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신비롭게 역사한다’(The Lord works in mysterious ways)는 말이 있다. 인류의 역사가 인간의 힘으로 이해하기 힘든 방향으로 흘러갈 때 흔히 하는 말이다. 기독교 역사만큼 이 말의 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도 없다.
기독교가 서양의 중심 종교로 뿌리내리는데 누구보다 큰 기여를 한 사도 바울은 원래 열렬한 기독교 박해자였다. 그러다 다마스커스로 가는 길에 예수의 계시를 받고 졸지에 독실한 기독교도가 돼 일생을 복음 전파에 바치며 나중에는 목숨까지 내놓는다.
토마스 아퀴나스와 함께 가장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로 꼽히는 성 오거스틴도 원래는 마니교 신자였다. 그러다 기독교로 전향하며 방대한 ‘신국론’을 통해 중세 1,000년 기독교 신학의 토대를 닦았다.
80년대 ‘레이건 혁명’ 이후 수십 년 간 미국 정계를 주도해 온 네오콘 사상도 그렇다. ‘네오콘의 대부’로 불리는 어빙 크리스톨은 가난한 뉴욕 유대인 출신으로 젊어서는 급진 좌파인 트로츠키 추종자였다. 평생 아내이자 지적 동반자였던 거트루드 힘멜파브를 만난 것도 뉴욕 시립대의 트로츠키 클럽에서였다.
그런 그가 나중에 가장 열렬한 반공주의자가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성공하면서 서구의 수많은 지식인이 공산주의에 빠졌다. 착취와 계급이 없고 모든 사람이 잘 사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당위는 너무나 그럴 듯 해 보였기 때문이다.
‘7층산’으로 잘 알려진 가톨릭 사상가 토마스 머튼도 한때는 공산주의자였다. 그러던 그가 공산주의 운동의 실상에 환멸을 느끼고 켄터키의 트라피스트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사가 된 것이다. 신에 대한 믿음에 바탕을 두지 않은 어떤 사상도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었다.
어빙 크리스톨은 공산주의뿐만 아니고 60년대 존슨에 의해 시작된 소위 ‘위대한 사회’라 불리는 복지제도에 반대했다. 개인이 자발적으로 사회적 약자를 돕는 것은 찬사를 받아야 할 일이지만 국가가 세금으로 A라는 개인에게서 강제로 돈을 거둬 B에게 주는 것은 역효과만 날 뿐이라는 것이다. 처음에는 감사히 받을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 B는 이를 자신의 당연한 권리로 주장하면서 더 많은 혜택을 요구하게 된다. 그러려면 더 많은 세금을 거둬야 하며 A는 이에 반발, 계층간 알력만 심해지고 근로 의욕은 저하되며 복지 관료 수만 늘어나 국가 경제는 멍든다는 것이다.
그는 그 대안으로 감세를 통해 기업가들의 투자를 촉진할 것을 촉구했다. 기업의 투자가 늘어야 생산성이 향상되고 생산성이 향상돼야 근로자들의 실질 임금이 올라간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실질 임금은 노동 생산성과 비례할 수밖에 없다.
반공과 감세, 복지 혜택 축소는 공화당과 레이건 행정부의 기본 정책으로 1980년대 이후 미국을 이끈 지도 이념이 된다. ‘레이건 혁명’은 그의 어깨 위에 서 있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1992년 집권한 클린턴도 이 골격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1996년에는 공화당도 하지 못했던 웰페어 개혁법에 서명함으로써 사상 최대의 복지 혜택 축소를 단행한다. 이 법은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인 사회 입법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어빙은 스스로를 ‘현실에 두들겨 맞은 리버럴’(a liberal mugged by reality)이라고 불렀다. 이상 사회를 꿈꾸는 것도 좋지만 현실이 받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뜻이다. 이와 함께 그의 가장 큰 신념은 세상은 인간이 의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소위 ‘의도하지 않은 결과의 법칙’이다.
한때 ‘바보들의 정당’이라고 불리던 공화당에 지적 힘을 실어주고 보수주의의 이론적 토대를 단단히 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선 어빙 크리스톨이 지난 주 89세로 사망했다. 어빙의 아내 힘멜파브도 대표적 네오콘 사가고 아들 빌 크리스톨은 ‘위클리 스탠더드’ 편집장으로 역시 대표적인 네오콘 언론인이다. 온 가족이 네오콘인 셈이다.
‘사상은 결과를 낳는다’(Ideas have consequences)는 말이 있다. 길게 보면 사상만이 진정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기독교와 공산주의, 그리고 네오콘의 역사가 이를 입증한다. 그의 명복을 빈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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