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100일이 중요하다. 미국에서 정설로 굳어져 있는 정치적 상식이다. 새로 대통령이 취임한다. 그 새 행정부의 성공여부는 취임 첫 100일에 대체로 달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취임 100일을 맞으면 새 대통령에 대한 평가로 미국 언론은 떠들썩하다.
오바마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다. 여러 면에서 ‘역사적’이란 수식어가 붙는 대통령이 오바마다. 그래서인지 취임 100일을 훨씬 앞둔 시점에서부터 그 평가 작업이 봇물을 이루어 왔다.
오바마에 대한 첫 성적표는 그러면 어떻게 나오고 있을까. ‘So far, so good.’- ‘아직은 더 두고 보아야겠지만…’이란 단서가 붙어 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그런대로…’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의 평가도 그렇다. 40여명의 해외정책 전문가들을 동원해 첫 100일간의 성적표를 작성했다. 그 결과 A학점이 11명, B가 16명, C가 7명, 그리고 D가 1명으로 각각 나타났다. 종합하면 평균 B학점 정도의 성적을 거둔 셈이다.
해외정책 성공의 중요 척도의 하나는 국제 사회가 미국에 보이는 호감도다. 바로 이 점에서 오바마 행정부 100일은 성공적이다.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진보세력은 말할 것도 없다. 보수주의자들도 오바마 대통령 취임 후 달라진 국제 사회의 분위기를 지목하면서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서슴지 않고 있다.
오바마의 첫 해외나들이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다. 겸손한 자세로 일관했다. 그리고 일방주의를 지양, 다자주의를 제창했다. 이런 자세로 미국의 이미지를 쇄신시켰다는 호평이다. 하여튼 대체로가 후한 평가다. 이라크 정책도, 아프가니스탄 정책도 종전에서 크게 이탈하지 않는 신중함을 보였다는 식으로.
그러나 인권정책으로 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그러면서 ‘허니문’기간이랄 수 있는 첫 100일이 지난 후에도 오바마 행정부는 과연 계속해 좋은 평점을 유지할 수 있을지 상당수 전문가들은 우려의 눈길을 던지고 있다.
인권문제에 그렇게 무신경할 수 있을까. 취임 100일이 채 안 된 시점에서 오바마 행정부에 쏟아지는 가장 신랄한 비판이다. 미국의 대통령이 독재자와 악수를 한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를, 또 니카라과의 다니엘 오르테가를 만나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그렇지 않아도 중국의 인권상황에 침묵하는 오바마 행정부에 실망했다. 그런데 차베스 같은 독재자에 손을 내민다. 그래서 나오고 있는 반발이다. 그 연장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이 ‘사과(apology)외교’다. ‘오바마 독트린’의 효용성이다.
“취임 100일이 안 되는 기간 동안 오바마가 한 일은 3개 대륙에서 미국과 전직 대통령들이 저지른 죄를 사과하는 것이었다.” 한 보수 논객의 발언이다. 현직의 미국 대통령이 해외에서 미국의 정체성을 흔들어 댄다는 비난이다.
“마치 온 세계의 팬들로부터 사랑을 받으려는 록 스타 같은 처신을 하고 있다.” 이어지는 ‘사과 외교’에 대한 비판으로, 상찬만 받으려는 마인드 셋이 문제라는 거다. 미국의 대통령은 상당히 어려운 결정을 하는 자리이지, 인기를 유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비판과 함께.
‘두려움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사랑을 받는 편이 났다-. ‘오바마 독트린’의 지도 원리를 또 다른 전문가는 이런 식으로 풀이했다. 그 원리에서 출발한 ‘사과 외교’가 회교 혁명정권 이란,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 이슬람이스트 극단주의세력, 중국, 러시아, 북한 같은 체제에게 과연 통할지 강한 의구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의 포인트는 이렇다. 일종의 탐색기간이라고 할까. 취임 100일 동안의 기간 말이다. 그 기간 동안 오바마는 이상적인 발언만 해왔다. 화해의 제스처를 취했다. ‘상대가 주먹을 편다면 나의 손을 내밀 것’이라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 탐색기간, 그 밀월기간이 이제는 끝났다. 눈앞에 펼쳐진 현실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파키스탄은 탈레반에 넘어갈지 모를 위기를 맞고 있다. 이란은 여전히 핵개발에 혈안이다. 러시아의 그루지야 2차 침공이 임박한 가운데 중국의 인권상황은 날로 악화되고 있다. 중동지역에서는 또 한 차례의 전운이 감돌고 있고….
‘지금까지는 그런대로…’다. 문제는 앞으로 100일 후, 1000일 후다. 엄혹한 국제정치의 현실이 언제까지 미국 대통령을 ‘미스터 나이스 가이’로 놔둘까 하는 것이다.
“현재의 궤적을 그대로 답습할 경우 미국은 사랑도, 두려움의 대상도 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오바마 취임 100일’에 즈음해 리거텀 인스티튜트의 윌리엄 임보든의 지적이다.
그 말이 공연한 말로 들리지 않는다. 미국을 종이호랑이로 보고 북한이 미사일을 쏴댄 게 엊그제인 시점에서 특히.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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