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 객원논설위원. 목회학 박사
내일이면 부활절이다. 부활절은 기독교가 중심인 미국에서는 가장 큰 경축일 중의 하나다. 12월에 크리스마스인 성탄절이 있다면 4월엔 부활절이 있다. 교회에서는 부활절을 부활주일로 맞는다. 부활절이란 기독교의 창시자가 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 것을 기념하여 갖는 절기다.
죽은 자가 어떻게 살아날 수 있냐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는 증명할 길이 없다. 그러나 신앙 안에서는 혹은 믿음 안에서는 그것이 가능하게 된다. 천주교와 개신교를 포함한 기독교의 신앙 교리 가운데 예수가 부활하여 메시아가 되는 부활절의 의미는 가장 핵심 중의 핵심이다. 부활의 사상을 기독교에서 빼 버린다면 기독교는 존립할 수 없다. 예수의 부활사상을 이해하려면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육신의 옷을 입고 태어난
성탄절부터 알아야 한다. 기독교의 교리에 의하면 본래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의 죄를 구속하려 아들을 이 세상에 보냈다. 그것이 바로 예수 탄생의 성탄절이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는 것은 기독교의 핵심교리인 3위 일체 설에도 나타난다. 3위 일체란 성부와 성자와 성신을 가리킨다. 성부는 하나님, 성자는 예수 그리스도, 성신은 성령을 가리킨다. 기독교에서는 3위 일체 설을 부인하면 이단이 된다. 3위 일체 설을 부인하게 되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 교리도 기독교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그러기에 기독교에서는 성탄절과 부활절을 가장 크게 맞이하여 기념한다.
하나님의 아들로 세상에 태어난 예수는 기독교의 교리에서는 메시아가 된다. 메시아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온 존재다. 예수는 메시아가 되어 세상 모든 사람들의 죄를 지고 하나님 앞에 속죄 제물로 바쳐지는 것이 십자가상의 죽음이다. 십자가에서 죽어 사람들의 죄를 구속하여 주었을 뿐만 아니라 그는 죽은 자 가운데서 처음으로 살아나는 자가 된다.기독교 신앙에서는 부활하여 하나님 우편에 있는 예수를 메시아, 즉 구세주로 믿으면 믿는 그 신자들은 살아생전에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을 받는다. 그리고 죽은 다음에는 예수처럼 부활하여 예수와 같이 영생의 생을 살게 된다. 기독교의 경전인 신약성서 요한복음 3장16절이 바로 그 것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16절). 이 구절 안에는 기독교의 복음이 한 마디로 잘 함축돼 있다. 이어 17절에는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고 나와 있다.
기독교는 처음 로마로부터 종교로 인정받지 못했다. 서기 325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기독교를 인정함으로 기독교는 세계 종교가 되었다. 이 전까지만 해도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수많은 박해를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죽기까지 배신하지 않고 순교했다.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부터 많은 제자들이 순교 당한 것이 그 예다.
기독교를 믿음으로 한 순교의 대열은 그 때부터 지금까지 계속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순교의 정신 중심엔 바로 부활과 영생 사상이 들어 있다. 죽어도 다시 살아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고 하는 그 신앙과 믿음이 그들에게 죽음을 불사하게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도 조선시대 서학이라고 알려진 기독교를 따르던 천주교인들 수만 명이 순교했다.
부활 주일날 교회에 가면 알록달록 색깔이 칠해진 계란을 나누어준다. 계란에서 새로운 생명인 병아리가 탄생한다는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자는 뜻에서 나누어 주는 것이다. 이처럼 부활의 의미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과 새롭게 시작되는 시간의 역사에 있다. 과거는 지나가고 새로운 날이 시작됨도 부활의 의미에 담겨 있다.
톨스토이 작품 ‘부활’을 보면 러시아의 젊은 공작 네흘류도프가 고모의 집에 하녀였던 카츄샤를 유혹하여 그녀의 순결을 더럽힌다. 카추샤는 그 후 창녀가 되었고 억울한 살인죄의 누명을 쓰고 시베리아로 유배를 떠난다. 네흘류도프는 그녀에게 참회하고 용서를 구하는 마음으로 그녀와 시베리아까지 동행하여 끝까지 그녀를 돕는다. 결국 네흘류도프는 그녀에게 바라던 용서의 정신으로 영혼의 부활을 발견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부활은 이처럼 새로운 세계, 새로운 시간, 새로운 생명, 새로운 영혼의 탄생의 의미를 가져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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