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예술인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그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정녕 지상 낙원이 펼쳐지는 걸까. 아니면 먹는 게 형벌이 되는 가혹한 세계가 거기, 그곳에 기다리고 있는 것인가. 만약 후자라면 디즈니 애니메이션 ‘라따뚜이’에 나오는 음식 비평가 안톤 에고처럼 비쩍 말라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음식은 깨작거리면서 미각만이 시퍼렇게 날서 찰나의 맛만을 집요하게 탐닉하는 섬뜩한 세계가 될 수도 있겠다. 물론 트래블 채널 인기 프로그램 ‘노 레저베이션’(No Reservations)의 진행자 앤토니 보데인처럼 음식이 곧 인생이며, 예술이며 유머인 이들도 있을 수 있겠다.
바로 이런 음식에 관해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진 이들이 모여 해마다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을 뽑는 행사가 있으니 이름하여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 50’이다. 세계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기관인 미슐랭(Michelin Guide)과 자가트(Zagat)와 더불어 세계 3대 평가기관으로 꼽히는 이 리스트는 미네랄워터 제조사인 펠라그리노가 후원하는 행사로 해마다 미식가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발표이기도 하다.
올해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50곳의 레스토랑 중 관심을 끄는, 알아두면 언젠가는 쓸모가 생길 수도 있을, 그리하여 죽기 전 한 번쯤은 맛봐야 할 레스토랑 5곳을 소개한다. 그 깊고도 오묘한 맛의 세계를 산책하며 짧은 붓끝의 가벼움을 타박해 보기도 하지만 감히 단언컨대 결국 예술은 장인의 인생 그 자체였다.
■세계 최고 레스토랑 2009 리스트
엘 불리 예약경쟁률 1,000대1
뉴욕 한인셰프 31위 첫 포함
#영원한 지존, 스페인 엘 불리(El Bulli)
www.elbulli.com
일반인들에게는 낯선 이름이지만 이미 ‘이 바닥’에서는 전설로 통하는 레스토랑이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도 차로 3시간을 넘게 운전해 가면 한적한 해변에 달랑 레스토랑 한 채 있는 이곳은 올해로 5년 연속 ‘베스트 레스토랑 50’ 리스트 1위에 오르는,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이다. 당연히 미슐랭 3스타는 말할 것도 없다. 그 유명세 덕분에 예약 경쟁률이 1,000:1이라고 할 정도니 그 명성을 알고도 남음이 있다. 이 놀라운 예약 경쟁률은 사실 엘 불리의 오픈시간과도 무관하지 않다. 1년 중 6개월만 오픈하다 보니 예약은 하늘에 별따기. 나머지 반년은 요리 연구와 새 메뉴 개발로 보낸다고 하니 웬만한 유명 미식가들도 엘 불리에서 밥을 먹기 위해선 몇 년 기다리는 것은 예사. 이 식당의 오너이자 셰프인 페란 아드리아(사진 ?)는 접시닦이로 출발, 요리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과 집념으로 세계 최고의 셰프가 됐다. 그의 요리는 최근 가장 각광 받고 있는 분자 요리(Molecular Gastronomy). 분자 요리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식재료를 이용, 새로운 맛을 내는 것이다. 늘 상상 이상의 요리를 보여주는 엘 불리에서의 저녁식사, 죽기 전 한번쯤은 해봐야지 않을까.
#미국의 자존심, 펄 세(Per Se)
www.perseny.com
토마스 켈러. 셰프들이 사랑하는 셰프라는 헌사에다, 미슐랭 스타 별 3개짜리 식당을 동시에 2곳(펄세와 프렌치 런드리)이나 운영하는 지구상에 단 두 명뿐인 셰프 중 한 명인 그는 미국에서도 제대로 된 프렌치 쿠진을 맛볼 수 있게 하겠다는 신념을 현실화시킨 인물이다. 미국 내 최고의 레스토랑의 대명사가 돼 버린 ‘펄 세’의 뜻은 ‘by itself’로 조금은 거만한(?) 식당이다. 물론 다른 여타의 스타 셰프들의 식당들이 그렇듯 이곳도 반 년 전부터는 예약을 해야 하는 것은 물론 그 경쟁률도 수백 대 일에 이르다보니 돈만 있다고 식사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 그러나 레스토랑 테이블 수가 고작 16개(좌석수 64개)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치열한 경쟁률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이곳의 인기 메뉴는, 아니 이곳을 찾는 이들이 무조건 찾는 메뉴는 바로 프리픽스(Prix Fixe) 메뉴. 즉 그날 가장 최상의 선도를 가진 재료들로 켈러가 선택한 9코스 요리가 제공되는 메뉴라고 한다.
미국의 자존심으로 알려진 펄 세 레스토랑의 내부.
