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나는 지인으로부터 특별한 종강파티에 함께 가보지 않겠느냐는 부탁을 받았다. 성인영어 교실에서 한 학기를 마치는 날이니 틀림없이 파틀락 파티를 할테고. 여느 ESL 교실과 그다지 다르지 않을 광경을 떠올리며 난 굿이나 보고 떡이나 얻어먹을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주소를 받고 보니 바로 내가 다니는 미국교회 건물이었다. 이미 지난 학기부터 교육예산 감축으로 반이나 줄어든 시간을 보충하느라 그의 선생님은 아침저녁으로 이곳을 빌려 나머지 시간을 자원봉사로 꾸려가고 있었다. 그동안 교회의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던 캐롤 선생님을 또 다른 자리에서 다시 만난 것은 우연이었다.
그녀는 교실 가득히 아름다운 음악을 준비하고 예쁘게 테이블을 꾸미느라 분주했다. 이윽고 손에 손에 음식을 싸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갓 구워낸 빵과 이국적인 향이 나는 풍성한 음식들로 식탁은 가득했다. 마침내 스물 대여섯 명의 학생들이 둘러앉아 차례차례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무얼 배우고 얼마나 성장했는지 한 사람, 한 사람, 사뭇 진지하고 떨리는 목소리로 인사를 나누었다.
이곳에 처음 올 때 간호사가 되기를 꿈꾸었던 베트남 아가씨는, 마침내 얼마 전 그 시험을 통과했다고 했다. 모두 진심으로 축하의 박수를 보냈다. 다음은 이란 아저씨 차례였다. “난 늘 생약과 약초에 관한 관심이 많아요. 지금은 주유소에서 일을 하느라 바쁘지만 꼭 자연의학에 대한 공부를 계속 하고 싶어요.” 그러자 그녀는 “멋진 생각이에요, 혹시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하고 싶다면 마더스나 홀섬푸드에 있는 생약코너에서 일해 보면 어떨까요”라며 격려했다. 300여 시간이 넘게 열심히 출석한 그에게 주어진 증명서가 내 생각엔 어느 대학졸업장 못지않게 값져 보였다.
가장 뜨거운 박수를 받은 사람은 스쿨버스를 운전하는 멕시칸 아저씨였다. 그는 지난 크리스마스 바쁜 일정 속에서도 멋진 산타 옷을 입고 교실에 나타나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었다고 했다. 그의 꿈은 자동차 정비사였다. 마지막으로 캐롤 선생님의 차례였다. 그녀는 왠지 슬픈 얼굴로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더니 “어젯밤 우리 교육구에서는 앞으로 2년 동안 성인영어 교실 문을 닫기로 결정했어요. 슬프지만 우리 아이들의 교육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어떤 신을 믿든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이상 하느님은 우리들에게 또 다른 문을 열어 줄 거예요.”
그리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진한 포옹을 하며 진심으로 그들의 미래를 축복해 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쉬움과 슬픔을 넘어 서로에게 축복의 인사를 나누기 시작했다. 심지어 처음 본 낯선 사람인 나를 덥석덥석 끌어안는 게 아닌가. 나는 무언가에 홀린 듯했다. 그곳은 어디에나 있을 법한 영어 교실이었지만 하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은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내겐 교실 어디선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돌멩이 스프 냄새가 풍겨나는 것 같았다.
돌멩이 스프(stone soup)는 오래된 민담이다. 세계 여러 나라 어린이들의 글을 모은 유명한 잡지, ‘STONE SOUP’도 이 이야기를 본떴다. 아주 옛날, 전쟁터에 나갔던 세 병사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어느 낯선 나라를 지나게 되었다. 몹시 굶주린 그들은 먹을 것을 구했지만 아무도 그들에게 음식을 나눠주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병사들은 큰 솥에 물을 채우곤 돌멩이 세 개를 넣고 끓이기 시작했다.
이상하게 여긴 동네 사람들이 몰려오자, 그는 맛있는 스프를 끓이는데 소금과 후추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건 내가 가져올게요.” 한 아이가 냉큼 가져왔다. 그 다음 아줌마는 양배추와 당근을, 그 다음 할아버지는 감자와 고기를 안고 왔다. 급기야 돌멩이 세 개를 넣고 끓이기 시작한 스프는 이 세상 어느 부자의 식탁에 오른 음식보다 더 맛있는 스프가 되어 온 동네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고도 남을 만큼 넉넉해졌다. 착한 뜻을 가진 한 사람에서 시작된 마법이 우리 모두를 변화시킨 신비한 파틀락 파티처럼.
이미경 / 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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