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한국을 방문하고 오는 한인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비슷한 결론들을 내리는 것을 볼 수 있다. 살기는 너무 좋아졌는데 사람들의 의식이나 사고방식은 너무도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내가 몇 년 전 한국에 갔을 때 보니 정말 한국은 매우 풍요롭고 잘 사는 나라로 비쳐졌다. 하지만 그들의 사고방식이나 생활양식을 보면 너무 비어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풍요 속의 빈곤이랄까.
거리는 온통 음식점과 술집, 노래방, 카페들이 줄을 이었고 여성들의 패션이나 생활상을 보면 이것이 한국인가 하고 놀랠 지경이었다. 특히 산에서 만난 여성들의 천편일률적인 모양의 등산복과 챙 긴 모자, 눈, 코, 입만 빼놓고 착용한 얼굴 마스크, 양손 장갑들은 내가 마치 유령의 마을에 와 있나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이들의 머릿속에 과연 무슨 생각이 들어 있을까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 눈부신 경제발전과 더불어 양산된 황금만능주의와 철저한 개인주의, 외모 지상주의, 향락주의, 사치풍조 등,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낳은 산물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은 이제 음주율, 이혼율, 고아수출국의 세계 1위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한국의 이야기를 이처럼 장황하게 늘어놓는 이유는 이민 온 우리 한인사회 생활상도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 한번 돌아 볼 필요가 있지 않나 하는 생각에서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커뮤니티도 한국인들 못지않게 사치풍조와 외모지상주의, 향락주의에 빠져들고 있는 것 같아 우리가 이민생활을 너무 안이하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여유가 있어 돈을 자유대로 쓰는 것은 누구도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있든, 없든 우리는 남의 시선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지나치게 겉치레에 신경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겠다.
한국의 유행바람은 어느새 이곳에도 불어 하다못해 여성들도 옷차림이나 구두, 가방을 보면 너도 나도 마치 경쟁이나 하듯 샤넬, 구찌, 루비통 등 유명브랜드가 아닌 것이 없을 정도로 사치풍조가 넘쳐난다. 이들의 생각이나 의식수준도 과연 그에 준할 만큼 알맹이가 꽉 차 있을까?
현재 한국이나 미국은 물론, 전 세계가 경제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이 때문에 어딜 가도 실업자가 줄을 잇고 기업이나 가게들의 도산이 이어지고 있다. 지구촌에는 먹고 살 것이 없어 굶주리는 기아자 수가 세계구호기관 월드비전의 보고에 의하면 올해 사상 최대인 10억에 달한다고 한다.한국이 6.25참상을 겪은 지 이제 59년이 흘렀다. 우리는 그동안 죽도록 노력해 한국이건, 세계
어느 나라에 흩어졌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는 발전상을 가져왔다. 하지만 우리가 정신적으로도 그에 걸 맞는 풍요로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까? 잿더미로 변한 전쟁의 참상을 딛고 이제 좀 살만 하다고 우리는 너무 느슨해진 것은 아닌지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대란은 아직도 계속 진행 중이고 이 위기가 언제까지 갈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더구나 한국의 국토는 반세기 이상 동강난 상태에서 지금도 우리와 피를 같이 나눈 북녘의 동족으로부터 위협당하는 처지에 놓여 있다. 핵개발을 잠시도 멈추지 않고 미사일을 발사하면서 남한은 물론, 이제는 미국까지 협박하는 북한을 생각할 때 우리는 서글프다 못해 부끄러운 역사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경제가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고는 해도 우리의 현실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풍족해 보이는 구석이 없다. 여기다 우리의 정신마저 황폐하다면 우리는 희망이 없는 민족이다.
주변에서 요즘 경제문제나 자녀, 건강문제 등으로 사람들이 얼마나 고통을 겪고 있는지, 사회동향이나 이슈, 혹은 국가정책 및 세계정세, 분위기 등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심을 가져본 적은 있는지... 정신이 없는 사람은 이미 죽은 인생이다. 정신이 없는 몸은 시장에 팔려고 내놓은 노예와 다를 게 없다. 정신이 병들면 몸이 병들고 몸이 병들면 가정과 사회, 국가도 병든다고 하였다. 인간의 기초는 물질이 아니고 정신이라고 말한 위인도 있다. 그런데 우리들의 정신은 어느새 서서히 잃어버린 세월, 잃어버린 국토의 모양을 닮아가고 있다. 지금 나의 정신은 병들지 않았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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