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족처럼 서로 의지하며 타국살이 설움 달래
피난중 열악한 환경 속에서 아기의 발육 늦어져 걱정
거의 모두가 제시의 첫돌 기억하고 축하해줘
대륙 기질 갖고있는 중국인들 비위만 건드리지 않으면 관대
1939년 5월17일 기강
우리가 머무르고 있는 기강은 시골이다. 그곳에서도 우리 식구들이 기거하고 있는 곳은 강의 건너편이라 아예 인가가 드문 산골이라 함이 적당한 표현일 것이다. 그래서 장을 보러 가려고 해도 목선을 타고 양자강을 건너가야 했다. 하지만 제시는 집 주위의 자연적인 환경을 좋아하는 듯하다. 그래도 아직 어린 아가라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제시는 벌렁벌렁 팔방도리를 하며 마음껏 기고 싶어 하는 모양이지만 일인용 침대가 두 개 놓여진 주방을 겸한 방바닥은 더욱이 흙바닥이라 기어 다닐 수도 없었고 무엇
이든 짚고 일어서 보려고 하지만 잡을 의자 한개도 변변히 없는 사정이라 아가의 발육이 자연 늦어질 듯하다. 하지만 이 시골에서 의자 하나, 탁자 하나라도 만들기 전에는 살 수 조차 없는 곳이다. 장만해 주고 싶지만 피난 도중이라 별 도리가 없다.
1939년 6월5일 기강
중국 시장에 나가면 돼지 뿐 아니라 조선에서 먹던 것과 비슷한 식품들이 즐비해 있어 식생활에 있어서는 편한 편이다. 된장, 고추장은 물론 시금치, 콩나물, 숙주나물 등 비슷한 재료들이 즐비해 있어서 밥과 국을 끓이고 반찬을 만들기에 수월하다. 다양한 재료를 가지고 있는 중국음식 중에서 그래도 고향에서 자주 먹던 도라지나 고사리는 이상하게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중국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넓은 중국 땅의 다양한 지역적 특색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중국인들은 ‘소주’에서 태어나서 ‘향주’에서 살며, ‘광주’에서 먹고 ‘유주’에서 죽는게 소원이라고 한다. 소주는 방직공장이 많아 옷감이 좋아서 좋은 옷을 걸칠 수 있기에 태어나기 좋은 장소이고, 향주는 풍경이 수려하기에 사는 걸 즐길 만하고 광주는 열대과일과 요리로 유명하고 유주는 아름드리나무가 많아 관을 잘 만들기로 유명하기에 죽기에도 좋다는 설명이다. 상해에서 시작하여 중국 대륙의 한복판이 호남성 장사, 남쪽 끝인 광동성 광주를 거쳐 서북쪽 광서성 유주를 돌아 다시 서쪽 구석인 사천성 기강까지 우리는 중국인의 부러움을 살만큼 중국여행을 다닌 셈이다. 비록 피난길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1939년 6월21일
오늘은 음력 5월5일 단오절이다. 중국땅 어느 곳을 막론하고 단옷날엔 강에서 용선을 타고 굴원의 혼을 건지는 행사가 다채롭게 펼쳐진다. 이런 풍습은 이곳 기강에서도 용주놀이라 하여 굉장하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전쟁 중의 비상시기라 모두 금지가 됐다. 제시는 세상에 나온 후 처음으로 맞이하는 단오 명절인지라 의미심장하련만 오늘은 그저 평범할 수밖에 없다.
1939년 7월4일
과연 세월이 흐르는 물 같아서 어느 덧 제시의 첫돌이 돌아왔다. 기강에 우거하는 우리 남녀노소는 거의 전반적으로 이날을 다 기억하고 축하해준다. 그만큼 어린아이가 귀한 탓이다. 아쉬운 대로 음식을 준비하였다가 오시는 손님들에게 유감없이 대접하였다. 옷가지도 얼마 들어왔고 또 처음으로 제시의 재산도 십여년이나 생겨서 그것을 근본으로 하여 저금을 해야겠다고 엄마는 제의한다. 돌에는 엄마가 가장 애쓴 만큼 가장 축하받고 즐거웠으면 한다. 오늘 엄마는 분주하였지만 별로 유감없이 지낸 모양이니 이것으로라도 만족타하자!
