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얼굴 모르는 한인들
고통스런 사연 들어주고
함께 슬퍼하며 위로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눠 보세요”
“아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아플 때 내 말을 들어 줄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 들어주기만 하면 큰 위로가 될 것 같은데….”
요즘 신문에서 가끔 만나는 광고문구다. 무언가 싶어 들여다보면 아래 쪽에 ‘주님의빛선교교회’라는 교회명과 주소(2201 W. Almeda Ave., Burbank, CA 91506), 연락처(818-238-9191), 그리고 ‘가까운 교회로 나가 보세요’라는 말이 적혀 있는 게 전부다.
눈길은 끌지만 교회를 적극 선전하는 것은 아닌 이 광고를 구태여 돈 들여 내는 주인공은 ‘보살핌(care)의 목회’에 진력하고 있는 김광빈(53) 목사. 미국교회의 공간을 빌려 작은 한인교회를 목회하는 그가 독지가의 도움으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번민하는 한인 이웃들이 너무 많고 그들을 구하는 게 교회의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어오는 많은 이들의 고통스런 사연을 들어주면서 함께 눈물 짓는다. 깊은 상처를 받은 영혼을 돌보기 위해 애리조나 피닉스까지 운전해 간 적도 있다. 성실하게 아메리칸 드림을 일구던 중 아내의 외도로 가정이 파괴되고 경제위기까지 겹쳐 모든 것을 잃게 되자 아내의 내연남을 죽이고 인생을 끝내고 싶다는 한 한인 남성을 위해서였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빈민가에서 살면서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절규하는 그 남성을 김 목사는 “당신으로 하여금 그 광고를 보게 하고 우리를 여기까지 보내신 분도 하나님”이라며 위로했다.
한번은 자살하겠다는 여성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는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그 여성에게 “회복되면 같은 처지의 다른 사람들을 꼭 도와주라”고 부탁했다.
“교회에 대해 이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너무 몰라준다는 거죠.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만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꼴보기 싫고 답답하다고 합니다.”
‘목회자 아버지학교’에 갔다가 이민목회의 짐을 힘겹게 지고 가는 동료 목사들의 고충을 절감한 그는 그들을 위한 섬김도 시작했다. 목회자 부부들을 고급 식당에서 대접하고 매달 만나 삶을 나누는가 하면 정성어린 선물을 건네는 일을 약 3년째 이어오고 있다. “목회자의 회복이 교회를 살리는 일”이라는 신념으로 약 30여 커플에게 순수하게 사랑을 베풀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다른 교회 집사 몇몇과 교회 인근 홈디포를 정기적으로 찾아가 서성이는 라티노 일용직 노동자들에게 샌드위치, 수프 등을 대접하는 봉사 또한 5년째 계속하고 있다.
그는 늘 교인들에게 ‘사랑의 실천’을 강조한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걸어다니는 교회입니다. 각자 교회의 이름을 짓고 여러분이 직접 섬기십시오.
초대교회 성도처럼, 힘든 사람들과 가진 것을 나눠 보십시오.”
42세에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중형교회 부교역자로 활발히 사역하다 2001년 주님의빛선교교회를 개척했으나 2세들을 위해 1.5세 목사와 교회를 합치고 공동 목회자로 들어갔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사임하고 하와이 열방대학교로 공부를 하러 떠났다가 약 5년전 현위치에서 같은 이름의 교회를 재창립했다.
“미국교회 목사님을 만난 첫날, 장소는 빌릴 수 있지만 필요한 장비는 가져와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PA시스템 등을 사는 데 9,600달러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오더군요. ‘돈이 없어 교회도 못하겠구나’라며 낙담하고 있을 때 전화 한 통이 걸려왔어요. 청년시절을 저와 함께 보낸 한 신자였지요. ‘기도하는데 성령님이 목사님 교회에 1만달러를 헌금하라고 하셔서….’ 우리가 주님의 빛이 되어야 한다는 뜻의 ‘주님의빛선교교회’는 그렇게 다시 시작되었습니다.”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는 삶을 살 때 ‘그릿 시냇가의 엘리야에게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셨던 하나님’이 나의 필요도 채워 주신다”는 그의 간증을 듣는 동안 에밀리 디킨슨의 시 한 구절이 떠올랐다. ‘내가 만일 한 가슴이 미어짐을 막을 수만 있다면/ 나의 삶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
<김장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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