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이라는 이유로 툭하면 시비에 손찌검이었다. 그 날도 너덧 명이 시비를 걸어왔다. 참다못해 아예 죽기로 각오하고 싸웠다. 그러자 더 많은 한족(漢族) 학생들이 몰려들었다.”
“그 때 전혀 예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다. 한 학생이 나를 돕고 나선 것이다. 둘이 등을 맞대고 정말이지 처절하게 싸웠다. 얼굴만 어렴풋이 알던 그였다. 전교생이 거의 한족인 학교여서 그 역시 한족이려니 생각했었다. 알고 보니 그는 나와 같은 조선족이었다.” 50에 가까운 한 조선족 남성의 이야기다. 일찍 조선족 마을을 떠나 한족 밀집지역에서 자랐다. 거기서 지낸 중학교 학창시절은 집단 따돌림에, 폭력의 연속이었다고 했다.
“어릴 때라 자세한 건 잘 몰랐다. 하여튼 나가놀다가 종소리가 들리면 빨리 들어오라는 게 어른들의 당부였다. 어느 날 종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밭에서 일하던 아버지, 삼촌 등 모두가 어느 틈에 집으로 달려왔다.”
“모두 숨겨둔 무기- 일본군이 사용하던 구식 총에, 칼 등으로 기억 된다 -를 들고 나섰다. 그러자 우리 마을을 포위해온 한족 폭도들은 기세만 올리다가 돌아갔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또 다른 조선족 동포의 회상이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어릴 때(문화혁명기 무법시대) 편벽된 곳에 있던 작은 조선족 마을이 중국인들의 습격으로 쑥대밭이 되고, 심한 경우 집단학살을 당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들었다.”
인용이 길어진 건 다름 아니다. 또 유혈사태다. 티베트폭력사태가 엊그제 같이 느껴진다. 이번에는 중국 신강(新疆)성 위구르 자치구 우루무치에서 또 한 차례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1년이 멀다고 벌어지고 있는 이 잇단 유혈사태에 뭔가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 거려서다.
중화(中華) 지상주의라고 할까, 극히 배타적인, 그래서 국수주의에 가까운 중화 민족주의의 추악한 얼굴이 떠올려지고 있는 것이다.
사망자만 156명이다. 부상자도 1,000명이 넘는다. 그리고 1,400여명이 체포됐다. 천안문 사태 이후 최악으로 기록된 우르무치 유혈사태 관련해 중국 관영매체가 밝힌 공식 수치다.
진상은 여전히 알 길이 없다. 그런 가운데 보도의 앵글이 극히 일방적이다. ‘위구르인은 모두가 폭도이고, 한족은 모두가 무고한 희생자’란 식이다. 이를 반증하듯이 시위자들에게 얻어맞아 피를 흘리는 한족 여성의 모습만 집중 반영된다.
그러면서 뭔가를 자극한다. 한족의 프라이드다. 위구르인에 대한 적개심이다. 이를 위해서는 팩트(fact)마저 왜곡된다. 사망자가 156명 거의다가 한족이라는 보도부터가 그렇다.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 둘 불거지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위구르인 사망자만 400명이 넘는다는 게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왜 북경당국은 이토록 강경진압에, 또 한족의 감성을 자극하는 ‘프로퍼갠더’성 보도로 일관하고 있을까.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적지 않은 관측통들의 지적이다.
경제사정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불만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소수민족이 아닌 한족 사회가 보이고 있는 불만이다. 그렇지 않아도 통치의 적법성을 상실한지 이미 오랜 게 중국 공산당이다. 그러므로 뭔가 시급한 대책이 필요하다. 희생양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날뛰는 ‘위구르인 폭도’와 그 ‘희생자 한족’의 이미지 만들기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중국의 관영 TV는 중무장한 군부대가 투입되는 것을 마치 해방군 인 양 환영하고 있는 우르무치의 한족의 모습을 계속해 방영하고 있다. 교묘하기 이를 데 없는 선동이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 문화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시피 하다. 그게 중화(中華)적 멘탈리티다. 퉁명스럽다고 할 정도다. 거기다 대고 민족주의를 선동한다. 그 팽배한 중화민족주의의 우선 피해자는 위구르인, 티베트인, 그리고 조선족으로 불리는 중국내 50여 소수민족이다.
그로 그치는 게 아니다. 거대 중국과 이웃한 한국 같은 인접국들이 그 다음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권위주의 형 체제는 내부불만이 고조될 때 외부에서 돌파구를 찾기 마련이므로. 그래서 중화민족 지상주의는 더욱 위험한 것이다.
“…그들은 중국 국가를 부르며 거리로 나섰다. 손에는 쇠파이프에, 벽돌, 칼 등을 들고. 한족들이 보복에 나선 것이다. 단결을 외친다. 그 외침은 이내 ‘위구르족을 죽여라’는 구호로 바뀐다.” 이코노미스트지가 전하는 우르무치 유혈사태의 또 다른 단면이다.
그 모습이 섬뜩하게 느껴진다. 수 천 명의 중국 학생들이 떼 지어 나왔다. 그리고는 한국인, 외국인을 가리지 않고 폭력을 휘두른 것이다. 심지어 경찰관에게 까지. 북경올림픽 성화봉송 기간 중 서울에서 발생한 중화 지상주의 폭거 장면과 어딘가 자꾸만 오버랩 되어서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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