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무엇이라고 말할까.(What will history say?) 미국의 대통령들이 항상 두려워하고, 또 염두에 두고 있는 질문이다.
그 질문에 특히 민감했던 대통령의 하나가 빌 클린턴이었다고 한다. 20세기의 마지막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그의 재임시절 미국경제는 최장의 호황기를 맞는다. 말하자면 미국은 세계를 압도하는 유일한 수퍼 파워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 같은 전성기를 열게 한 대통령이라면 당연히 A학점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 클린턴은 내심 그런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클린턴에 대한 평가는 그러면 어떻게 나오고 있나. 그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그렇지만 10년이 지난 현재 그 평점은 A학점은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은 무엇으로 평가되나. 그 기준은 다양하다. 도덕성이 우선의 평가기준이다. 결단력도 그렇다. 청렴도도 문제가 된다. 그리고 ‘초법적인 오만’도 부정적 방향에서 중요 평가기준이다. 또 전쟁 같은 대규모 재앙은 초래하지 않았는지도 한 가지 잣대다.
‘대통령은 한 센텐스로 요약해 기억되어야 한다’-. 한 대통령학 전문가의 또 다른 주장이다. 한 문장으로 기억된다는 건 한 시대의 흐름을 내다보면서 신념의 정치를 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때문에 대통령은 모름지기 한 센텐스로 요약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는 ‘위대한’(great)으로 평가되는 대통령들은 대부분 한 센텐스로 정의된다. 워싱턴 대통령하면 건국의 아버지란 말로 요약된다. 냉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레이건이다. 대공황과 세계대전을 모두 승리로 매듭지었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다. 노예를 해방시켰다. 링컨이다.
과(過)가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공(功)이 그 과를 뒤덮고도 남는다. 그래서 위대한 대통령들은 한 센텐스로 요약이 가능하다.
한국으로 눈을 돌리자. 한 센텐스로 요약돼 기억될 대통령은 누구일까. 이승만 대통령이 우선 떠올려진다. 독재자란 불명예를 앉고 해외망명 길에 올랐다. 잊혀 진 대통령이 됐던 것. 그러나 점차 평가가 달라진다. 대한민국 건국의 대통령으로 재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박정희 대통령도 그렇다. 쿠데타를 일으켰다. 반(反)민주적 억압통치를 폈다. 그가 남긴 어두운 유산이다. 그러나 산업화에 성공했다. 그 산업화에 따른 경제발전은 그가 남긴 분명한 업적으로, 박 대통령은 훗날 산업화 성공의 대통령으로 역사 속에 길이 기억될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주 8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투쟁을 하며 생사를 넘나드는 위기 속에서도 인동초(忍冬草)처럼 살아왔다. 그러나 고령에 찾아온 병고를 이기지는 못했다.
이 김대중 대통령에 따라붙는 요약된 평가는 그러면 어떻게 이루어질까. “한국의 민주화에 지대한 공헌을 했고 햇볕정책을 통해 한반도에 영구적 평화정착의 희망을 심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이 고인에 보낸 찬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조의를 표했다.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군사독재에 저항한 민주투사로서의 역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햇볕정책에 대해서는 언급을 피했다. 단지 한반도 평화증진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만 했다.
같은 민주당 출신의 전·현직 미국 대통령의 성명이 그 내용에 있어 이 처럼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무엇을 말하나.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미국에서조차.
민주투사로서 업적에는 이견이 없다. 그렇지만 대통령으로서 남긴 유산, 특히 ‘햇볕정책’으로 상징되는 정책적 유산에 대해서는 계속해 논란이 따를 수 있다는 시사를 던지고 있는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는 햇볕정책이다. 그 정책이 과연 올바른 정책이었을까. 여전히 논란 중으로 ‘진실의 순간’이 한반도로 밀려드는 머지않은 미래의 어느 날, 그러니까 모든 것이 분명해질 때까지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유보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다.
역사적 평가는 그렇다고 치고, 한 시대를 풍미한 김대중이란 정치인의 퇴장은 무슨 의미를 던지고 있을까. 아마도 그의 삶의 족적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일제하에서 태어났다. 성년이 되던 해 해방을 맞았고 해방 공간에서는 좌·우 갈등을, 그 후에는 산업화 대 민주화의 갈등을 몸으로 겪었다. 그는 좌·우 갈등과 산업화·민주화 갈등의 한 상징과도 같았다. 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가 우리의 선택으로 자리를 잡았지만, 우리 사회의 갈등은 아직 끝나지 않고 있다.” 한 국내 논객의 지적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동서갈등, 더 나아가 남남갈등을 날려 보낼 때가 됐다는 것이다. 김대중이란 거목(巨木)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현 상황에서. 고인의 명복을 빈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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