕 폭행 장면을 셀폰으로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것이 유행병처럼 되었다.
북가주의 리치몬드는 전형적인 저소득층 거주지역이다. 범죄율이 높아서 웬만한 사건에는 주민들이 그러려니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모두가 경악하고 있다. 자신들의 아들들이 저지른 성폭행자체도 충격이지만 2시간이 넘는 긴 시간동안 아무도 말리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믿기 어려운 것이다.
사건 현장에 있던 10대들은 왜 구경만 했을까. 방관자 효과였을 수 있다. 어려움에 처한 사람이 눈앞에 있어도 주위에 사람이 많으면 선뜻 돕지 않는 심리적 현상이다. 나 아니라도 누군가 도우려니 하는 마음이다. 그 외 동년배 압박감 때문일 수도 있고, 분위기에 눌려 용기를 못 냈을 수도 있다는 것이 일반적 분석이다.
하지만 이번 사건의 목격자들은 구경에서 그치지 않았다. 권투경기를 보듯 환호하고 셀폰으로 사방에 전화해 “술 취해 벌거벗은 여자애가 있으니 생각 있으면 오라고 불러들였다. 그 전화내용을 전해들은 여성이 경찰에 신고를 한 것이었다.
사람은 선천적 기질을 바탕으로 후천적 환경의 영향을 받으며 성격을 형성한다. 기질이라는 ‘나무’에서 좋은 가지는 키워주고 못된 가지는 쳐내면서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인성교육이다. TV, 게임, 인터넷에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에 인성을 다듬는 교육이 없다면 어떤 결과가 오겠는가. 괴물 같은 인격 장애자들이 넘쳐날 것이다. 가정에는 가정교육이, 학교에는 도덕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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