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레이시스트’(racist) 나라다. 민주주의는 제 3세계에는 맞지 않는 오직 미국에만 어울리는 독점적 제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국을 신군부가 통치하던 시절, 그러니까 80년대 중반쯤으로 기억된다. 뉴욕타임스의 전설이자, 당시 진보세력의 대부 격이었던 에이브러햄 로젠털이 ‘독재국가 기행’이라는 장편 에세이를 통해 레이건 행정부를 비난한 내용이다.
우익 독재정권을 결코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다. 그런 레이건 행정부의 이른바 ‘조용한 외교’는 이중 잣대의 인종 차별주의 외교라고 신랄히 비난하고 나섰던 것이다.
‘왜 한국이라고 민주주의가 안 된다는 말인가’-. 암울하던 그 시절, 로젠털의 이 주장은 일종의 예언처럼 들렸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은 마침내 민주화의 계절을 맞이한다.
퍽 오래 전의 에세이를 떠올린 건 다름이 아니다. 보수니, 진보니 하는 개념이 요즘 들어 상당히 혼돈스럽게 들려서다.
수백만이 거리로 나섰다. 민주화의 외침과 함께 평화의 시위가 벌어진 것이다. 그 시위대를 향해 결국 총격이 가해졌다. 무차별 테러가 감행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고, 다치고 죽었다. 그 과정 내내 오바마 대통령은 그러나 극도로 말을 아꼈다.
민주주의의 최후 보루다. 그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오바마의 이 같은 처신은 과연 올바른 것인가. 이란 민주화의 불꽃이 꺼져가면서 관련해 새삼 논쟁이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이란 사태로 미국의 집권 엘리트 내에 깊은 분열이 노정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다.
먼저 존 메케인이 포문을 열었다. 뒤이어 내로라하는 보수논객들이 모두 거들고 나섰다. 이란의 민주세력을 적극 지원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진보세력의 반론도 만만치 않다. 보수 쪽의 주장은 미국이 개입한다는 빌미를 주어 오히려 이슬람 혁명정부의 입지만 강화시킨다는 것이다.
진보의 본래 트레이드마크는 이상주의다. 보수는 극히 현실주의적이다. 외교노선도 그렇다. 자유와 민주주의와 인권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부패한 독재 권력과의 타협을 타기시 한다. 그게 진보의 입장이다, 아니 진보의 입장이었다. 앞서 인용한 로젠털의 경우처럼.
그 진보세력이 현실주의를 주창하고 나섰다. 인권이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은 쏙 빠졌다.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해법을 제시하면서도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그러면서 독재 권력인 이란의 이슬람 혁명정부와 타협을 통해 미국의 현안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어느 쪽이 과연 옳은가. 판정이 쉽지 않다. 오바마의 현실주의는 어쨌든 상당히 스마트한 방식으로 보여서다. 민주화의 공수표를 끊기보다는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게 낫다는 점에서.
현실주의 쪽 입장은 그렇지만 어딘가 궁색해 보인다. 민주주의 수호와 민주주의 확산은 미국외교의 전통적 어젠다다. 게다가 결국 유혈사태로 이어진 이번 이란사태는 이슬람 신정(神政)체제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면서 여러 가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는 생각이다.
폭압적 체제는 그 속성상 항상 국민과 전쟁상태에 있다. 스스로의 생존을 위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쏴 죽이는 체제다. 무엇을 말하나. 해외는 물론이고 자국민을 향해서도 테러를 서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슬람 신정체제의 진짜 얼굴이란 사실을 이번 사태는 보여 준 것이다. 그런 체제가 그러면 민주화 시위에 물러날 것인가. 답은 노우다. 권력유지를 위해서는 천안문사태 같은 유혈사태도 마다하지 않는 체제란 사실을 분명히 알린 것이다.
그 이슬람 신정 체제는 한 마디로 도덕적으로 파산을 한 체제다. 그 체제와 타협을 통해 핵 문제 등 현안문제를 해결한다. 그게 가능할까. 그 아이디어 자체가 순진한 발상이다. 아니면 착각일 수 있다. 이번 사태가 던지고 있는 또 다른 시사점이다.
체제 유지를 위해 자국민도 얼마든지 희생시킬 수 있다. 그러니 외국인, 또 적으로 간주한 세력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런 체제를 포용한다는 발상이 무리인 것이다. 대안은 그러면 무엇일까. 아무래도 레짐 체인지가 아닐까 본다.
결론은 이렇다. 핵이 문제가 아니다. 체제가 바로 문제인 것이다. 문제 해결의 방향은 결국 한 가지로 모아진다. 문제 그 자체인 체제를 뒤엎는 것이다. 그 방법은 다른 게 아니다. 민주화로 이끄는 것이다. 이란 문제의 궁극적 해별방법이고, 북한 문제의 해결책이라는 생각이다. 악의 근원을 제거하는 거다.
옥세철 논설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