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주영(주필)
과거 조선왕조 5백년은 어느 때 보다도 당파싸움이 치열했으며 당정 간의 간극은 3대를 멸한다고 할 정도로 피비린내 나는 동족상쟁의 역사였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도 이런 비참한 역사가 반복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너무 과도한 생각일까?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의 뇌물의혹 사건에 대한 현 정부와 검찰의 자세는 사건의 옳고 그름을 떠나 피의자에 대해 너무 지나쳤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여론조사 결과 75%나 되는 국민들이 이번 노 대통령의 죽음이 ‘검찰의 강압적 수사 때문’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 것처럼 ‘수사를 위한 수사’가 아니라 마치 ‘죽이기 위한 수사’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지나치게 보였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을 예우하는 차원에서 다룬다고 말은 하면서도 정확한 재판 결과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피의자를 마치 죄인인양, 취급하고 모멸감을 준 것은 한국국민이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사실이었다. 고인은 자신의 서가에서 하늘을 바라보기도 어려울 만큼 가택연금이나 다름없는 상태에서 “하늘을 바라볼 자유만은 달라”고 호소할 만큼 그에 대한 압박은 검찰이나 언론이나 선을 넘어 보였다. 이번 사건에 간접적인 책임을 회피하기 어려운 보수언론의 지나친 보도태도는 더 큰 문제였다. 다시 말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어쩌면 과도한 권력의 힘, 경쟁적인 언론의 희생자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누가 잘했다, 잘못했다, 그의 죽음이 정당하다, 정당치 못하다를 떠나 그는 죽음으로 내몰린 정치적 희생양이 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고인이 640만 달러라는 뇌물을 알면서 받았다면 도덕성을 최대의 무기로 삼던 그에게는 견딜 수 없는 타격이요, 치욕이요, 모멸감이었을 것이고 그가 주변에서 일어나는 비리를 몰랐다고 할 것 같으면 가족과 그의 평생 동지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몸을 던졌다고 볼 수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검찰의 강압수사에 의한 희생자다, 다른 한편에서는 대통령으로서 사태의 귀결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데 대한 실망감도 표명하고 있다. 무엇이 지금 옳은 답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이번 사건에 대한 시각과 견해는 모두 다 다르다. 이제 고인은 세상에 없다. 그를 둘러싸고 몇 달씩 이어져온 사건의 의혹과 진실, 그리고 왜 그가 죽어야 했는지 그 원인과 배경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 답을 모른다. 죽은 자는 더 이상 말이 없다.
한국은 현재 그 엄청난 굴곡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끄떡 않던 인간 노무현이 얼마나 굴욕적이고 치욕적이고 고통스럽고 이기기 어려운 모멸감과 좌괴감을 느꼈으면 목숨까지 끊어야 했었나 하는데 대한 인간적인 아픔과 연민, 그리고 안타까움을 지우지 못하는 것이 대체적인 분위기다. 고인을 추모하는 애도물결이 200만 명을 넘었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는 것이 아닐까. 어쨌든 그는 인권변호사로서 서민대통령, 깨끗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갖고 지역감정 타파, 개혁을 기치로 한국의 변화를 꾀하고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고인의 다스려지지 못한 특이한 기질과 거침없는 말투는 어쩌면 한국의 정치적 현실과 국민적 정서에 맞지않아 대통령의 자리를 수행하기에는 적지않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부패에 연루된 대통령으로서 끝까지 감내하지 못하고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고 그에게 손가락질을 하기에는 한국의 어두운 정치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
고인의 죽음을 놓고 세계 언론은 비상한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미국의 한 언론은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노 대통령이 봉하마을을 떠나 버스에 오르면서 오고 가는 모습을 줄곧 따라 다니며 비행 촬영한 것은 한국인에게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이 될 것이라고 논평했다. 일본의 언론은 노 대통령의 죽음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한국의 권력이 지나칠 정도로 청와대에 집중돼 있음을 거론했다. 아직도 대한민국의 민주화가 갈 길이 멀다는 것을 여실히 느끼게 하는 대목이다. 대통령마다 뇌물수수 의혹으로 검찰조사, 감옥행, 결국은 자살행까지 나오는 조국의 현실이 슬프기만 하다. 언제까지 이런 비극을 접해야 하나. 고인의 죽음이 한국 정치사의 새로운 발전과 화합으로 승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며 고인의 영전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
juyoung@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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