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묻는 답은 불화의 불씨
사실 답하는 습관 키워야
“내 차 키 어디 있는지 못 봤어요?” “그걸 왜 나한테 물어?” “저녁 아직 멀었어?” “지금 하고 있는 거 안 보여요?” “지금 쓰레기 좀 갖다 버려주면 안 돼?.” “내가 놀고 있어?” “왜, 또 머리 아파?” “내 얼굴 보면 모르겠어요?” “연속극이 그렇게 재미있어?” “당근이지.” “소녀시대가 그렇게 좋아?” “당신은 SG 워너비 좋아 안 해?”
우리는 언제부터인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는 않으나 이렇게 가까운 사람, 특히 아내나 남편이 묻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주는 대신 되받아 묻는 방법을 우리의 가장 중요한 대답방식으로 만들어 놓았다. 차 열쇠가 어디 있는지 모르면 그냥 “모르겠는데”라고 대답하는 일은 거의 일상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저녁 아직 멀었느냐는 질문에 아직 멀었으면 “아직 멀었다.” 다 되어 가면 “곧 다된다.” 한참을 기다려야 한다면 “많이 기다려야 해요.” 주변에서 이렇게 답하는 아내, 남편, 또는 엄마, 아빠는 뭔가 좀 잘못된 사람처럼 느껴진다. 머리 아프냐는 질문에는 아프면 “응, 많이 아퍼” 아니면 “아니 괜찮아” 이렇게 사실대로만 대답하는 일은 가정의 일상생활 대화 속에서 사라져버렸다.
인간의 언어 역사에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우리가 늘 함께 몸을 맞대고 사는 사람들이 질문을 해 오면 그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해 주는 대신 항상 이렇게 되받아 묻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질문에 올바르게 대답할 줄 몰라서 하지 않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필자가 수퍼바이저로 있는 정신건강센터의 인턴들과 부하 직원들에게 가정에 가면 아내와 남편의 질문에 어떻게 답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결같
이 “Why you ask?”라는 꼬리표를 단 되묻는 방식의 답을 한다고 한다. 그러나 그들이 직장에서, 사회생활에서 이렇게 행동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부하직원이나 인턴들 중에서 필자에게 이런 방식으로 되물어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니까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한다는 이야기가 되겠다. 묻는 말에만 대답을 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될 때 그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부하 직원들도 어떤 문제가 발생해서 책임을 추궁하게 되면 대답의 방식이 금방 달라진다. 질문으로 되묻는 경우는 드물지만 뭔가 이유, 즉 꼬리표가 달리기 시작한다. 이 꼬리표의 배경에는 “내 책임이 아니다” 또는 “나는 잘못이 없다”는 책임을 부인하는 강한 방어본능이 작용하고 있다. 차 열쇠 보았느냐는 질문에 “그걸 왜 나한테 물어?”라는 대답은 “나는 책임이 없다”고 부인하는 것으로 인간의 무의식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대답을 하는 이유는 자신이 모르는 일은 마치 자신이 그것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도록 길들여져 왔기 때문이다.
“It’s not my fault.” “내 잘못이 아니다.” 또는 “I didn’t do it.” “내가 하지 않았다.” 이 두 가지 방식의 부인은 필자가 상담하는 어린 아이들이 가장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잘못을 인정하였을 때 따를지도 모르는 책임추궁은 무조건 피하고자 하며 점차적으로 누가 묻는 질문에 답을 하는 대신 되받아 묻거나 꼬리표를 달아서 자신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하는 방어본능적 행동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방법은 인간의 정상적 인지기능 발달과정에서 2세에서 7세까지 가장 많이 사용되다가 8~9세를 전후해서 차츰 수그러드는 것으로 ‘Defense Mechanism in Action’의 저자 Phebe Cramer 박사는 보고하고 있다.
식사준비 다 되어 가느냐는 질문에 “나 지금 하고 있는 거 안 보여?” 이 대꾸는 “아직 멀었다”고 사실을 말했을 때 책임추궁을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어린 아이들의 방어본능에서 나오고 있다. 나의 잘못을 강력하게 부인하지 않았을 때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책임추궁으로 내가 감당하여야 할 심리적 고통을 막아주는데 그 목적이 있으며 그로 인한 아픔을 감수하지 않겠다는 인간의 지극히 보호본능적인 동기가 깔려 있기에 이것은 조건반사적으로 사용하게 되며 자신도 모르게 나온다.
이런 방법으로 스스로를 보호하지 않아도 쓰러져 죽거나 심리적 고통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까지 이르지 않는다는 것을 어린 시절의 발달과정에서 누군가가 일깨워 준 적이 없는 경우 이 방법은 그만 어른이 되면서까지 그대로 간직하게 된다. 어린 아이들의 방법을 어른들이 사용하니까 집안이 편안해질 수가 없다.
‘Marriage Clinic’의 저자 John Gottman 박사는 상대방 질문에 되받아 묻는 질문이 이혼의 중요한 사유가 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당신 대답이 뭐 그래?” 하게 되면 그 가정은 “정말 마누라 성질이 왜 저래?” “남편이라는 사람이 도대체 아내 배려할 줄 몰라.” 이런 식으로 두 부부가 다툼 잘 날 없는 불행한 가정으로 변모하고 만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시오!” 연속극이나 영화를 보면 수사관이 책상을 주먹으로 내려치면서 용의자를 추궁할 때 가장 많이 쓰는 말이다. 묻는 말에만 대답하는 일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 인지발달 과정에서 우리 부모나 선생님이 묻는 말에 내가 아는 대로 만 대답해도 우리의 신변에 끔찍한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아서 그렇지 사실은 묻는 말에 내가 아는 것만 답해도 내 신상에 우리가 어린 시절에 상상하였던 그런 끔찍한 일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그리고 불안, 두려움과 같은 심리적 고통이 감당하기 어렵지 않을까 염려되지만 막상 해보면 속이 후련하고 불안감도 사라진다. 또 묻는 말에 내가 아는 대로만 대답하면 아내나 남편이 수사관처럼 노발대발하고 “내 그럴 줄 알았다!” 해서 더욱 더 추궁하고 질책할 것 같으나 오히려 그런 일이 수그러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것은 자주 해보지 않아서 처음에는 어색할 뿐이지 매일 사용하게 되면 익숙해지게 된다. John Gottman 박사는 묻는 말에 대답하는 것 한 가지만 잘해도 “불행한 가정”이 “행복한 가정”으로 변모한다고 한다.
리차드 손 <임상심리학박사·PsychSpecialists, Inc.>
(213)234-8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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