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이 가장 위대한 대통령을 선정할 때 으레 지목되는 대통령의 하나가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무엇이 그를 위대한 대통령으로 만들었나.
간략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대공황이란 위기를 맞아 대통령이 돼 그 위기에 적절히 대응했다. 그 결과 ‘뉴딜’이란 개혁을 통해 나라의 틀을 바꾸다시피 했다. 그리고 2차 대전도 승리로 이끌었다. 불굴의 용기, 탁월한 지도력, 시대를 읽어내는 통찰력 등이 바로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위대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정치적 자산이었다.
루즈벨트와 같은 민주당 출신이다. 그러나 지도자로서의 평점을 놓고 볼 때 그와 거의 대칭선상에 놓여 있는 대통령이 있다. 지미 카터다.
워터게이트여파로 워싱턴 기득권층에 신물이 났다. 그 정황에 등장한 인물이 카터다. 그 때 묻지 않음에, 그 참신함에 미국은 기대를 걸었었다. 그러나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뀐다.
정책의 우선순위 배정부터가 뒤죽박죽이었다. 에너지위기를 최대 쟁점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진짜 위기는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고, 이란 인질사태가 발생했다.
정작 위기가 발생하자 흔들렸다. 결국은 준비가 안 된 대통령으로 판명됐고, 그가 추진한 정책의 온갖 선의(善意)에도 불구하고 카터에 대한 평점은 거의 낙제점에 가깝다.
오바마 대통령이 연방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 연설을 했다. 40여 분간 이어진 연설에서 그는 무슨 메시지를 던졌나. 의료보험개혁의 당위성이다. 그리고 65년을 끌어온 의료보험개혁에 의회가 협조해줄 것을 요청했다.
또 다른 메시지가 있다. 대통령으로서, 지도자로서 그의 위상이 흔들린다. 의보개혁을 둘러싸고 사분오열된 의회의 모습에서 바로 그 위기를 느낀 것이다. 그 의회에 대해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오바마 연설의 또 다른 메시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모양새부터 갖추었다. 연방 상하양원 합동회의에서의 연설이다.
이 같은 스타일의 연설이라는 게 그렇다. 위기를 맞는다. 그럴 때 하는 게 보통이다. 그 양원 합동회의 연설을 통해 오바마는 의료보험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어떻게 보아야 하나. 의보개혁에 정치적 진로가 달렸다.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그만큼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일부 관측통들은 또 다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다름 아니라 “나는 결코 지미 카터가 아니다”라는 외침이라는 것이다.
희대의 정치적 천재란 칭송이 자자했다. 그 무시무시한 클린턴 머신을 깨고 대통령이 됐으니. 그 정치적 천재에 대한 기대의 포괄적 표현이 ‘오바마는 프랭클린 루즈벨트와 닮았다’는 것이었다.
요즘에는 루즈벨트 소리는 쑥 들어갔다. 카터를 닮았다는 소리만 들린다. 벌써부터 실패한 대통령 우려가 나돌고 있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왜 이 같은 반전이 이루어졌나.
“2008년 대선은 1932년 대선과 비교해서는 안 된다. 1952년과 비교해야한다. 그걸 착각한 것이다.” 시카고 트리뷴지의 스티브 채프먼의 지적이다.
경제가 말이 아니다. 월 스트리트에 지각변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불황을 대공황에 비교할 수는 없다. 외양만 비슷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지난해의 대통령 선거는 그러므로 미국이 한국전쟁에 지쳤던 1952년의 대선 정황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이라크 전쟁 피로증세가 만연했다. 공화당 장기집권에, 또 그 부패상에 염증을 느꼈다. 그 반작용이 오바마 당선이라는 관측이다.
미국의 유권자들은 대대적인 변화를 요구한 게 아니다. 변화를 원한다. 그러나 소폭의 변화를 원한 것이다. 그 유권자 정서를 잘못 읽었다. 대공황 와중에 대통령에 당선된 루즈벨트에게 부여됐던 것 같이 대대적 개혁을 원하고 있는 것으로.
‘선거에 이겼다는 승자 멘탈리티에 빠진 결과다’- 오바마가 맞은 정치적 대반전에 대한 또 다른 진단이다. 그 대가를 벌써부터 지불하고 있다. 천문학적 지출을 요구하는 오바마 정책 어젠다에 의구심이 높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의보개혁마저 좌초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후보로서 정치적 흐름을 이끌어가는 것과 불안한 국민과 파당적인 의회를 달래며 다스리는 것은 전혀 별개의 일이다. 오바마의 연설을 이 맥락에서 볼 필요가 있다. 얼마만큼 지도력을 발휘해 자신의 어젠다를 설득시켜나갈지 앞으로 두고 볼일이다.” 한 민주당 정책자문가의 말이다.
오바마는 루즈벨트를 닮게 될까, 아니면 제2의 카터가 될까. 앞으로 보일 그의 리더십이 그 해답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