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9월이 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분다. 나무들에 울창하게 피어있던 잎들이 검푸른 색깔을 하고 있다. 잎들도 무성했던 여름의 풍성함을 보내야 할 때인 것을 알고 있는 듯싶다. 한 달 정도 지나면 잎은 단풍으로 물들고 떨어질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봄여름을 지나고 맞이하는 가을의 문턱이다.
어김없이 오고 있는 계절의 신선함이다. 다행히 뉴욕은 한국의 날씨와 비슷하다. 그래서 뉴욕에 사는 한인들은 계절 감각만은 한국 그대로이다.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있고 잎이 풍성한 여름이 있다. 찜통 같은 한 여름의 더위가 가시면 가을의 서늘함이 찾아온다. 가을이 가면 온 세상을 하얗게 흰 눈으로 덮어주는 겨울이 온다. 우주가 한 없이 넓다 한들 생명이 살아 움직이는 곳은 지구밖에 없다. 큰 우주를 살아있는 우주라고 본다 해도 생명의 아름다움은 느낄 수가 없다. 오로지 지구 안의 삶 속에서만 생명력이 꿈틀댐을 볼 수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자연의 태동과 변화이다. 그리고 인간과 온 동물과 식물
들이 태어나고 사라지며 자연의 품 안에 안기는 모습들이다.
달에 가서 지구를 보면 지구는 푸른 색깔의 예쁜 천을 두른 것처럼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은 온갖 지구안의 풍상을 모두 담고 있다. 작은 청색의 구슬처럼 보이는 지구이지만 지구는 살아 움직이며 온갖 생명을 품어주고 있다. 그 생명 속에 계절이 있다. 그 계절 속에 자연의 변화가 있다. 그 변화 속에 인간은 만물의 중심에 서 있다. 인간이란 생명으로 태어나 만물을 안다. 만물 속에 자신이 있음을 본다. 이 세상 어떤 것 하고도 바꿀 수 없는 생명의 귀중함을 인식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이 있다 하여도 인간보다 아름답지는 못하다.
그 아름다움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인간밖에 없기에 그렇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인간도 추한 모습을 갖고 있다. 6일 후면 9.11이다. 아름다운 지구에, 아름다운 자연에, 아름다운 인간에게 먹구름을 끼얹은 9.11이 다가온다. 아름답도록 창조된 인간들이 그토록 잔인한 일을 벌일 수 있다니.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인간도 추악한 인간, 아주 더러운 인간으로 변할 수 있음은 세상의 가장 슬픈 일이다. 거룩한 속성과 물질적인 속성을 모두 가지고 태어난 인간들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물질도 아름다움의 일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더러움으로 바꾸는 인간들이 있다. 아름다움을 추하게 만드는 인간들. 그들은 인간과 지구의 아름다움을 마구 살상하고 부셔버리는 테러리스트들과 악의 추종자들이다. 인간 모습의 두 얼굴이다.
자연 속에는 인간의 두 얼굴이 존재하지 않는다. 아름다움과 악함을 함께 안고 살아가는 인간들이다. 아름다운 지구가 안고 있는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이 악 속엔 있다. 자연 속에는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 추악함이 엿보이지 않는다. 자연이야말로 계절이 바뀌며 아름다움을 선사하듯, 인간들에게 얼마나 많은 선물을 주고 있는지 모른다.지구가 낳아주고 품어주는 인간과 모든 것들의 생명력만큼 아름다움 것은 없다. 그러니 생명을 위협하는 폭력과 파괴는 절대 있을 수 없다. 9.11같은 인간의 추한 면과 악한 면이 다시 드러나 생명을 살상하는 아픔을 주어서는 안 된다. 종교를 빙자하여 악을 추구하며 폭력을 휘두르는 것은 가장 치졸하고 더러운 짓이다.
지인 중의 한 명이 있다. 그는 9.11때 작은 아들을 잃었다. 그는 지금도 작은 아들이 쓰던 방을 그 때 그대로 해 놓고 작은 아들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금방 오늘이라도 돌아올 것만 같은 아들의 모습을 그는 잊지를 못하고 있다.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 작은 아들이 보고 싶은 그 처절한 마음을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달에서 보면 아름다운 구슬 같은 청색의 지구다. 그 아름다운 지구 안의 생명들 중 인간은 우주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그러나 그렇게 아름답게 태어난 존재들 가운데 9.11을 일으킨 악의 존재들이 함께하고 있음은 슬픈 일이다. 인간이란 생명이 천지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고
벌레보다 추할 수도 있음은 인간의 두 얼굴이다. 9월을 맞아 9.11때 우주보다 더 귀하고 아름다운 생명을 잃어버린 유가족들에게 애도를 표하면 좋겠다. 이렇듯, 지구 안의 모든 풍상을 담아 안고 살아가는 지구의 모습은 오늘도 유연히 돌아가고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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