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석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의 ‘매혹적 도발’
▶ ‘펑키’해진 루이 뷔통
역시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남자다. 마크는.
이번 주 파리 프레타 포르테(Paris pret-a-porter)에서 선보인 루이뷔통(Louis Vuitton) 무대는 첫 캣워크(catwalk)부터 마지막까지 한시도 긴장을 놓칠 수 없는 ‘아름다운 도발’ 그 자체였다. 마크 제이콥스(Marc Jacobs)가 루이뷔통 수석 디자이너를 맡은 지 벌써 수년이 흘러 결코 적잖은 수의 컬렉션을 내놨지만 이번 무대처럼 심장이 멎을 만큼 매혹적이었던 적은 없었던 듯 싶다.
이번 무대에서 마크는 우리가 알고 있던 루이뷔통의 이미지를 완전히 전복시켜 새로운 역사를 썼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실 그 동안 루이뷔통 무대는 루이뷔통의 것도 아니고 마크의 것도 아닌 어정쩡한 그 경계선상을 오가는, 그래서 오히려 클래식 브랜드가 살아 남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처럼 보일 정도였다.
아마도 이미 한 세기가 넘게 루이뷔통이 다져온 조금은 고루한 전통(혹은 역사)과 마크 제이콥스라는 재기 발랄한 히피(그러나 속은 여피) 아이콘이 충돌하면서 어쩔 수 없이 생기는 과도기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시행 착오의 시간들이 흘러 흘러 드디어 마크는 루이뷔통이라는 새로운 운동장에서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친구들과 어떤 놀이를 하면 좋아하는지를 터득한 듯 싶다.
그래서 그는 이번 무대를 통해 그 동안의 어정쩡함을 벗어 던지고 자유로운 영혼으로 우리 곁에 안착했다. 분명 그는 이제 디자이너에게 진정한 너바나(Nirvana)가 무엇인지를 눈치 챈 듯도 싶다. 아마도 앞으로 뉴욕 출신 천재 디자이너가 새로 써 내려가는 루이뷔통 역사를 지켜보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 될 것임에 분명하다.
‘파리 프레타 포르테’ 무대서
1980~1990년대 연상케 하는
재기발랄 감각적 패션 선보여
■ 루이뷔통 무대 살펴보니
아주 드문 일이지만 메인 라인보다 세컨 라인이 훨씬 더 인기 있는 디자이너가 있기는 하다.
비비안 웨스트우드가 바로 그 대표적인 디자이너인데 그의 열혈 추종자들은 그녀의 골드 레이블 보다 오히려 세컨 라인 중 하나인 ‘앵글로 매니
아’(Anglomania)에 더 열광하는게 현실이다. 눈치챘겠지만 마크 역시 그렇다. 뉴욕 컬렉션이 열릴 때면 패셔니스타들이 눈독을 들이는 것은 ‘마크 제이콥스’보다 ‘마크 바이 마크 제이콥스’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두 디자이너는 국적도, 성별도, 연배도 전혀 다르지만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식을 줄 모르는 재기 발랄한 위트의 소유자들이라는 것. 그러다 보니 정색하고, 폼잡고 디자인해야 하는 메인 라인보다는 보다 더 자유롭게 자신의 상상력과 패션 영감을 펼칠 수 있는 세컨 라인이야말로 그들을 ‘물 만난 고기’처럼 펄떡이게 하는 듯 싶다.
바로 그런 물 만난 고기라는 표현이 딱 어울리는 루이뷔통의 이번 무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1980~1990년대 초반의 거리 패션의 재해석이라 말할 수 있겠다.
이번 쇼에서는 총 55명의 모델들이 등장했는데 그들 모두는 똑같은 펑키한 가발을 쓰고 등장했다. 무대에 선 모델들은 마크 특유의 재기발랄한 컬러 플레이를 중심으로 주름잡힌 셔츠, 새틴 코르셋, 핫 팬츠, 레이스 업 레깅즈(lace-up leggings), 가짜 보석 등을 입고 나와 1980년대 패션 아이콘이었던 마돈나와 신디 로퍼의 영감이 곳곳에서 번뜩였다.
