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학준(G2G크리스챤 교육 연구소장)
대규모 한인 이민이 시작된 때부터 어느덧 4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이 땅에 이민 왔는가? 열심히 일하고 자녀들을 교육시켰지만 지금 우리의 비전은 정녕 어디에 있는 것인가? 경제적인 욕구는 높고 교육열은 뛰어나나 정치적,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소극적인 우리들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교회가 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이민 교회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사역해 나간다면 우리는 어떤 유산을 자녀들에게 남겨줄 것인가?
특히 지난 2년 전 조승희 씨의 버지니아 텍 총기 사건 이후 지금 우리 이민교회와 사회는 얼마나 이민 청소년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가? 필자는 청소년기에는 이민 교회를 다녔지만 대학에 진학하거나 직장에 들어간 후에 이민 교회를 소리없이 떠나가는 수많은 2세들을 바라보면서 위의 질문들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비전(꿈)이 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한 성경의 잠언의 구절처럼, 이민 교회는 그 목회적, 사회적 비전을 세워야 할 때가 벌써 지났다고 본다. 이민 교회는 단순히 이민자들을 개인적으로 위로하는 차원을 넘어 이민사회가 가야할 방향, 새로운 가치와 삶의 양식을 제시해야 한다. 이민의 상황과 미국사회의 여러 사회 문화적 변화와 역학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역사의 빛 아래서 재해석하는 신학적 작업이 없다면 한국 이민교회는 미국사회와 역사와의 흐름과는 별 상관없이 우리끼리 머물러 있는 조그마한 웅덩이로 끝날 위험이 다분하다.
무엇보다도 우리 한인교회는 이제 이민사회에 출애굽적인 신앙뿐만 아니라, 입(入)가나안적인 신앙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한국 이민교회는 우리가 겪은 여러 아픔들, 즉 식민지의 핍박과, 전쟁과 분단의 고통, 가난과 민주화 과정에서 겪은 아픔, 그리고 미국 생활에서 오는 외로움과 소외의 경험 등을 신앙으로 여과하며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비전과 문화와 가치를 만들어 내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이와 같은 과제는 교회의 단순한 개인적 열정이나 조직력, 물량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새로운 세계관과 가치와 행동규범의 구성이 요구된다. 한 손에는 성경, 다른 손에는 신문을 들고, 신앙적인 사고와 성찰을 통해 변화하는 세계와 주변과 시대적 도전의 정체들을 이해하는 싸움을 시작해야 한다.
한인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문제들은 간과하면서 개인, 개교회 중심의 성장과 전도, 선교라는 단순한 틀에만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 물론 교회가 전도하고 선교를 해야 하지만, 그것을 우리의 이민 현실과 엮어 주는 비전이 필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비전은 현실의 사회적 모순과 아픔, 또 사람들의 깊은 열망과 씨름하는 노력 없이는 탄생될 수 없다. 마치 모세가 자신과 민족의 여러 아픔과 모순의 경험을 야훼 신앙 속에서 깊이 고민하는 가운데 ‘가나안’이라는 인류 새 공동체의 비전을 걸러낼 줄 알았던 것과 같이, 우리 자녀들도 모세
처럼 자신들이 겪는 이중 문화의 biography속에서 신앙을 통한 새로운 정체성을 발견하고 이를 통해 미국과 인류사회에 공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모세의 가나안의 비전은 단순한 개인 축복과 교회성장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생명이 풍성한 삶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역사적, 창조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이 비전 안에서 예배, 공동체 생활, 가치와 규범의 삶과 방향을 제시했다. 오늘 우리는 개인 중심과 개교회 중심의 신앙을 하나님 중심, 공동체 중심의 신앙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본
다. 모세나 킹 목사처럼 시대와 공동체의 요구를 함께 고민하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위한 기초를 마련해야 한다. 우리가 없이 우리 자녀세대가 없다. 특히 자녀 교육에 대한 열망으로 이민 온 사람들이 한인 사회에 대다수이고 또한 이민교회가 이민사회의 중심이 된 오늘, 우리의 상황 가운데 모세와 킹 목사의 사역에 비추어 현재의 한인사회와 이민교회의 비전을 정립하고 또한 우리들의 사역의 부족한 점들을 보완할 방법들을 배워야 하지 않을까?
우리 이민 1세대가 모세의 세대가 되어 가나안으로 가는 기초를 놓을 때, 우리의 자녀들도 우리의 희생과 노력의 기초위에서 역사의 구경꾼이 아니라 당당하고 멋지게 미국과 인류사회에 공헌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이것이 또한 버지니아 텍의 아픔의 교훈을 진정으로 배우고 극복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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