1939년 8월29일
오늘은 망국 기념일이다. 지금부터 이십구 년 전에 우리나라는 억울하게도 일본과 합방하였다. 침통하게 이날을 기념하는 지도 벌써 이십구 회째! 해마다 이날이 되면 모두 모여 치욕을 되새기고 앞으로의 각오를 새롭게 하고 있다. 제시에게도 벌써 두 번째 맞이하는 기념일이었다. 나라를 되찾고 독립기념일을 맞이할 날이 언제일지…
1939년 10월10일
오늘은 중국의 국경일인 쌍십절이다. 1911년 10월10일 혁명군이 무창에서 봉기하여 청조를 넘어뜨리고 이천년이나 계속된 중국의 전체정치를 끝내며 중화민국을 세운 날이다. 제시는 삼일 째 설사를 하더니 오늘은 감기까지 겸한 모양인지 콧물을 줄줄 흘려 밤에는 줄곧 신음하는 소리까지 내고 있다. 하지만 어린애가 되어서인지 명절 분위기에 낮에는 곧잘 다니며
놀고 있다. 약을 안 먹겠다고 억지를 쓸 때면 꼭 엄마야 아빠야를 번갈아 가며 소리친다. 꾀가 보통이 아니다. 엄마야 아빠야 소리에 마음이 약해질 것을 아는 모양이다.
1939년 11월23일
여러 날 만에 명랑한 햇볕이 나는 날이다. 기분이 퍽 좋아진다. 제시는 알고 나서인지 먹겠다고 야단이다. 갖은 재롱이 더 늘어 한창 재미나게 놀고 있다. 아이 기르는 것은 힘겨운 때도 많지만 역시 재미로운 때도 종종 있다. 중국 생활도 그러하다.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뛰는 것은 우리의 자존심과 정신면에서 괴로움을 겪게 되지만 중국과 중국인들은 우리에게 호의적이고 중국인들 또한 우리와 겉모습이 비슷해 구분이 가지 않아 그중 생활하기가 편하다. 하지만 중국인들은 우리 한민족과는 역시 다르다. 기질에 있어서 대륙성 기질을 가지고 있다. 관대한 성품을 지니고 있어 비위만 건드리지 않으면 잘해준다.
이곳 기강에서의 생활에서도 재미는 찾을 수 있다. 한교들끼리 의지하며 한가족처럼 정을 느끼며 살아가는 그것이 바로 사는 재미다.
1939년 12월4일
날씨가 온화한 일요일이었다. 오늘이 제시의 만 일년 5개월 되는 날이다. 잠깐이다. 지금 제시는 키가 31인치 반이고 이는 아래 위 것을 합쳐 열두개 꼭 같은 수다. 그래서 과히 굳지 아니한 음식은 제법 잘 씹어먹고 있다. 애 재우는 장난과 문 뒤에 숨었다가 ‘까꾸’하며 미소를 띠고 놀자는 장난, 진지를 잡수라며 아부지 찾으러 다니기 분주한 것, 제 손으로 음식을 흘리지도 않고 나지막한 자리를 찾아가 앉아 퍼먹는 동작, 그리고 자주 오는 손님이 문 안에 들어서기만 하면 자리에 앉으라고 지적하며 권하고 앉으면 공손히 경례하는 등 기술이 많이 들었다. 쉬운 말은 다 알아들어서 데리고 놀기가 좋지만 억지를 쓰며 심술을 부릴 때가 있어서 곤란함
을 느끼기도 한다.
