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구제자금을 받은 대형 은행들을 조사한 결과 방법론에 차이가 있지만 일단 대형 은행들의 대출이 줄었다는 소식이다. 그리고 이 소식에 대한 반응은 구제자금을 주어봤자 경제에 보탬이 안 된다는 실망과 은행권에 대한 불만이라고 하겠다.
대출이 늘기를 바라는 이유는 그래야만 경제가 살아날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 침체를 겪고 있는 주택경기도, 전성기에 비해 반 토막 난 자동차 판매도 대출이 뒷받침해 주면 늘어날 수 있다. 전전긍긍하는 소매도 크레딧카드가 늘어나기만 기다리는 형편이다.
그런데 막상 구제자금을 받은 은행들의 대출이 오히려 줄었다는 소식이 나오자 구제자금의 효과에 대한 의구심이 생기고 정부가 더 강하게 은행 대출을 유도해야 한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구제자금은 곧바로 은행의 대출로 연결된다는 기대는 그 자체부터가 무리한 발상이다. 우선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은행권은 극심한 손실에 시달리면서 자본금 부족에 시달려 왔다. 구제자금은 바로 이 부족한 자본금을 메워주는데 쓰여졌다. 구제자금으로 일단 자본금 부족을 채웠으니 대출 확장의 여유가 없었다.
또 자본금에 여유가 있는 은행들조차도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부실이 나올지 확신치 못하는 상황에서 필요 자본금보다 더 많은 자본금을 유지해 안전판을 갖고 싶어 하다 보니 대출확장에 적극적일 수 없다.
거기에다 그동안 서브프라임 사태 시절 가장 중요한 자금줄이었던 채권시장이 아직도 마비가 돼 있어 대출자금은 구제자금과 상관없이 아직도 움츠러들어 있다. 은행은 자본금으로 대출을 하는 것이 아니고 자본금을 바탕으로 몇 배의 자금을 확보해 대출을 하는 것인데 주요 자금원인 채권시장이 막혀 있으니 아직도 대출이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게 은행이 대출을 하기 어려운 면과 함께 대출을 쓰고자 하는 수요 면에서의 어려움도 대출하락에 한 몫을 하고 있다. 경기하락으로 매출이 줄고 실업률이 올라가면서 많은 대출자들의 재정여건이 나빠져 대출자격이 안 되는 것이다.
이렇게 은행의 어려움에다 기업과 소비자의 대출자격 조건 악화로 구제자금의 효과가 없다고 하면 아까운 국민의 혈세로 은행을 구제해 준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비판도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은 두 가지 중요한 구제자금의 목표를 간과하고 있다. 첫째로 구제자금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금융권 안정에 있다. 금융권의 안정이 무너지면 경제가 파국으로 간다는 대공황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이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정부의 최우선 목표는 금융권의 안정 확보에 두어졌다.
작년 말에 너무 하다 싶어 내던진 리먼 브라더스사의 파산이 전 세계 금융권을 몇 달간 공포에 빠지게 했던 사건을 보면 금융권의 안정이 얼마나 절실했는지 알 수 있고 이 면에서 금융권을 안정시킨 구제금융의 첫 번째 목표는 어느 정도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만하다.
두 번째 목표는 대출시장의 활성화인데 이번 대출감소 결과에 대한 재무부의 발표대로 구제금융이 없었으면 이 정도 감소가 아니라 훨씬 더 심한 감소를 가져왔을 것이라는 점에서 구제금융의 목표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평가될 수 있다.
정부 정책의 효과를 측정하는데 있어 꼭 성장한 것만이 목표가 아니라 하락을 ‘멈추게’ 만든 것도 목표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바로 구제금융으로 은행들이 대출을 덜 줄인 것도 경기부양에 기여를 한다는 것이다.
누구나 너무나 깊고 오랜 불황에 지쳐 있다. 그러다 보면 자연 정부를 쳐다보게 되고 빨리 효과가 나오지 않으면 정부의 무능을 탓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정책은 그 목표를 정확히 이해해야만 공정한 평가가 가능하고 그래야 정부를 믿고 국민이 희망을 갖고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
구제금융의 목표는 은행권의 안정과 대출 증가에 있다. 그러나 그 목표의 시행과정은 시점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지금은 일단 금융권의 몰락을 막고 더 심한 대출 축소를 줄여 가는데 있고 이런 각도에서 보면 많은 성공을 하고 있다. 이제 이를 발판으로 다음 단계의 목표를 향해 가야 한다.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우리의 격언이 지금 구제자금을 평가하는 잣대가 되어야 한다.
최운화/ 커먼웰스 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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