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용은 선수의 PGA 챔피언십 우승을 두고 즐거운 토론들이 만발했다. 그가 아시안 최초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둔 것만도 대단한 데, 그냥 우승이 아니라 ‘황제’ 타이거 우즈를 꺾은 우승이고, 그것도 역전으로 거둔 우승이니 그 전율이 몇 배 더 짜릿한 탓이다.
빌리 그래함 목사는 생전에 “유일하게 내 기도가 한번도 응답 받지 못하는 때가 있으니 바로 골프코스에 있을 때”라는 말을 하곤 했다. 골프란 워낙 변수가 많아서 마음먹은 대로, 기도하는 대로 되는 법이 없다는 푸념 섞인 조크였다.
양용은의 이번 우승에도 그런 ‘변수’의 영향이 없지는 않았을 것이다. 110등(세계랭킹)이 1등을 앞지르는 일은 SAT 같은 학과시험이나 변수가 덜한 다른 종목에서는 거의 상상도 할 수가 없다. 대회가 끝난 후 TV 방송들이 계속 내보낸 경기 하이라이트를 보면 우즈의 공은 얄밉도록 조금씩 빗나갔고, 양용은의 공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하게 떨어졌다. 양선수로서는 이중으로 운이 좋았던 셈이다.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우뚝 두각을 나타내려면 가장 중요한 조건은 무엇일까. 그것은 재능일까, 노력일까, 행운일까 - 양용은 우승 ‘사건’을 계기로 의견이 분분하다.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의 저자 말콤 글래드웰은 노력 혹은 연습을 가장 큰 조건으로 꼽는다. ‘아웃라이어’란 무리에서 뚝 떨어져 홀로 있는 자. 지금 베를린 세계육상 선수권 대회에 출전한 우사인 볼트가 바로 그렇다. 남자 100m, 200m 결승전에서 볼트는 ‘혼자’ 달렸다. 다른 선수들은 한 떼가 되어 아등바등 경합을 벌이는 데 그는 저 만치 앞에서 홀로 달려 세계 신기록을 갈아치웠다.
글레드웰은 대표적 아웃라이어로 고전음악의 모차르트, 컴퓨터의 빌 게이츠, 팝의 비틀스 등을 꼽으며 이들이 탁월한 재능을 타고난 것은 사실이지만 거기에 덧붙여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수적이었다고 말한다. 1만 시간은 매일 3시간 씩 연습해서 10년이 걸리는 시간. 우리에게 익숙한 말로 하자면 ‘10년 공부’가 된다.
무엇이든 죽어라 ‘10년 공부’는 해야 그 분야의 최고수준이 될 수 있다는 이 주장은 샌프란시스코의 신경과학자 대니얼 레비틴박사가 내놓은 이론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음악에 심취해 연주가이자 음반 제작자로 활동하다가 인지 신경과학 전문가가 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음악과 관련해 뇌를 연구해온 그는 사람이 어떤 분야에서 세계적 전문가가 되려면 특정 기능이 거의 무의식 수준으로 뇌신경에 각인되어야 하는데 그렇게 되려면 최소한 1만 시간의 연습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10년 공부’를 하려면 조건이 있다. 몰입하고 즐길 만한 재능, 그리고 연습할 수 있는 환경이다. 빌 게이츠가 70년대 당시로는 최첨단 컴퓨터시설을 갖춘 사립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았다면 오늘의 그는 없었을 것이라고 글래드웰은 말한다. 게이츠의 행운이다.
양용은의 경우는 한국에서 골프장이 흔치 않던 20년 전 제주도에서 자란 것이 행운이었다. 고교 졸업 후 가정형편도 학업능력도 대학갈 처지가 못 되었던 그는 제주도 골프장에서 막일을 하게 된 덕분에 자신의 재능을 발견했다. 물고기가 물을 만난 격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그의 성공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었다.
젊은 시절에 꿈이 없는(없던)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많은 경우 꿈은 ‘10년 공부’로 지속되지 못하고 도중에 흐지부지 사라지고 만다. 현실이라는 장벽 때문이다. 하루 세끼 벌어 먹어야하는 현실에 발이 묶이기도 하고, 세끼 밥 먹을 만하면 ‘이제 됐다’ 싶어 현실에 안주하기도 한다.
양선수가 청년시절 아버지의 권유대로 골프를 버리고 굴착기 기술을 배웠다면, 프로 선수가 되고나서 생활이 힘들어 레슨 프로로 주저앉았다면, PGA 챔피언십은 그의 잃어버린 꿈에 불과했을 것이다.
‘아웃라이어’는 극소수의 특출한 사람들의 몫이다. 하지만 뭔가를 이루려면 시간을 쏟아야 한다는 점에서 누구도 예외가 없다. 이룸의 내용이 다를 뿐이다. 평균 수명은 점점 길어지는데 세끼 먹는 일로 일생을 마친다면 시간에 미안할 것 같다. 뭔가 하고 싶은 일, 하면 즐거운 일에 시간을 투자했으면 한다. ‘하루 3시간, 10년’ - 이제부터 시작해도 늦지는 않을 것이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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