1939년 12월25일
월요일, 성탄절이다. 날씨는 전에 없이 청명하고 온화했다. 그러나 이 깊은 산촌에 성탄절을 축하하는 행사나 감회란 있을 수 없었다. 다만 중경에서 우송되는 신문에 ‘성탄절이 어떠니’ 하는 등의 문구가 쓰여 있을 뿐. 쓸쓸하고 외롭기 짝이 없는 나날이다. 고향에서는 성탄절이면 교회마다 성탄예배가 떠들썩했고 장성해서는 기독교 학교인 이화여전을 다니는 바람에 외국인 선교사 선생님들과 연극공연을 하고 선물을 받고, 볼 것, 먹을 것이 가득한 날이 되곤 했었다.
오늘이 제시에게는 두 번째로 맞이하는 성탄절이다. 제시는 그런 성탄절 분위기를 전혀 모르고 자라고 있다. 작년에는 광서성 유주에서 지냈었다. 금년의 성탄절과 다를게 없는 날이었다. 주변에서는 내년 성탄절을 기대해보자고 의미 깊은 마음으로 굳게 결심하는 부모들이 있다. 성탄절의 추억을 아이들에게 만들어주고 싶은 작은 바램이다. 쓸쓸한 성탄절 기념으로 전 식구가 사진이나 찍을까 했더니 제시 얼굴의 상처가 채 낫지 않아 그것도 여의치 못하고 연기할 수밖에 없다. 전란으로 깊고 깊은 산촌으로 다니며 자라나는 제시, 성탄절이 뭔지, 한 해가 가고 오는 것이 뭔지, 즐겁고 떠들썩한 사람들의 들뜬 분위기가 제시에게는 낯설게만 느껴진다. 그래도
제시가 달리기와 노래로 성탄절을 즐겁게 보내고 있다.
1939년 12월31일
일기는 명랑했다. 오늘이 1939년 마지막 날이다. 각 관공청에서는 정문에 장엄찬란한 단장을 모두 하고 항전 시기이지만 신년을 아니, 중화민국 창립 기념일을 용성히 지키려 하고 있다. 이날을 기념하여 집집마다 대문 좌우상황에 ‘항전 성공’ ‘민국 만세’ ‘민족 부흥’ ‘영수에게 복종하자’는 등의 격렬한 글을 붉은 종이에 훌륭하게 써서 붙였다. 이런 행사가 모두 신년의 감회를 일으키고 있다. 적기의 공습에 부대끼며 지녀던 나날, 위험한 만리원정, 험준한 산길에서 자동차 바퀴 위에 구중한 생명들을 던지고 있던 초조한 시간들이며 일본 비행기 공습으로 작탄이 투하될 때마다 머리털이 하늘을 향해 치솟던 조마조마한 시간, 그 시간들을 가지게 하던 1939년 마지막 가는 날이 아닌가!
철모르는 제시는 이러한 감상이 있는 것을 말로 발표하지 못하지만 어찌 다 세상의 그 많을 사람들이 그러할 손 있으랴! 이 해를 보내었다. 영영 보내었다. 다시 만나지 못할 곳으로 멀리멀리 아주 보내고 만 것이다.
어서어서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해야 광명한 때가 곧 오게 되리라. 세월이여! 빨리빨리 가서 우리에게도 광명한 날을 맞도록 도움이 되어 주소서! 1939년 제시의 일기는 이로써 마감한다.
백두산이 높이 솟아 길이 지키고
동해물과 탕하수 둘러 있는 곳
생존자유 얻기 위한 삼천만
강하고도 씩씩한 빛 띠고 있도다
한 깃발 아래 힘 있게 뭉쳐
용감히 나가 악마 같은 우리 원수
쳐물리치자!
우리들은 삼천만의 대인 앞에서
힘차게 싸우는 선봉이다
-수첩에서 발견한 싯구
(당시 교포들이 많이 부르던 노래 가사다)
▲첫 돌을 맞이한 제시
▲양우조·최선화 부부가 친필로 쓴 ‘제시의 일기’ 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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