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 깊은 고학력주의 여전
줄대기 악습 퇴치 노력할때
“인생은 한낱 걸어 다니는 그림자, 무대 위의 얼뜬 배우. 거들먹거리고, 초조해 하고, 그리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Shakespeare는 Macbeth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개개인의 춤사위는 다르지만, 우리는 모두 다 같이 죽음으로 행하는 동반자이며, 누구에게나 끝마침이 있다.
필자가 노 대통령의 자살소식을 접한 것은, 학기 말 성적을 제출하고 두 여동생과 함께 스페인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LA 공항에서 기다릴 때였다.
한나라의 대통령으로 5년 동안이나 집권했던, 그것도 “Mr. Clean”으로 자처했던 사람이, 임기 말에 권력형 뇌물 수수에 연루되어 검찰의 소환을 앞두고 행해진 자살이었다는 보도였다.
일차적인 경악과 함께, 대통령도 결국은 한낱 인간이며, 대통령의 자살행위는 ‘대통령적’이지 않고, ‘너무나 인간적인’ 행동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Sense and Sensibility”(이성과 감성)이라는 Jane Austen의 작품에서처럼, 사람들 가운데에는 이성이 지배하는 형과 감성이 더 많이 지배하는 형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도 때에 따라서는 다분히 감성적·감정적이 될 수도 있다고 본다.
또한 대다수의 한인들에게는 대통령으로서 직무수행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성적인 행동으로 일관해야 한다는 전직 대통령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고 본다.
뇌물수수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했었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현재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들 가운데에는 자신보다 수십 배나 많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자들도 있고, 심지어는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고, 절에 유배까지 당했던 자도 있지만, 여전히 생존해 있지 않은가!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선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보통사람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의 질곡을 뼈저리게 체험한 사람이었던 만큼, 소외된 자의 편에 서서 정책을 펴리라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노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초로 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었다. 국민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하려고 노력했고, 언론의 자유를 최대한으로 보장, 전임 대통령들과의 차별을 시도했었다. 저소득층 출신의 장애자들을 위한 대학 학자금 보조도 대한민국 교육 역사상 최초로 실시했었다.
또한 그의 재임동안 국민 소득 2만달러를 돌파했고, 연간 4~5%의 경제 성장을 계속 유지했으며, 상대적인 빈곤감·박탈감을 뼈아프게 겪고 있는 소외 계층을 줄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노무현 대통령이 지향했던 이상과 한국적인 현실에는 너무나 큰 거리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학력을 선호하는 주지주의(intellectualism)가 팽배한 한국 사회의 엘리트와 언론은 다수 국민의 선택으로 대통령직에 선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방에서 고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옆집 아저씨 같은 보통사람이 대통령이 된데 대한 “나는 당신보다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는 우월감과, “대통령 얕보기 식”의 연속적인 질타와 흠집 내기 식으로 5년 내내 일관했었다. 심지어 꽤 알려진 어느 일간지의 고정 칼럼니스트는 노 대통령 재임 5년 동안, 한 번도 긍정적인 글을 쓴 적이 없을 정도였다.
노 전 대통령 자신이 절제되지 않은 언어와 행동으로 그와 같은 추세에 자주 빌미를 제공했다고도 보지만, 동 시대를 살아온 필자는 한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마음껏 향유하는 표현방식과, 그들의 철저한 반체제, 반정부 주의의 태도에 때로는 적지 않게 놀랐었다.
전반적으로 거칠어진 한국인의 언어 사용과도 관계가 있겠지만, 심지어는 “노 바보”니 “놈현스럽다”는 은어까지 유포될 정도였다.
그리고 검찰의 표적수사였다는 말도 있지만, 한국 언론도 노 전 대통령 자살에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고 본다. 언론은 법정에서 흑백이 가려지기 까지는 당사자를 죄인 취급을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법정에서 혐의가 인정될 때까지는 언론지상에서 유죄로 단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검찰의 언론 플레이에 편승한 노 대통령 때리기 식의 한국 언론은 ‘언론의 자유’를 무절제하게 남용함으로써, 언론 재판을 통해 감성적이고 심약한 전직 대통령을 자살로까지 몰고 갔다고 볼 수도 있다. 더욱이 대통령 자살 소식이 전해지자 사상 유례없는 500만이 넘는 인파가 추모행렬에 참가했다는 소식이었다. 결국 언론의 매질과 검찰의 과잉수사는 민심의 행방을 모른 행보였다는 얘기이다.
또한 이번 기회에 한국 국민은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 있다. 한국인 스스로가 앞으로는 줄대기 식의 뇌물수수는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예로부터 한국인의 정서는 교육적인 성취를 통해 권력을 잡고, 부귀와 영화를 누려야 된다는 공식에 연연해 왔다. 일단 지인이 높은 권좌에 앉으면 뇌물을 바쳐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 것으로 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안 되는 일도 없고, 되는 일도 없다 하지 않는가.
그러나 설사 아는 사람들이 뇌물을 바쳤다 해도 그 돈을 고아원이나 육영사업 등 여타 깨끗한 사업에 기부하도록 종용할 수도 있었다. 되돌려 보내지 않고 받은 책임은 본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세간에는 “도피심리로 자살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으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택한 살신적인 행위”라는 주장도 있다. 어쩌면 노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특유의 사회, 정치, 문화의 소산이라고도 볼 수 있다.
죽음은 영원한 단절인 것을. 죽은 자는 말이 없다.
클라라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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