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패거리들은 뭐지?” - 노란 셔츠, 노란 조끼 … 노랑으로 떼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보며 일반인들이 의아해 한 것은 2002년 한국 대선 때였다. 7년이 지난 지금 ‘노랑’은 문화코드가 되었다. ‘노랑’ 하면 그것이 누구를 상징하는 지 이제 누구나 다 안다. ‘노란 물결’의 환호 속에 대통령으로 떠올랐던 그가 거대한 ‘노란 바다’의 환송 속에 세상을 떠났다.
지난 한주 우리는 예측할 수 없던 두 개의 큰 사건과 마주했다. 메모리얼 데이 연휴를 앞두고 적당히 풀어져있던 지난 22일 오후, 한국에서 급보가 전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투신자살했다는 소식이었다. ‘무슨 그런 농담을!’ 싶은 황당함, 경악, 몹쓸 선택을 한 그에 대한 분노, ‘오죽 괴로웠으면’ 싶은 동정 … 사람들은 저마다 비슷한 마음의 경로를 거치며 그의 죽음을 받아들였다.
두 번째 사건은 한줄기 ‘노란 흐름’으로 시작되었다. 노사모 회원들이 통곡하며 속속 봉하마을로 집결했다. 추모는 그렇게 그들만의 절규로 쓸쓸하고 씁쓸하게 끝날 듯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흐름’은 끊이지를 않았다. 전국 각처에 분향소가 생겨나고, 조문객이 밀려들면서 한 가닥 시냇물 같던 추모 행렬은 갈래갈래 수많은 강줄기로 도도하게 불어났다.
29일 장례식 날이 되자 추모의 물결은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밀려들어 가히 바다를 이루었다. 노란 모자, 노란 풍선, 노란 종이비행기 … ‘노랑’에 슬픔을 실은 마음들은 광장을 메우고 거리를 메웠다. 민심의 바다였다.
2002년 대선은 한나라당으로 볼 때 ‘누워서 떡 먹는’ 선거였다. 그때만 해도 ‘대쪽’ 이미지를 유지하던, 학벌 좋고 평판 좋은 이회창 후보, 거대 야당의 막강한 조직력, 훗날 ‘차떼기’로 규모가 드러난 엄청난 자금력 등 민주당과 맞대결하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우세였다.
그런데도 결과는 패배였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노무현 후보에게 패한 후 한나라당은 “우리가 국민을 너무 몰랐다”고 통탄했다. ‘국민을 몰랐다’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몰랐다는 것, 민심을 읽지 못했다는 말이 된다.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유례가 없는 거국적 추모행렬 등 두 사건은 한국사회에 많은 숙제를 남겼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공과, 자살에 대한 평가, 한국사법체계의 맹점과 정치보복의 악순환 등 모두가 엄정한 분석을 거쳐야 할 사안들이다. 그와 아울러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민심, 국민들의 마음이라고 본다.
‘나’밖에 모르는 이기적 젊은 세대들이 장대비를 맞으며 몇 시간씩 기다려 조문을 하고, 직장인들이 퇴근 후 밤새 봉하마을을 다녀오고, 삼삼오오 친구들이 분향을 위해 일부러 모이고 육친을 잃은 듯 소주잔을 기울이며 울분을 토하는 것… 그 모두는 무엇을 말하는가. 노사모 등 지지파들의 부채질, 정 많은 한국인들의 냄비기질로만 보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다.
“그는 머리가 아닌 우리의 가슴으로 들어온 최초의 현실 정치인이었다”고 영화감독인 육상효 교수는 우리 신문 본국지 칼럼에 썼다. 답은 ‘가슴’이었다.
정치인 노무현에 대한 엇갈리는 평가 속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것은 그의 열정이다. 이해득실 계산으로 머리만 발달한 정치무대에서 그는 가슴으로, 열정으로 사람들에게 다가간 드문 정치인이었다. 열정이 앞서다 보니 현실은 종종 무시되고, 언행은 거칠어지고, 파열음이 그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하지만 ‘가슴’은 사람들을 영원히 그의 편으로 묶는 힘이 있었다.
장례식에서 그의 유서를 낭독했던 장시아씨는 그로부터 두통의 편지를 받은 인연이 있다. 장씨는 아버지가 뺑소니 사고로 식물인간이 되면서 어머니와 세 식구가 쪽방촌에서 겨우 연명하던 시절이 있었다. 당시 어두운 풍경을 담아 시집을 낸 그가 우연한 기회에 책을 선물하자 대통령은 따뜻한 편지를 보내왔다. “그분, 언제나 든든한 벽 같으셨다”고 그는 회고한다. 사람의 마음은 그렇게 해서 얻어진다. 그런 마음들이 모여서 민심이 된다.
정치는 백성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을 알아야 눈물도 보인다. 바다를 이룬 민심 앞에서도 국민의 마음을 읽지 못한다면 한나라당은, 이명박 정부는 다시한번 통탄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국민을 너무 몰랐다”고. 추모물결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고 간 마지막 선물로 이해했으면 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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