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종 찹쌀순대’파는 이동차량 눈길
더덕 캐는 할머니들 “월악산 게 최고”
여주 ‘박상궁 맛집’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산채비빔밥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길 따라 내려가면서 찬찬히 보니 계곡물을 논밭으로 흘려보내는 물길이 나 있다. 물은 밭을 적시고 농부의 마음까지 촉촉이 적실 터. 감나무 두어 그루 서 있는 농가 풍경이 먼 산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이다. 냇가에 고급 콘도가 즐비하다. 휴가철에는 계곡이 사람들로 가득하겠다.
월악산 국립공원 사무소에 들어가 관광안내서를 한 장 얻었다. 국토종단 하는 중이라고 했더니, “걸어서 가시는 거예요?” 하며 젊은 직원이 놀란다.
덕주산성을 지난다. 고려시대 항몽 유적지라고 설명문에 적혀 있었다. 이성을 지켜내느라 얼마나 많은 민초들이 죽어갔을까. 항몽의 마지막 보루였던 진도 용장산성에 갔던 일이 떠올랐다. 거대한 힘에 맞서 몸을 던져 싸우다 스러져간 사람들, 그들이 지켜낸 이 산천.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산성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양지바른 곳에 꽃들이 오불오불 피어 있다. 봄볕이 있는 곳은 어디나 저렇게 꽃이 핀다.
길가 한적한 곳에서 사람들이 음식을 먹다가, 술 한 잔 하고 가라며 손짓한다. 봄나물 캐러 청주에서 온 분들이다. 집에서 담가 온 매실 술이라며 권하기에 석 잔이나 받아마셨다. 술은 삼 세배란다. 술 한 잔에 시 한 수로 산천을 주유했다는 김삿갓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얼큰한 기분으로 월악대교를 건넜다. 왼쪽은 충주, 오른쪽은 단양 제천으로 갈라지는 삼거리다. 36번 도로를 타고 제천 쪽으로 걸어간다.
동달천과 광천이 합류하여 빚어내는 두물머리를 지나, 언덕을 올라가는데 반대편에서 오던 자동차가 그늘 밑에 차를 세운다. 차 옆면에 “토종찹쌀순대 매운야채순대”라는 선전문구가 보인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순대를 파는, 이동 순대장수다. 가까이 가보니 차 위에 작은 확성기가 얹혀있다.
그늘 밑에 앉아 쉬고 있는 주인 아저씨에게 말을 건넸다. 쉰 살쯤 보인다. 아내는 집에서 순대를 만들고 본인은 돌아다니며 장사를 한단다. 수입이 얼마쯤 되느냐고 물었더니, 노가다 품삯 정도이며, 두 내외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대답하지만 제법 괜찮은 모양이다. 어떻게 이런 독특한 아이디어를 얻었냐고 했더니, 하던 일 실패하고 고심하던 중 이 일을 생각해 냈다고 한다. 두드리면 열리게 되는 모양이다.
길가에 한방약초 화단이 조성되어 있고, 그 옆에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이 당귀는 한방약초 화단으로 조성되었습니다. 절대 캐가거나 훼손하지 마시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행복한 추억을 담아가시기 바랍니다” - 한수면장-. 지방자치시대를 살고 있다는 실감이 난다.
좀 쉬어가고 싶은데 마침 월악 휴게소가 보였다. 식당주인이 친구와 연탄불에 노가리를 구워 소주를 마시다가, 나에게도 한 잔 건넨다. 주인은 외지에서 이사와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데 장사가 시원치 않아 걱정이고, 친구는 근처에 사는 분인데 대학 나온 아들이 취직이 되지 않아 고민이라고 했다. 전답이 많지 않아 농한기에는 건설현장에 나가 막일을 해왔는데, 며칠 전에는 할 일도 없으면서 습관대로 새벽에 집을 나와 갈 곳 없어 방황하다가 아들한테 들켜버렸단다. 애비 심정을 자식들이 알기나 하는지 모르겠다며 한숨을 쉰다.
때마침 함께 걷다 돌아간 아내가 잘 도착했다며 전화를 걸어왔다. 그리고 아들과 전화통화를 하고 나니 기분이 남다르다.
오래 전 아이가 옹알거리는 소리로 처음 “아-빠”을 불러 주었을 때의 가슴 벅차오르던 순간을. 내 책상 모서리에 자주 이마를 찧던 녀석이 어느 날 면도기를 사달라고 했을 때 느꼈던 아비의 뿌듯한 심정을. ‘아버지 술잔에는 눈물이 절반’ 이라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기쁨도 슬픔도 속으로 삭여내는 사람이 아버지인 것이다.
할머니 한 분이 머리에 무언가 이고 오시기에 물었더니 다래순을 캐오는 중이란다. “다래순?” 잘 모르겠다. 산나물을 채취하여 내려오는 아주머니 세분을 만났다.
월악산 더덕은 단단하며 맛과 향이 뛰어나고 몸에도 좋아 이 지방 최고 특산품으로 꼽힌단다. 개미수석 농장 옆 활짝 핀 꽃나무 아래서 사진을 찍어드렸다. 모두들 행복한 웃음을 웃으신다.
해가 설핏 기우는데, 잘 곳을 아직 정하지 못했다. 어디 가서 몸을 뉘어야하나.
숲이 울창한 송계계곡 사이로 흘러내리는 맑은 물에 발을 담그면 어느 새 자연과 함께 호흡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월악산에서 만난 아낙네들. 이곳의 특산물인 더덕을 캐 시중에 내다 판단다.
고려시대 항몽 유적지인 덕주산성.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몸을 바친 선조들의 넋이 느껴진다.
정찬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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