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변동하고 있는 인구(人口)는 모든 것을 변화시킨다. 한 지역 사회를 송두리째 바꾼다. 때로는 한 문명의 운명을 결정짓기도 한다. 인구 학자들은 그래서 인구통계는 바로 운명이라고 말한다.
불황의 사이클은 언제쯤 그 끝자락을 드러낼까. 오르고 내리는 주식 값에 일희일비가 스친다. 관심은 여전히 경제뉴스다. 그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는 한 가지 합의가 내려지고 있다. 주택 값 안정이야말로 모든 경제적 불안을 제거하는 주요소라는 쪽으로.
관련해 주목되는 한 분석이 나왔다. 이번 불황을 인구통계학적 측면에서 볼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데이빗 골드먼의 지적으로, ‘자녀를 둔 두 부부’- 전통적 가정 수의 급격한 감소가 이번 불황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젊은이들은 새로 가정을 꾸민다. 비즈니스를 일으킨다. 노년층은 그 필요한 자금을 빌려준다. 노년층은 보다 풍족한 은퇴생활을 기대하면서 젊은이들이 새 세대(世帶), 새 가정을 형성해나가는 데 투자한다.
말하자면 금융신용시장을 인생의 사이클에 비유될 수 있다는 것으로 그 리듬에 고장이 생길 때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하는 것이 그가 제시하는 주요 시사점이다.
미국의 새 세대를 형성해 나가는 주력은 다름 아닌 ‘자녀를 둔 두 부부’가정이었다. 아이를 키운다. 그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적절한 크기의 공간이다. ‘마이 홈’이란 말이다. 때문에 구매력이 가장 강하다. 그리고 주택시장의 지주역할을 해왔다.
이 전형적인 가정이 점차 희귀종이 되고 있다. 바로 이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주택시장의 붕괴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또 금융신용시장의 질서가 그 근본에서부터 무너질 수 가능성도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은가 하는 점에서다.
미국 인구는 1970년 2억에서 3억 정도로 크게 증가했다. 전통적 가정 수는 그렇지만 별 변동이 없다. 그 때나 오늘날에나 2,500여만으로 고정돼 있다.
미국의 전체 세대수는 1963년 현재 4,700만에서 2005년에는 7,700만으로 늘었다. 무려 3,000만 이상 불어난 것이다. 그러나 늘어난 세대의 대부분은 ‘1인 가정’, 혹은 ‘자녀가 없는 가정’ 등이다.
특히 급격히 증가한 가정이 자녀를 둔 편모, 또는 편부 가정이다. 무려 3배 이상 늘었다. 미성년 어린이 인구는 1960년에는 전체 미국인구의 50%이상을 차지했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30%도 채 안 된다.
‘자녀를 둔 두 부부’가정은 보통 3베드룸 이상의 집을 필요로 한다. 70년대 초 이런 주택은 3,600여만 유닛으로 집계됐다. 이런 전통적 의미의 가정이 희귀종이 된 요즘 3베드룸 이상 주택은 7,200여만 유닛에 이른다.
보통 심각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아니다. 주택시장의 크래시는 이미 예견되어왔던 것으로, 오늘날 경기불황이 주택시장에서 촉발됐다는 것은 결코 놀랄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 전망도 그리 밝지 못하다. 자녀를 둔 가정 수는 계속 줄고 있다. 그 대신 늘고 있는 형태의 가정이 ‘1인 가정’이다. 2025년께 자녀를 둔 가정은 현재의 50%에서 25%로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주택시장에 지각변동을 가져올 판이다.
이 통계숫자들은 한 가지 숨겨진 그림을 보여준다. 거대한 문화전쟁이 전개돼 왔다는 사실이다. 그 전쟁은 전통적 가치관 수호세력의 패배로 점차 결말지어지고 있고, 그 가장 직접적인 피해자는 바로 미국의 가정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 세대 전만해도 가정 하면 ‘엄마와 아빠, 그리고 자녀들’이 미국적 상식이었다. 그 상식이 무너졌다. 전통적 가정은 점차 변종 취급을 당하고 있다. 대신 ‘1인 가정’이 보편적 형태의 가정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현실과 함께 목도되는 것이 있다. 풍요의 축복이 거두어지고 있다고 할까, 그런 현상이다. 어쩌면 자승자박의 결과일 수 있다. 지난 한 세대는 극도의 번영을 구가한 시기였다. 그러나 안일과 공허의 시기이기도 하다. 미국의 가정이 서서히 무너져 가면서 어린이 인구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어린이는 그 사회의 부(富)이자, 자산이다. 빈곤의 그림자가 점차 짙어지면서 번영의 시기를 지배한 병든 문화가 그 자산을, 그 부를 탕진시켰다는 지적이 뒤늦게 나오고 있는 것이다.
생육과 풍성한 결실은 모든 생명체에 대해 내려진 축복이다. 그 축복을 스스로 거부할 때 오는 결과는 무엇일까. 가정의 달을 맞아 새삼 던져보는 질문이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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