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킹은 어른들의 동화다.
그 중에서도 컵케익으로 말하자면 동화의 으뜸 ‘신데렐라’ 이야기가 아니겠는가. 재투성이 아가씨가 요정들의 도움으로 화려하게 변신, 왕자님의 신부가 되는, 그래서 유년시절 소녀들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꿈꾸고 상상했던 이야기처럼 컵케익엔 그런 동화의 그림자가 설핏 스친다. 그래서 미국 소녀들은 생일이면, 브라이달 샤워 때면, 결혼이면 어김없이 컵케익을 잔칫상에 올리고 그 케익을 베물면서 그들의 꿈과 동경을 나누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컵케익을 다 먹고 난 뒤의 허망함만큼이나 파티 후 다가올 현실이 얼마나 척박한지를 논하는 것은 일단은 접어두기로 하자. 동화는 온전히 동화 속에 머물 때만이 그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그 때문인가. 최근 컵케익 전문점이 눈에 띄게 늘었다. 예전에는 미국 베이커리에서 페이스트리와 섞여 팔리던 컵케익을 전문화, 고급화시킨 부틱 컵케익점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 중 최근 단연 눈에 띄는 전문점은 닷츠 컵케익(Dots Cupcakes).
아기자기한 프로스팅과 천연 재료를 이용한 컵케익 하나로 오픈 3년만에 단박에 할리웃 스타들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닷츠 컵케익의 주인장은 올해 딱 서른이 된 권효정씨. 단순한 입신을 넘어 이제는 컵케익 업계의 전설을 준비하고 있는 효정씨의 달콤살벌한 닷츠 컵케익 스토리를 들어본다.
#열정은 성공의 어머니
웹사이트를 미리 방문한 뒤 짐작하건대 주인장은 분명 유명 요리학교를 졸업한 뒤 오랫동안 유명 베이커리, 유명 파티셰에게 사사 받은 뒤 이제 막 하산하여 자신의 이름을 건 컵케익 샵을 열었을 거라 생각했다. 이렇게 유명하고, 이렇게 예쁘고, 이렇게 성공한 컵케익 전문점인데 당연하다 못해 너무 진부한 상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덤으로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웬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주인장 권효정씨는 UC 어바인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비영리재단 사무직을 거쳐 LA 다저스 이벤트 매니저로 근무했다는 것이 가게 오픈 전까지 그녀의 이력의 전부다. 그렇다고 그 사이 취미로라도 베이킹 클래스를 수강한 적이 있냐 하면 그 역시 전무하고, 우연이라도 요리학교 언저리에도 가본 적도 없단다.
이쯤에서 다만 한가지 어떻게라도 이 허망한(?) 약력에 이 성공한 비즈니스와 그녀를 연관짓기 위해 굳이굳이 무언가를 하나 짜내야 한다면 어려서부터 예쁜 것 좋아하고 포장하는데 유난히 뛰어난 그녀의 손재주 정도를 들 수 있겠다.
그런 그녀가 잘 나가던 직장을 박차고 이 길에 들어선 것은 갑작스레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아버지의 죽음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와 20년간 세탁소를 운영했던 부모님과 함께 평범하게 살던 막내딸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순간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언젠가 내 비즈니스를 해보겠다는 생각은 늘 있었죠. 열심히 창업계획을 세웠던 게 아니었기에 그냥 일단 하고 싶었던 일을,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를 하며 효정씨, 금세 눈이 빨갛게 충혈됐다. 옆에 함께 있던 어머니 권애자씨 역시 금방이라도 눈에 찼던 눈물이 흘러내릴 태세다. 아버지 없이, 남편 없이 3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그 세월 사이 어느새 성공을 거둔 듯도 보이지만 두 모녀에게 아버지는, 남편은 여전히 그 무엇도 대신해 줄 수 없는 마음 깊은 곳은 큰 생채기였나 보다
닷츠 컵케익의 권효정씨가 패사디나 매장에서 갓 구워낸 컵케익을 들어 보이고 있다.
요리 초보 서른살 그녀
열정으로 성공신화 쓰다
#막무가내 걸, 대박 내다
그래서 일단 사직서를 내고, 컵케익 가게를 내겠다고 생각하고 가게 자리를 알아보다 패사디나 애로요 팍(Arroyo Park)에 작고 아담한 공간을 계약했단다. 그리고 당시 갓 결혼한 친구가 결혼 선물로 받은 포장도 뜯지 않은 키친에이드 반죽기를 빌려왔다. 계약한 가게는 인테리어 공사에 들어갔고 오픈예정 시간까지는 3~4개월의 시간이 있었다. 일단 밀가루와 달걀 등 필요한 재료를 사와 집에서 만들고 또 만들었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오로지 맛있는 컵케익 레서피에만 매달린 시간들이었다. 어찌보면 가장 흔한 베이킹 레서피이기에 기본 레서피는 찾기가 쉬웠지만 그것을 효정씨의 것으로 만들고, 거기에 더 맛있고, 더 독특하고 더 확실한 그녀만의 노하우를 개발해야 했기 때문에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녀가 해야 할 일은 그뿐이 아니었다. 스토어 인테리어에서부터 로고를 제작하고, 포장지를 만들고 웹사이트 제작 등 마케팅 전반에 관한 것도 온전히 그녀의 몫이었다. 스토어를 오픈하는데 든 돈은 20만달러. 융자도 내고, 카드도 긁고 어찌보면 이제 막 스물 중반을 넘은 아가씨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인데다, 그 쪽 분야로 어떤 경험도 없는 것까지를 감안하면 무모하기까지 한 도박으로 보인다. 그래서 혹시 어머니라도 말리지 않았나 물어봤다. 그러나 또 기대는 빗나갔다. 어머니 권애자는 슬며시 웃으며 아니라고 손사래 친다.
