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at If’라는 책이 있다. 유명 사가들이 역사적 사건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더라면 지금 세상은 어떻게 변했을까를 논한 책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라는 말도 있지만 이처럼 가상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이 책 저자 중 한 명이 세계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의 하나로 꼽는 것은 앗시리아 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공격이다. 기원 전 8세기 당시 유대 민족은 북쪽의 이스라엘과 남쪽의 유다로 갈려져 있었다. 이스라엘은 유대 12지파 중 10개 지파가 모여 세운 나라로 2개 지파 연합체인 남쪽의 유다와는 국력이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 이스라엘도 기원 전 722년 앗시리아의 침공을 받고 멸망하고 말았다. 앗시리아 왕 산헤립은 기원전 701년 그 여세를 몰아 유다마저 집어삼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공격했다. 앗시리아 대군에 의해 포위된 예루살렘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 망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나 절망에 빠져 있던 유다에게 기적이 일어났다. 어느 날 갑자기 앗시리아 군대가 모두 철수한 것이다. 들판에는 병들어 죽은 앗시리아 군대의 시체가 즐비했다. 사가들은 쥐들이 옮긴 전염병이 군 진영에 창궐하는 바람에 산헤립이 어쩔 수 없이 철군 명령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미물인 쥐도 역사를 바꿀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보여준 사건이다.
이 때 전염병이 돌지 않아 유다가 망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그 후 역사에 흔적도 없이 사라진 이스라엘 10개 지파처럼 유다의 2개 지파도 소리 없이 자취를 감췄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유대교는 제대로 꽃도 피지 못한 채 역사의 뒤안길에 묻혔을 것이고 기독교 또한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없다면 회교 또한 탄생이 어려웠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회교도의 유럽 침공도, 십자군 전쟁도, 종교 개혁도, 9/11 사태도 없었을 것이다. 2,000년에 걸친 서양 역사를 완전히 새로 써야 할 판이다.
유다는 그 후 110여년이 지난 후 바빌로니아에 의해 망하기는 했지만 이 기간 동안 유대교는 유대인들 의식 속에 확고히 뿌리를 내렸다. 바빌론으로 끌려 간 후에도 유대교는 사라지기는커녕 더 단단한 토대를 마련했으며 페르샤에 의해 바빌론 유수가 풀리면서 유대 민족의 민족 종교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 후 역사는 우리가 아는 바와 같다.
이번 주로 월가의 대표적 투자 금융 회사였던 ‘리먼 브러더스’가 망한지 꼭 1년이 된다. 리먼의 몰락은 ‘리먼이 망하면 망하지 않을 금융 기관이 없다’는 투자가들의 불안감을 폭발시켜 전 세계 금융 시장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대공황 때와는 달리 은행 예금은 정부가 보증해주기 때문에 대거 예금 인출 사태는 없었지만 이런 보호막이 없는 머니마켓 펀드에서 돈이 급속히 빠지기 시작했다.
불안해진 은행들이 기업은 물론이고 서로 간에도 돈을 꾸어주지 않자 돈줄이 막힌 기업의 연쇄 도산이 불가피해 보였다. 미국을 위시한 세계 각국 정부의 사실상 무제한의 자금 방출과 구제 금융, 0% 선의 금리 인하, 수천억 달러의 경기 부양안 등 그야말로 극약 처방에 가까운 강력한 조치 덕에 세계 경제는 이제 가까스로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경제가 안정을 되찾으면서 ‘그 때 리먼을 망하게 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하는 가상 시나리오가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등 부실 채권을 파생 증권을 통해 레버리지까지 극대화 해 가지고 있던 리먼을 망하게 한 것은 ‘도덕적 위험’(moral hazard)에 대한 경종을 울린 잘 한 일이라는 소수 의견도 있지만 몇 백억 달러를 풀어 리먼을 살렸더라면 지난 1년 간 겪었던 금융 위기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게 다수 의견이다. 본보기도 좋지만 금융 기관과 기업의 연쇄 도산이 가져올 사회적 파장이 너무나 크다는 것이다.
인터넷과 부동산 버블이 연속적으로 부풀었다 터진 것을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지만 인간은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과오를 깨닫는다. 심지어는 몇 번씩 잘못을 저지르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부동산 파동과 리먼의 몰락이 후대인들이 같은 잘못을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하는 교훈이 되어야 하겠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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