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적이다. 동시에 구역질이 난다. 창피하다. 그리고 걱정스럽다’-. 벌써 한 주가 지났나. 미국여기자 북한 억류 사건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게. 그와 관련된 개인적인 소회다.
“갑자기 불려나가 어느 방의 문을 여는 순간 클린턴 대통령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북한서 풀려난 미국 여기자의 일성이다. 구원의 기사가 나타났다. 찬란한 은빛 갑주를 입은 그 기사는 다름 아닌 전 대통령이었다.
당사자들로서는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을까. 왜 국가라는 게 존재하는가. 그 답을 극명히 보여주었다. 전직 대통령이 죽음의 땅 북한까지 가 두 명의 여기자를 비행기에 태우고 함께 돌아오는 모습은 그래서 정말이지 감동적이었다.
무엇이 좋은지 연상 헤벌쭉해 있다. 클린턴과 대좌한 김정일의 모습이다. 300백만을 굶겨 죽이고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리고 실수로 북한 국경에 잠시 발을 들여다 놨다는 이유로만 미국 여기자들에게 12년 중노동형을 때렸다.
그 김정일이 클린턴과 만난 자리에서 연신 웃음을 날린다. 인질외교, 강제추행외교가 성공했다는 만족감에서인가. 전 미국대통령의 존재가 북한체제를, 또 자신의 입지를 강화시킨다는 콤플렉스의 발로에서인가.
그 대좌의 그림에서 불거져 보이는 것은 북한이라는 나라의 천한 국격(國格)이다. 그리고 김정일이라는 인간의 반(反)인륜적인 인격이다. 그래서 구역질이 난다.
“두 명의 여기자들에게는 전 대통령이 구원의 기사 역할을 했다. 북한에는 여전히 1,000명이 넘는 한국인 등 수많은 피랍자들이 있다. 이들을 구할 기사는 없을까. 답은 ‘노우’로 보인다.”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그 많은 재벌 중 할리웃 억만장자 스티브 빙처럼 납북자들을 구하기 위해 자기 돈을 들여 비행기를 띄울 재벌은 없을 것 같다.”
한 미국 언론의 지적이다. 거기에다가 이런 보도도 나온다. “넉 달 넘게 북한에 억류돼 있는 개성공단 근무자 구명을 위한 서명운동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자원봉사자들이 명동에서, 광화문에서 가두 서명캠페인을 벌인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마치 남의 나라 일인 양….” 치부가 훤히 드러난 것 같다. 얼굴이 화끈 거리는 느낌이다.
어찌됐든 굿 스토리다. 전 대통령이 직접 날아가 북한에 억류된 두 명의 여기자를 구해 냈으니. 인권을, 한 생명,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아메리칸 스토리의 귀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슬며시 의구심도 든다. 벼랑 끝 외교에, 자국민도 인질로 내모는 체제가 북한이다. 그 북한이 응분의 대가 지불 없이 여기자들을 석방했을까 하는 점에서다.
많은 전문가들의 시선도 바로 이 부문에 쏠려있다. 여기자 석방을 위해 지난 수개월간 미국과 북한은 물밑작업을 벌여왔다. 그 협상의 뒤안길에서 미국은 그러면 무엇을 양보했을까.
클린턴은 오바마 특사자격으로 평양을 방문했다, 여기자들 석방 조건으로 식량과 원유를 공급하기로 했다 등등 여러 가지 관측이 제기된다. 관측통들이 특히 주시하고 있는 것은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이 북한과 양자대화를 갖기로 하는 등 상당한 양보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클린턴 영접 차 북한 측 6자회담 수석대표 김계관이 공항에 모습을 나타낸 것과 관련해 강력히 대두된 관측으로, 이것이 사실이라면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미국의 입장이 달라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은 북한 핵문제 회담에 일본인 납치문제를 연계시키려는 일본 측 입장을 문제해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배격해 왔다. 이것이 말하는 건 다름 아니다. 자국시민이 납치되자 미국의 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아직까지 그 진위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 같은 의문 제기는 뭔가 한 가지 가능성을 강력히 시사하고 있다. 국민의 생명이 걸려 있다. 그럴 경우 강대국들의 태도는 종전과 달라진다. 그래서 모종이 협상이 혹시 있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점이 걱정스러운 것이다. 북한 문제는 종착역을 향해가고 있다.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 때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은 어떤 입장을 보일까. 관련해 새삼 떠올려지는 게 미국과 중국의 ‘빅딜설’이다.
수년 전부터 나온 이야기로, 이는 결코 잠복성의 이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이번 ‘클린턴 깜짝 쇼’가 전해준 또 다른 교훈이 아닐까. 특히 미국과 중국, G-2시대 개막을 맞아.
그 진실의 순간에 대처하는 방안은 그러면 무엇일까. 그것은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 맞는 국격(國格)의 회복이다. 인권에 기초한 확고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 민주체제에 의한 강력한 통일의지를 대내외에 과시하는 것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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