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 성격의 글을 올리는 ‘단순한 진리’라는 사이트에서 얼마 전 이런 이야기를 읽었다. 75세의 한 남성이 들려주는 경험담이다.
“어느 날 가만히 앉아서 계산을 해봤어요. 사람이 보통 75살 정도 살잖아요. 75에 52를 곱하니 3,900이 되더군요”
3,900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 맞는 토요일 혹은 주말의 횟수. 공부나 생업 등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서 벗어나 뭔가 하고 싶은 걸 하며 삶을 풍성하게 살찌울 기회가 그만큼 된다는 것이다. 당시 55살이었던 그로서는 2,800번 이상의 토요일이 이미 지나가 버린 후였다.
“남은 토요일을 따져보니 1,000번 정도가 되더군요. 그 길로 장난감 가게 세 군데를 돌며 조약돌 1,000개를 사 모았습니다”
그 돌들을 그는 차고 안의 커다란 투명 플래스틱 용기에 담고 매주 토요일 아침마다 하나씩 꺼내서 버리기 시작했다. 이 세상에서, 이 생애에서, 그가 누릴 수 있는 시간이 한눈에 보이는 장치였다. 그러니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 있을까? 인생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의 우선순위가 분명하게 정해지더라고 그는 말했다.
“오늘 아침, 마지막 조약돌을 꺼냈습니다. 내가 다음 주에 또 토요일을 맞게 된다면 그때부터의 시간은 보너스지요”
우울한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1년 반째 계속되는 불경기의 음울한 기운이 점점 광범위하게 점점 그악스럽게 우리의 생업 현장을 둘러싸며 도처에 희생자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실업, 파산, 감원 소식이 끊이지를 않는다. 오래 운영하던 업소를 문 닫게 된 업주들, 집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일터에서 갑자기 밀려난 직장인들은 충격과 상심으로 정신을 못 차린다.
지난해 인기 있었던 공상과학 에니메이션 영화 ‘월-E’를 보면 우주에 사는 미래의 인간들이 나온다. 지구가 쓰레기더미가 되어 살 수 없게 되자 인간들은 거대한 우주선에 탑승해 살면서 지구로 돌아갈 날을 기다린다.
그런데 우주선에 산지 700년이 되면서 인간들은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이 아니다. 의식주 모든 것을 중앙통제실에서 관장하니 아무 것도 스스로 할 필요가 없고, 움직이는 의자가 어디든 데려다 주니 걸을 필요도 없다. 안락한 조건에 몸은 비대해지고 다리는 퇴화해 일어서지도 못한다. 거대한 비계 덩어리들이 된 것이다.
우리의 삶이 우주선 인간들의 삶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들이 삶의 주도권을 중앙통제실에 넘겼다면 우리는 익숙한 일상에 넘겼다. 수십년 똑같이 반복되는 생활, 그 익숙함이 주는 안락함에 함몰되면서 반수면 상태로 떠밀리듯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현실이다. 의식의 비계 덩어리들이다.
미래의 인간들이 우주선 밖의 삶을 상상도 못 한다면, 익숙함에 중독된 우리는 현재의 생활현장 밖으로 발 내디딜 용기를 좀처럼 갖지 못한다. 그러다 실직, 파산으로 익숙함의 막이 찢어지면 우주의 미아가 된 듯 충격에 빠지는 것이다.
‘1,000개의 조약돌’은 시간 앞에서 깨어있게 하는 장치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깨어서 삶을 대면하니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똑같이 돈이 없어도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가난은 청빈이고 상황에 떠밀려 어쩔 수 없는 불쌍한 상태는 빈곤이다.
어려운 시기다. 그만큼 용기가 필요한 시기다. 진정한 용기란 성공하지 못할 줄 알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시도하는 것이라고 한다. 내가 내 삶의 운전대를 확실하게 잡고 있다면 상황은 아마 어떻게든 이겨낼 수가 있을 것이다. ‘일기예보’라는 시를 인용한다.
<… 인생이 햇빛을 줄 때는/ 감사한 마음으로 얼굴을 들고/ 양볼 위의 따스함을 즐기네// 인생이 안개를 줄 때는/ 스웨터로 온몸을 감싸고/ 익숙한 것들을 다르게 흥미롭게 만드는 /시원한 신비의 장막에 감사를 하네// 인생이 눈을 줄 때는/ 밖으로 뛰어나가 첫 송이를 혀로 받아보며/ 얼음의 기적인 눈송이를 맛보네// 인생의 사건과 경험은/ 날씨 같은 것/ 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오기도 하고 가기도 하네// 그러니, 어쩌랴?!/ 그 모두를 그냥 즐기는 게 낫겠지 …>
많은 사람들에게 지금은 인생의 우기다. 빗속에서 춤추는 법을 배워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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