그리고 루이뷔통의 주력상품인 백을 놓고 보자면 이번 무대를 통해 드디어 길고도 지루한 토트(tote) 백의 시대가 지나고 바야흐로 크로스(cross) 백의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백의 크기도 가지각색이어서 여행자들이 들도 다닐 법한 큼직한 오버사이즈에서부터 80년대 유행했던 앙증맞은 롱 스트랩 숄더 백 등이 새로운 ‘잇 백’으로 등극할 것으로 보인다.
# 톰보이와 숙녀 사이
80년대 핫 아이콘들로 수놓아진 이번 마크 제이콥스의 무대에서 가장 빛을 발한 캣워크. 그린과 베이지, 작은 체크무늬와 큰 체크 무늬, 핫 팬츠와 수트 재킷 등 언밸런스 한 조합들이 이뤄내는 완벽한 하모니에 이날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다. 그리고 무엇보다 모델이 맨 백팩 뒤에 달린 큼지막한 여우꼬리(?)와 소녀의 그것을 닮은 메이컵이 마치 한 마리의 귀여운 너구리를 연상케 한다.
# 루이뷔통의 새로운 가능성
몸매를 한껏 강조한 페미닌한 미니 드레스와 이제 막 가출한 소녀의 것을 닮은 오버 사이즈 크로스 백이 자유와 불안함을 한꺼번에 표현하고 있다. 모델이 매고 있는 오버사이즈 크로스 백은 지금까지 루이뷔통이 한 세기 넘게 간직해온 보수와 이 브랜드만의 고집을 한꺼번에 무너뜨리는 듯한 ‘의도된’ 파격을 연출했다.
# 천재는 죽지 않았다
한 눈에 마크 제이콥스가 디자이너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하는 작품. 핑크 ‘땡땡이’미니드레스에 유난한 광택을 가진‘오버 더 니’(over the knee)스타킹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플리(Fleece) 소재 드레스에 나일론 스타킹, 물 빠진 데님 백 등 스트릿 패션이 어떻게 오트 쿠튀르로 변신할 수 있는지를 온 몸으로 말해주고 있다.
# 거리패션 파티복으로 거듭나다
또 한번의 탄성을 불러온 캣 워크. 란제리 튜브 탑에 페이턴트 소재 코쿤(cocoon) 스타일 페이턴트(patent) 소재 스커트를 매치해 여성스러움이 극대화됐다. 만약 내년 봄, 패션 피플들이 모이는 트렌디한 파티 약속이 있다면 한번쯤 응용해 볼만 한 작품이다. 극단적인 80년대 거리 패션 소재들을 모아 가장 여성스럽게 표현한 사랑스러운 작품.
# 클래식의 변주
80년대 아이콘들의 집합이 부담스러운 골수 루이뷔통 족을 위해 따로 마련한 디자인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크만의 실용성과 위트가 넘치는 캣워크. 더 이상 캐주얼 할 수 없을 만큼의 자유분방한 카키색 카고 팬츠에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클래식한, 그러면서도 소매 단에서 보헤미안 냄새 물씬 풍기는 트위드 재킷의 매치가 사랑스럽다.
# 더 이상의 컬러 플레이는 없다
레드와 화이트, 블루와 코발트 등 복잡다단한 색의 향연이 자칫 소란하고 분주해 보일 듯 싶지만 마크 제이콥스의 손길을 거친 이들 컬러들은 얌전하게 제 자리를 찾아 아름다운 앙상블을 이뤄내고 있다. 자연스런 실루엣을 이뤄내는 이 실크 재킷은 내년 봄 머스트 해브 아이템 순위권 진입이 유력할 듯.
# 더플 백의 진화
이 캣워크의 포인트는 의상보다는 백. 유명 디자이너들이 외면하는 더플 백(duffle bag)이 어디까지 여성스럽고, 아름답게 진화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정답을 내놓았다. 루이뷔통 모노그램이 색색의 견사로 수 놓아진 면 소재 블루 컬러 더플 백은 그 동안 루이뷔통을 고루하다고 생각했던 영 트렌드 세터들의 마음을 단박에 훔치고도 남을 듯 싶다.
<이주현 기자><사진: A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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