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로 불린다. 신체적으로는 갈대처럼 연약하지만 사고의 힘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무엇보다 강하다는 것이다. 사고는 논리와 기억이다. 과거에 일어났던 일을 살펴 미래의 길잡이로 삼고 이치를 따져 이러저러한 원인이 있으며 이러저러한 결과가 나올 것을 미뤄 짐작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망각하는 갈대’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9년 다우존스 산업지수가 10,000을 돌파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미국 주식은 불과 4년 사이 2배반이나 올랐고 인터넷 관련 주들은 100배, 1,000배씩 오른 것도 수두룩했다.
객관적인 잣대로 이런 수치는 정당화될 수 없다는 지적이 곳곳에서 나왔지만 이는 ‘신경제’ 하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며 낡은 기준으로 이를 재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이란 비웃음에 묻혀 버렸다. 그 뒤에도 다우는 계속 상승, 2000년 초에는 11,700을 기록했다. 투자가들의 유포리아는 절정에 달했고 영원한 번영이 계속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우는 그 후 2년 반 동안 폭락에 폭락을 거듭, 7,000선까지 떨어졌다. 주식 버블이 터지면서 불황이 오고 전 세계가 깊은 침체에 빠질 것이 우려되자 연방 준비제도 이사회(FRB)는 금리를 1%선까지 내려 해결하려 했다.
이자율이 이처럼 내려가자 이번에는 부동산 광풍이 불었다. 가주와 플로리다, 네바다와 애리조나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의 평균 소득으로는 도저히 그런 가격이 정당화될 수 없다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이 또한 이민자 유입 때문에 괜찮다느니 하는 엉터리 주장과 소득과 크레딧을 묻지 않는 소위 ‘묻지마 론’에 가려 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부동산 호황과 싼 금리에 힘입어 다우는 2003년 말 다시 10,000선을 회복했다. 이런 비정상적인 상태가 오래 갈 수 없다는 일부 우려에도 불구, 이번에는 부동산은 왜 떨어질 수 없으며 부동산 붐과 함께 호황도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낙관론이 대세를 이뤘다. 2007년 가을 14,000까지 갔던 다우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와 함께 추락에 추락을 거듭, 올 3월 6,000대까지 떨어졌던 것은 우리가 모두 아는 바다.
그 후 7개월이 지난 지금 다우가 다시 10,000선을 돌파했다. 과거에 대한 기억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전에 다우가 10,000을 넘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졌는가를 생각하고 조심하는 것이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투자가들을 상대로 한 여론 조사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92%가 주식의 추가 상승을 낙관하고 있다. 지난 봄 공포가 시장을 뒤덮었을 때 주식 낙관론자가 2%에 불과했던 것과 비교하면 놀라운 변화다.
돌이켜 보면 주식을 샀어야 할 때는 그 때였다. 팔 사람은 모두 판 상태였기 때문에 오를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지금은 살 사람은 거의 산 상태이기 때문에 오를 여력이 별로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1966년 다우가 1,000선에 근접했을 때도 그랬다. 1930년대 40선까지 추락했던 다우가 30년간 오르자 투자가들의 낙관론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 후 주식은 두 차례의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에 시달리며 제자리걸음을 하다 16년이 지난 1982년에서야 1,000선을 확실히 넘었다. 20년 전 4만에 육박했던 일본 니케이 지수는 이제 1만선을 오르내리고 있으며 1988년 1,000을 넘었던 한국 주가지수는 올 초까지 1,000대였다. 주식이 항상 오르기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거기다 9자로 끝나는 해는 주식 투자에 좋은 해가 아니다. 69년 뒤에는 70년대의 장기 불황이, 79년 후에는 오일쇼크와 두 차례의 깊은 불황, 89년 후에는 이라크 전과 불황, 99년 후에는 하이텍 버블 붕괴로 인한 불황이 찾아왔다. 더더구나 지금은 1929년과 1987년, 2007년의 주가 대폭락이 있었던 10월이다. 투자가들의 극도의 조심이 요구되는 때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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