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경력 2년 차의 초보 주부 정혜림씨가 자신이 만든 갈비 타코를 선보이며 활짝 웃고 있다.
살림 잘하기는 정치 잘하기만큼이나 쉽지 않다. 아니, 나라 살림보다 더 고달프고 어려운 게 집안 살림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정치야 잘하면 권력과 명예라도 따라오지만 살림이라는 게 어디 그런가. 가족들 거둬 먹이는 것부터 쓸고, 닦는 청소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표 나지도 않는, 잘해야 ‘본전치기’가 고작인 반면 조금이라도 게으름 피우면 표가 팍팍 나는 것이 바로 이 살림이기 때문이다. 현실이 이럴진대 초보 주부들이야 말해 뭣하겠는가. 마음이야 뻔히 마사 스튜어트지만 하루 세끼 제대로 챙겨 먹는 것도 쉽지 않음을 절감하는 순간, 요리는 일생을 건 숙제가 된다. 그러나 여기 주부 경력 겨우 2년 차지만 밥 해먹고 살림 사는 폼은 경력 30년도 울고 갈 마사 스튜어트가 있다.
네이버에 요리 블로그(http://blog.naver.com/rulame)를 운영하며 초보 주부들에게 ‘한줄기 빛’을 주고 있는 초보 주부 정혜림(30)씨가 그 주인공이다. 결혼과 함께 도미, 미국생활 2년 차기도 한 정혜림씨의 미국에서 제대로, 그것도 폼 나게 밥해먹기 노하우를 살짝 엿봤다.
#요리는 나의 힘
혜림씨에게 요리는 어찌 보면 이민 초보의 지루함을 이기는 방편으로 시작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LA 한인타운에 신접살림을 차렸을 때는 운전면허도, 차도 없어 꼼짝없이 집에 갇혀만 있어야 했다. 그 지루한 시간을 이기는 방법으로 그녀가 선택한 것이 요리다.
“한국에서도 자취생활을 5년 이상했어요. 그때도 외식보다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죠. LA에 오니까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식재료에, 이국적인 시즈닝도 구하기 쉬워 요리 천국이더라구요. 그래서 장봐다 남편이 직장 간 오후 내내 요리하는 것으로 취미생활 삼았죠. 지금 요리 실력은 다 그때 얻은 것이라 봐야할걸요? (웃음)”
그러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안부도 주고받고 미국생활도 알릴 겸 블로그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는 일이 주로 요리다 보니, 갈수록 요리에 취미를 붙여 그녀의 평범한 일상의 블로그는 단박에 요리 블로그로 탈바꿈했다.
그녀의 블로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레서피는 순대와 소시지. 음식 달인들의 블로그에 가도 보기 드문 홈메이드 순대와 소시지는 블로그를 방문한 이들의 눈길을 끈다. 소시지 케이싱(sausage casing)을 인터넷으로 주문, 용감무쌍하게도 돼지 피까지 구입했다. 어디 그뿐인가. 순대 성형을 위해 페트 병을 자르는 수고도 아끼지 않고 거기에 순대 속을 넣는 고군분투기를 읽고 있노라면 음식도 음식이지만 읽는 이를 사뭇 감동시키기까지 한다.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해본 자만이 아는 수고와 사랑이 그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그녀의 살림 솜씨는 여기서 그치질 않는다. 취재 간 날 근사하게 차려진 테이블보도 천을 사다 그녀가 직접 재봉틀 돌려 만든 것이라고 하니 확실히 그녀, 마사 스튜어트 맞다. 이뿐 아니다. 주방 캐비닛을 열어보면 정갈하게 색색으로 쌓여진 식기는 또 어떠하며 분량별로, 재료별로 알록달록 분류된 식재료들이 쌓여진 냉장고 안은 또 어떤가. 이제 갓 시집온 새댁의 솜씨라 하기엔 참으로 예사롭지 않다.
#요리는 사랑을 싣고
최근 LA에서 애나하임으로 이사 간 혜림씨의 요리실력은 이미 그 일대에서도 소문이 자자하다. 집에도 부엌 한켠 대형 교자상이 두개씩이나 떡 하니 버티고 있을 만큼 그녀는 사람 불러다 맛있는 것 해 먹이는 것을 즐긴다.
이런 혜림씨의 뛰어난 요리 실력의 최대 수혜자는 바로 남편 이남훈(34)씨다. 아침과 점심 도시락을 챙겨주고 저녁 요리까지 일품 요리로 대접받고 사니, 요즘처럼 인스턴트와 외식이 판치는 때 이보다 더 행운의 사내가 어디 있겠는가.
“직장이 LA다 보니 아침을 집에서 먹을 수가 없어 아침은 빵이나 샌드위치에 과일을 곁들여 싸줘요. 점심은 냄새가 진하지 않은 한식 위주로 합니다. 그렇다고 수퍼우먼은 결코 아니고 어떨 땐 일주일씩 ‘파업’을 하기도 해요(웃음).”
그런 그녀가 요즘 ‘꽂혀’ 있는 요리 장르는 퓨전.
혜림씨의 주방에 가보면 다양한 시즈닝들이 한쪽 싱크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진한 향의 향신료가 든 외국 요리가 아직은 낯설 법도 한데 가리는 음식 없이 새로운 요리 먹는 것을 즐기다 보니 베트남 마켓과 중동 마켓까지 그녀의 손바닥 안이다.
“근사하게 이름 붙이면 퓨전이지만 사실 식구 두 명이 밥해 먹다 보면 남는 재료들이 많거든요. 그 재료를 이리저리 짜 맞춰 새로운 레서피를 만들다 보면 절로 퓨전 요리가 돼죠.”
그러나 정작 본인은 아직도 자신의 살림 솜씨가 성에 차질 않는단다.
“한동안 블로그 활동을 멈춘 적도 있었어요. 저보다 훨씬 훌륭하고 입 딱 벌어지게 살림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거든요. 그런 블로거들이 많다 보니 좀 민망한 감이 없지 않아서요. 그래도 이제 힘을 내서 다시 시작해 보려구요.”
요리는 그녀에게 일상이며, 친구이며 또 다른 삶의 원동력처럼 보였다.
왜 아니겠는가. 요리란 먹는 이에겐 이 세상 하나밖에 없는 사랑 가득한 선물이니 말이다.
#초보 주부, 정혜림 따라 잡기
그녀 역시 타고 날 때부터 요리 달인은 아니었다. 조금씩 노력하다 보니, 자꾸자꾸 해먹다 보니 오늘에 이른 것이다. 그녀가 요리 초보들을 위해 제안하는 어드바이스를 들어봤다.
◇계량과 재료에 목숨 걸지 말라=요리책이나 인터넷 레서피를 따라 하는 경우 거기에 나온 재료와 계량에 집착하다 보면 오히려 요리가 더 힘들어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오히려 손맛을 믿고 재료도 꼭 필요한 주재료가 아니라면 없어도 대세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그녀의 지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부터 도전하라=아주 어려운 음식, 혹은 남편이 좋아하는 음식에 처음부터 도전하는 것은 무모한 일. 오히려 자신이 어려서부터 먹어본 음식이나 즐겨먹는 음식을 시작해야 실패도 줄이고 요리에 대한 자신감과 흥미도 가질 수 있다고.
◇많이 만들어 봐라=결국 요리도 당연하게도 많이 해봐야 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음식을 만들기보다는 쉬운 것부터 시작해 성공의 기쁨을 맛볼 수 있는, 그래서 자신감을 가질 수 있는 레서피를 선택하는 것이 좋다.
글 이주현 사진·박상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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