“워낙 효정이가 어려서부터 야무졌어요. 게다가 스케일도 크고 무엇보다 운도 늘 따라 다녔던 것 같아요.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고, 경험도 없었지만 저도 어떤 걱정도 염려도 하지 않았죠. 잘 해낼 거라 믿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너무나 대견하게 잘 해오고 있고요.”
최상 재료로 최고 맛
깜찍한 모양·포장
매니아 갈수록 늘어
오픈 첫날부터 매진
3년만에 2호점 내
#서른살 그녀, 성공신화를 준비하다
그렇게 탄생한 닷츠 컵케익의 오픈 첫날. 그 작고 작은 가게를 어떻게 알았는지 구름떼처럼 사람들이 모여들어 순식간에 500개를 팔았다. 더 팔고 싶어도 만들어 놓은 게 없어서 팔 수가 없었단다.
어디 그뿐인가. 그 몇 달 뒤 밸런타인스 데이에는 오전 10시에 오픈하자마자 1시간만에 컵케익이 순식간에 동이 나 가게문을 닫아야 할 정도였다. 그 뒤 닷츠는 승승장구 작년엔 올드 패사디나 콜로라도 길에 닷츠 2호점을 오픈하기에 이른다.
“학교 다닐 때 올드 패사디나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어요. 그때 결심한게 나중에 내 비즈니스를 해서 성공하면 반드시 그 길에 내 가게를 열리라 생각한 것인데 그 꿈이 이루어지게 된 셈이죠. 그래서 2호점 오픈하고 나서 감회도 남달랐고 참 행복했었습니다.”
믿어지지 않는 성공담을 쏟아내는 효정씨, 그런데 그녀 정말로 덤덤하다. ‘맨땅에 헤딩’을 하면서 이처럼 태연하기도 어렵겠지만 헤딩 뒤 화려한 성공이 보장될 것을 알기나 했다는 이 배짱은 과연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왜 닷츠 컵케익에 빠져드는가
닷츠 컵케익 단골들에게 닷츠만의 매력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너나할 것 없이 그 헤어나올 수 없는 ‘중독성’(?)을 꼽는다. 퇴근 무렵이면 꼭 들러 컵케익 한 개 사들고 가야 하루가 마감된다는 이들부터 브라이달 샤워에서 컵케익을 주문한 이들이라면 첫 아이 돌잔치까지 닷츠에서 대량 주문하는 충성심을 발휘하는 이들까지 닷츠 컵케익 매니아들이 갈수록 늘고 있는 것이다.
현재 닷츠가 판매하는 컵케익은 20여가지가 넘는다. 최근 가장 인기를 끄는 컵케익은 버터밀크 초컬릿 케익에 바닐라 크림과 치즈 프로스팅을 얹은 레드벨벳. 이외에도 마다가스카 바닐라 케익에 프레시 딸기가 들어간 스트로베리 쇼트케익과 스트로베리 레모네이드도 인기 아이템이며 동시에 효정씨가 가장 좋아하는 컵케익이기도 하다.
이렇게 독특한 그녀만의 컵케익은 맛뿐 아니라 포장 역시 다른 컵케익 전문점이나 부틱 베이커리가 도저히 흉내낼 수 없는 멋이 담겨 있다. 효정씨가 직접 디자인한 닷츠 문양이 들어간 박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 위에 손수 매주는 리번이며 빈티지 느낌 물씬 나는 스티커 역시 다른 가게에서 쫓아올 수 없는 닷츠만의 매력이다.
“컵케익은 선물용이나 웨딩 때 하객 선물로 많이 준비하잖아요. 그러다보니 패키지에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죠. 오픈 당시 때부터 패키지 모든 것을 제가 제작하고 디자인했어요. 요즘도 아무리 큰 주문이라도 일일이 리번 달고 포장하는데는 제가 직접 나섭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닷츠 컵케익의 가장 큰 매력은 최고의 재료로, 진짜 과일로, 매일매일 새벽에 구워내는 그 신선함에 있다. 그 일을 위해 효정씨는 새벽 5시부터 분주하게 움직여야 한다.
“초컬릿도 프렌치 초컬릿만, 과일도 파우더나 액상이 아닌 진짜 과일을 갈아서 쓰죠. 그러다 보니 케익이 신선하고 맛도 풍부할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맛을 손님들이 알아줘서 맛있게 먹는 것을 볼 때 가장 기쁘고 행복하죠.”
#성공 나누니 행복 2배
그녀의 컵케익 가게가 특별한 이유 한가지 더.
바로 나눔의 행복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다는데 있다. 현재 그녀는 다저스 스테디엄과 오렌지우드 칠드런스 홈, 아시안 아메리칸 언론협회, 키즈스페이스 뮤지엄, 패사디나 플레이하우스 등에 도네이션을 해왔다.
“비영리 재단에서 일한 경험이 계기가 됐어요. 작은 도움이 그들에게 큰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제 작은 컵케익이, 작은 수익금이 어려운 이들에게 큰 희망과 행복이 될 수 있다는데 왜 마다하겠어요. 얼마 전에도 한 포스터 홈에 컵케익을 싸들고 가서 파티를 한 적이 있는데 파티 때문에 매상에 좀 손해를 보더라도 아이들이 컵케익을 먹으면서 즐거워하는 것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더 행복해 지던걸요.(웃음)”
이 아가씨, 이제 겨우 입신의 나이 들어섰지만 지천명이 돼서도 깨닫기 힘든 인생 제대로 사는 법을 확실히 알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작은 컵케익이 큰 행복이 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글 이주현·사진 이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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