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링 사이클 - 지그프리트’ 아힘 프라이어 감독·에스더 리 부부
지난 26일 세 번째 작품 ‘지그프리트’(Siegfried)를 개막한 LA오페라의 ‘링 사이클’(Ring Cycle)은 다른 오페라 프로덕션과는 완전히 다른 무대연출로 다양한 평을 듣고 있다. 전세계 바그네리안들의 관심이 모두 여기에 쏠려있다고 할 정도의 화제작인데, 그 화제의 중심에 독일인 감독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가 있다. 연출은 물론 의상과 조명 디자인까지 맡아 완전히 새로운 링 사이클을 창조해낸 프라이어는 지난 봄 LA타임스도 커버스토리로 인터뷰했을 정도로 특별한 인물인데, 그의 아내가 한인여성이라는 소리를 들었을 때 나는 펄쩍 뛸 정도로 놀랐다. 부랴부랴 인터뷰를 요청해 ‘지그프리트’ 오프닝을 나흘 앞둔 22일 리허설에 한창 바쁜 백발의 노장과 그의 사랑스런 아내 에스더 리씨를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의 무대 뒤에서 만났다. 두시간이나 계속된 인터뷰는 에스더씨의 유창한 독일어 통역으로 진행됐으며 아기처럼 천진하고 착한 얼굴의 아힘은 모든 질문에 너무도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두사람의 스토리와 링 사이클에 대한 아힘의 이야기를 따로 정리했다.
유럽 오페라 무대 실력파 소프라노 한국인 아내
독특한 무대연출로 주목 받는 화가 독일인 남편
“아힘은 감성적이고, 유머가 넘치고, 예민하면서도 장난기가 가득하지요. 또 공통점이 많아서 서로 말하지 않아도 언제나 같은 감정을 공유하는 것이 놀라울 정도랍니다. 음악가인 나는 귀가 예민하고, 화가인 그는 눈이 예민해 우리의 삶은 완벽한 매치를 이루지요”
에스더 리씨는 17년전 독일로 유학, 1999년 베를린 국립음대 성악과를 우등졸업하고 그해 열린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 1등을 차지한 소프라노 가수다. 2000년 베를린 도이치 오퍼에서 오페라 ‘카르멘’으로 데뷔한 그녀는 독일과 스페인,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폴란드 등의 오페라와 콘서트 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카르멘의 미카엘라, 마적의 파미나, 라보엠의 미미 등을 노래해 실력있는 소프라노로 인정받고 있다.
아힘과 에스더가 사랑에 빠진 건 1년반전. 오랫동안 유럽 예술계에서 일해 온 두사람은 전부터도 만난 적이 있고 서로의 친구들이 겹칠 정도로 활동반경이 비슷했는데 한 전시장에서 만난 이후 연인이 됐다. 얼마전 결혼신고를 올린 두사람은 아힘의 베를린 집을 개인박물관으로 꾸미는 일이 완성되면 오프닝과 함께 결혼식을 올릴 계획이나, 현재는 내년 6월말까지 계속될 링 프로덕션 때문에 8월초부터 1년 예정으로 LA다운타운의 로프트에서 살고 있다.
“LA는 한국음식이 풍성하고 맛있는 곳이라 아힘이 너무 좋아하지요. 처음에 ‘난 한국음식 안 먹으면 노래를 못하는데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아힘이 나보다 더 좋아하고 한국음식만 먹은 후 더 건강해졌어요” 옆에 있던 아힘은 “이렇게 맛있는 한국음식을 먹지 못했다니 내 인생의 너무 많은 시간을 놓쳤다”며 진정으로 애석한 표정을 짓는다.
“에스더는 나의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며 특별한 애정을 표시하는 아힘에게 “나이 차이가 너무 많지 않으냐”고 묻자(아힘은 75세, 에스더는 45세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는 불변의 진리를 상기시키면서 독일 속담에 “나이가 많아지면 더 강해진다”는 말이 있다며 무엇이 강해지는지 알겠느냐며 개구쟁이처럼 웃었다.
원래 디자인을 공부한 아힘은 화가로 활동하면서 그의 생애 동안 150여편의 오페라를 연출했다. 오페라 감독과 그림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두 축으로, 무대를 만들면서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한다.
에스더씨는 “아힘의 작품은 오프닝 때 늘 야유를 받는다”고 말하고 “그의 프로덕션은 수십년이 지나야 이해된다는 평도 있으며 아힘 자신도 야유없는 오페라는 재미없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 ‘마적’만 6개 프로덕션을 만들었고 내후년 라스칼라에서 또 새로운 ‘마적’을 연출할 예정이라는 그는 지난 해 진은숙의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연출도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또한 아힘은 추상표현주의 작가로 1년에 무려 대작 200여개, 소품 1,000여개를 그리고 개인전만 매년 3~4회씩 열 정도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5년에 한번 열리는 유명한 현대미술제인 ‘카셀 도쿠멘타’에 2회 참여했을 정도로 화가로서의 역량도 인정받고 있는 그는 2010년 5월31일부터 베벌리힐스의 에이스 갤러리에서 ‘화이트 섀도우즈’(White Shadows)라는 제목으로 개인전을 갖는다. 링 페스티벌 LA의 일환으로 기획된 이 전시회에서 아힘은 오프닝에서 링 테마의 퍼포먼스를 선보이고 링에 관한 드로잉을 전시하는 한편 링과 관계없는 유화 작품들도 다수 소개할 예정이다.
링 사이클 때문에 LA로 이사 왔다는 에스더 리씨와 아힘 프라이어. 뒤에 보이는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의 샹들리에가 마치 링 사이클을 표현하는 것 같다.
<글 정숙희 기자·사진 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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