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엄청난 경기부양 재정정책과 구제금융 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위기는 쉬 나아지지 않고 있다. 그래서인지 ‘경제의 위기’는 ‘경제학의 위기’, 더 나아가 ‘경제학자의 위기’로까지 발전하는 최근의 경향을 보여준다. 고등논리를 바탕으로 발달해 온 경제학은 현 상황에 대해 무슨 해명을 하고 있으며,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이나 주요 경제정책 결정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경제학자들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인가 하는 주장이다.
‘비즈니스 위크’지가 지난 9일자에 보도한 어떤 블로그는 경제학자들에게 연구실 골방에서 탐구하는 비가시적인 가치인 학문을 내던지고 오히려 “채소를 줍는 것”같은 사회에 가시적인 가치가 되는 일을 하라고 권고하고, 다른 블로그는 항상 칠판에 그리는 “공급곡선에서 뛰어내리라(자살하라)”라고 혹평하고 있다. 1930년 대공황 이후 70년만에 닥치는 최대의 경제위기여서인지 경제위기를 다루는 경제학이나 경제학자들에 대한 불신이 고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경제학의 위기, 경제학에 대한 불신을 가능케 하는 근거는 무엇인가. 첫째, 현대 경제학이 그 바탕으로 하고 있는 근본적인 전제에 대한 불신이다. 현대 경제학의 모든 이론 전개는 ‘경제인간’(Homo Economicus)이라고 하는 근본 전제를 바탕으로 형성되어 있다.
경제인간이란 경제 행위와 관련해서 ‘포괄적인 지식’을 갖고 있고 ‘합리적인 판단’을 행하는 인간 정체성을 의미한다. 포괄적인 지식은 미래에 대한 확신을 내용으로 하고 있으며, 합리적인 판단은 자기 이해와 전체 이해와의 균형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경제인간을 바탕으로 발전된 경제체제가 바로 시장 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경제인간은 적절한 범위를 벗어나 지나친 방향으로 발전해 나아갈 수 있는 위험을 항상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미래는 언제나 불확실성을 간직하고 있는데 확신이 지나친다든지, 자기 이해에 너무 기울어져 균형을 깨쳐 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게 된다. 금융자금 관리자들의 지나친 확신과 지나친 자기이해 치중이 지금의 금융위기를 낳고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주장이 바로 이를 설명해 준다.
둘째, 현대 경제학이 전망하고 있는 경제예측에 대한 불신이다. 해마다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경제예측이 쏟아져 나오는데 한 번도 제대로 맞춘 경우가 없을 뿐더러 특히 금번 최악의 경제위기에 대해서는 예측을 전혀 하지 못하였다. ‘Blue Chips Economic Indicators’가 2008년 4·4분기 GDP 성장이 0.2%가 될 것으로 지난해 9월에 예측하였는데 실제 -6.3%로 떨어졌고, 연방준비은행이 2008년 말 실업률을 5.5~5.8%로 작년 6월에 예측하였는데 실제로는 6.9%로 상승한 예측의 오류가 이를 증명한다.
셋째, 현대 경제학이 내놓고 있는 경제위기 구제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확실성이다. 20세기 초 이후 취하여 온 국민 경제정책을 다루는 거시경제학은 정부지출 증대와 세금감면을 내용으로 하는 재정정책을 주장하는 간섭주의 학파와 이자율 하락을 내용으로 하는 화폐정책을 내세우는 균형주의 학파의 주기적 역사를 걸어 왔다.
전자의 제창자는 존 메이나드 케인즈이고 후자의 주창자는 밀턴 프리드만이다. 아직도 거시경제학에서는 두 학파의 정책메뉴에 대한 일치된 합의가 없는 것이 정책제시에 대한 불신을 부추긴다. 더구나 오바마 행정부가 취하고 있는 경기부양 정책 및 구제금융 정책이 전통적인 거시경제학의 규모와 범위와 틀을 훨씬 초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효과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이론전개의 근본전제인 경제인간에 대한 불신, 경제예측에 대한 불신, 그리고 경제위기 구조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확실성 때문에 현대 경제학은 위기에 처해 있고 현대 경제학자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경제위기와 경제학의 위기가 밑바닥까지 내려가고 모든 것이 실패한 후에야 그 실패의 잿더미에서 불사조처럼 새롭고 더 좋은 21세기 거시경제학이 탄생하게 될지 모를 일이다.
백 순/ 연방노동부 선임경제학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