#미국 요리계의 샛별, 아리니어(Alinea)
www.alinearestaurant.com
이번 리스트에서 가장 돋보이는 레스토랑이다. 그것도 미국내 식당의 본고장이라 할 수 있는 뉴욕이 아닌 시카고다. 올해 서른 다섯의 패기만만한 미소년 이미지를 간직한 아리니어의 오너 겸 수석 셰프 그란트 아카츠(Grant Achatz)는 셰프로서의 운명을 타고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아버지 대부터 시카고에서 식당을 운영해와 키친은 어린 시절부터 그의 놀이터이며 공부방이었으니 말이다. 미국 대표 요리학교인 CIA를 졸업한 후 그가 들어간 곳은 바로 토마스 켈러가 운영하는 나파밸리 소재 ‘프렌치 런드리’. 그곳에서 두각을 나타내 켈러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그는 2년만에 켈러의 수셰프(부 요리장)에 오른다. 그 후 2001년엔 일리노이 애반스톤의 고급식당인 ‘트리오’ 레스토랑 총괄 셰프로 들어가면서 그는 유명세를 타게 된다. 시카고 트리뷴과 여행잡지 등에서 그는 미국 차세대 스타 셰프로 떠올랐고 이를 발판으로 그는 2005년 5월 시카고에 지금의 아리니어를 열게 이른다. 아리니어는 불어로 ‘새로운 문장’이라는 뜻으로 그 이름에 걸맞게 현재 그는 미국 요리의 새로운 챕터를 써가고 있는 중이다.
#스타 셰프의 원조, 피에르 가니에르(Pierre Gagnaire)
www.pierre-gagnaire.com
‘키친의 피카소‘라는 명성에 걸맞게 피에르 가르니에(사진 ?)는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한번쯤은 이름을 들어봤을 스타 셰프의 원조 격이다. 미슐랭 3스타를 이야기할 때 가장 많이 논해지는 스타 셰프이며 파리 그의 식당 역시 다른 스타 셰프들처럼 한끼 식사 예약을 위해 수개월 전부터 예약을 해야 하는 곳이기도 하다. 1997년 파리 발자크 호텔에 자신의 이름을 건 식당을 오픈했으며 그 후 1년만에 미슐랭 3스타를 받는 영광을 얻게 된다. 그후 그는 런던, 도쿄, 홍콩, 두바이 등에 연이어 식당을 오픈하더니 올해는 서울 롯데 호텔에도 그의 이름을 건 식당을 열기에 이른다. 그 역시 여러 가지 식재료를 이용하는 분자요리의 대가이며 무엇보다 재료의 질감과 조직을 과학적으로 분석, 조리법을 개발한다고 한다. 그만의 독특한 색과 선으로 인해 보는 순간 ‘가르니에 표’요리라는 것이 단박에 들어 날 정도다.
#한국요리의 가능성, 모모후쿠 쌈(Momofuku Ssam)
www.momofuku.com
오픈 3년도 채 안돼 명실상부 세계 최고의 레스토랑에 진입한 것이다. 그렇다고 점잔 빼는 식당도 아닌 ‘쌈집’이다. 한인 2세 데이비드 장(32·사진 ?)이 이 리스트에 진입한 것만으로도 화제를 모았던 ‘쌈’은 이미 뉴욕타임스 등 음식 평론가들이 최근 사랑해 마지않는 식당이다. 뉴욕 프렌치 요리학교를 졸업하고 유명 셰프인 장 조지와 톰 콜리치오 다니엘 밑에서 일하다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파크 하이야트 호텔에서 20년 경력의 장인에게 소바 만드는 법을 전수받아 2004년 뉴욕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그의 첫 레스토랑은 모모후쿠 누들 바(Momofuku Noodle Bar). 그해 뉴욕에 폭발적인 라면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누들 바 인근에 한국의 쌈요리를 기반으로 한 모모후쿠 쌈 바(Momofuku Ssam Bar)를 오픈했다. 그가 3곳의 레스토랑에 이름붙인 모모후쿠는 전설적인 일본의 라면왕이며 닛신식품의 회장이기도 한, 지난 2007년 작고한 안도 모모후쿠의 성을 의미한다고.
<이주현 기자>
■올해 리스트 특징은
그란트 아카츠 ‘돌풍’… 비주류 대거 진입
2009년 50위권에 든 레스토랑 리스트들을 살펴보면 예년과 달리 다이내믹한 변화가 있었다.
이번 리스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셰프라는 헌사가 무색한 프랑스 피에르 가르니에의 식당이 자그마치 6단계나 떨어져 9위를 기록한데 있다. 이뿐 아니다. 미국 내 피에르 가르니에라 할 수 있는 토마스 켈러의 프렌치 런드리 역시 7계단이 떨어져 12위에 가까스로 턱걸이했다. 반면 최근 미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예 셰프 그란트 아카츠의 아리니어가 새롭게 ‘탑 10’에 진입하는 돌풍도 주목할 만하다. 또 뉴욕 요리계에 떠오르는 한인 셰프 데이빗 장의 ‘모모후쿠 쌈’도 31위를 기록해 한국계 요리사로는 최초로 이 리스트를 장식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이외에도 그간 단 한번도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적이 없는 일본의 도쿄 소재 나리사와 셰프의 식당(Les Creation de Narisawa)도 20위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이처럼 올해는 주류와 비주류가 어우러져 다이내믹한 맛의 전쟁의 진면모를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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