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을 규명하겠다는 것은 인간의 생각일 뿐이지, 신이나 자연의 영역이다. 프랑스 역사가 마크 불록이 예시했듯이 ‘등산로에서 절벽으로 떨어져 죽은 등산객의 사망 원인은 실족’이지만, 많은 다른 원인들도 도사리고 있다.
일반 상업은행과 투자은행 간의 영역을 제한했던 금융법이 유명무실화되어 이번 금융위기가 야기되었다고 한다. 그것이 원인이라면 ‘글래스- 스티글 법’ 같이 법을 재정비하면 되는가? 비슷한 맥락으로 보면 ‘규제’ 불충분이 위기의 원인이니 규제 강화가 해결책이다.
이런 규제강화론 추세하에서 버젓이 일어났던 ‘AIG 임원 보너스’사태를 보면 그것은 아니다. 시장의 ‘탐욕’이 원인이라는 주장은 우리 집에 왜 불이 났느냐 하는 질문에 공기 중 산소 때문이라고 답하는 격이다. 좀 비약하여 말하면 ‘자본주의’ 때문에 이번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인규명이 어렵다고, 정책의 정당성과 효율성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구체적으로 보험사 AIG 경우를 생각해 보자. 간단하게 말하면 AIG가 망하면 전체 경제에 미치는 여파가 너무 커 정책자금을 지원하여 AIG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정치적 결정으로, 이 점이 정책의 정당성을 부여한다. (한편 GM도 망하면 그 여파가 비록 옛날 같지는 않아도 크다. GM 지원 문제에서도 정치적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우선 AIG가 망할 경우 AIG사에 보험을 든 선량한 고객들을 보호해 주어야 할 ‘정치적’ 정당성은 인정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정책적 자금을 지원하는 점에 대하여는 많은 공감이 이루어졌었다. 그러나 AIG가 고객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근거로 운용한 자산상태까지 구제해 줄 필요는 없었다. 이는 마치 F학점을 받은 학생의 점수를 B나 C학점으로 바꿔 주는 격이다.
그러나 AIG의 주장은 때도 그렇고 시험도 어렵고 하여 전체 평균이 C나 D학점 밖에 되지 않느냐이다. 구체적으로 어려운 ‘파생상품’에 투자했는데 경제가 어려워져서 이렇게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AIG 같은 ‘기관투자자’도 파생상품이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파생상품의 본질은 변하는 것이 아니다.
파생상품의 가장 대표적인 것은 주식옵션이다. 옵션은 예컨대 한 주식을 주당 100달러에 사기로 투자자간에 맺는 계약이다. 그 계약의 가치는 그 주식의 가격으로 부터 ‘파생’되는데, 예컨대 그 주가가 100달러 이하이면 그 계약의 가치는 없다. 왜냐하면 시가 100달러 이하짜리 주식을 굳이 100달러를 내고 살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그 주가가 110달러면 그 계약의 가치는 10달러이다. 이 경우에는 110달러짜리 주식을 100달러만 내고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투자자간의 이러한 옵션거래는 제로섬게임이다. 옵션거래에서는 한 투자자가 이득을 본만큼 다른 거래자가 똑 같이 손해를 본다. 이 점이 옵션 같은 파생상품의 특징인데, 물론 이번에 문제가 된 AIG의 파생상품은 모기지 관련 파생상품이다.
하지만 AIG가 중요하다 하여 AIG의 이런 파생상품 투자까지 구제하여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이런 파생상품 투자의 연결고리가 어디까지인지 불확실한 점은 있지만, 그렇다고 그런 ‘투자’ 실패까지 보호하여야 하는 점은 수긍할 수 없다. 더군다나 앞에서 보았듯이 제로 섬 게임인 파생상품 투자는 한 거래 당사자의 이익 보호로 끝난다.
이런 구별없이 일괄적인 AIG 구제는 AIG의 파생상품 투자는 말할 것도 없고, 예컨대 AIG가 자사 임원들과 맺은 보너스 계약까지 유효하게 유지하는 것이다. 구제 금융으로 살아나게 된 회사 덕분에 ‘권한’이 있는 보너스를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선심’을 쓰기는 하나, 원천적 투자실패에 따른 책임은 남는다.
보험회사의 프리미엄을 파생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합당한 것인지? 투자하는 경우에도 그 위험관리, 즉 ‘보험’은 대비했는지? 이렇게 보면 AIG는 보험회사였지만 보험회사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지 않은 것이다. 나아가서 사실은 AIG는 보험회사와 그보다 규모가 더 큰 파생상품 투자회사, 별개의 두 회사였던 것이 이번 AIG 위기의 원인이다.
정요진/ 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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