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한인연합회 전 회장단의 재정 처리와 관련 인수위원회가 의혹을 제기하는 기자회견에 이어 김인억 전 회장과 박을구 전 선관위원장이 4일 반박 성명을 냈다. <본보 4일자 A3면>
그러나 결론적으로 주요 혐의에 대한 서로의 주장이 너무 달라 혼란만 가중됐다는 의견이다. 또 서류나 현장을 확인하는 절차를 통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일들을 언론의 힘을 빌어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해 상대에게 흠집을 내려는 의도도 엿보인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솥밥을 먹었던 한인연합회 관계자들 간에 업무 협조가 전혀 안되는 볼썽사나운 모습도 드러나버렸다. 그중에서도 한인연합회 운영의 난맥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이번 사태에서 드러난 문제점은 전 현직 임원간의 불신, 불성실한 조사와 무책임한 발언, 구태적인 업무 관행, 협회 내 임원들 간의 갈등으로 집약된다. 말이 서로 크게 다른 쟁점 사안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영수증이 위조 였나>
이광교 인수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선관위가 가짜로 영수증을 만들었다”며 증거를 가지고 나왔다. 이날 기자들은 사실 여부를 따져 물었고 이 위원장은 “그렇다, J 식당 사장에게 확인했더니 전혀 식사를 한 적이 없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러나 3일 J 식당 사장은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수위 관계자들이 찾아와 묻길래 후보토론회가 있던 작년 11월14일 저녁 20여명의 선관위 관계자들이 식당에 와 몇 그룹으로 나뉘어 식사를 했고 밤 12시 경 나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또 J 식당 사장은 “영수증을 보자고 했더니 인수위가 안가지고 왔다고 말했으며 나는 그들이 낮에 식사한 적이 없다고 했을 뿐”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인수위는 선관위 관계자들이 낮에 식사를 한 적은 없지만 밤에 몇 그룹으로 나뉘어 식사를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기자회견에서 점심에 이들이 다섯 차례 식사를 한 것처럼 몰아간 꼴이 된다. 또 영수증을 자세히 보면 새벽(AM) 12시 쯤 식사대를 지불한 것으로 기록돼 있어 엉터리 조사를 했다는 비난도 면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이광교 인수위원장은 본보와의 전화에서 “나는 위조 영수증이라고 말한 적은 없다”고 다시 주장하고 있다. 공문서 위조라는 혐의를 받을 수도 있는 중대 사건을 먼저 터뜨리고 보자는 식으로 발표한 탓에 언론과 독자들만 우스운 꼴이 돼버렸다.
<회계장부의 행방>
요지부터 말하면 한인연합회의 2007-8년 회계장부가 연합회관 내에 늘 보관돼 있었다는 게 김인억 전 회장의 말이다. 하지만 회계 장부가 어디 있는지 김 전 회장만 알았지 아무도 몰랐다. 이광교 인수위원장은 “인수위 출범 당시 김영천 회장에게 물으니 모른다고 했으며 사무실 책임을 맡은 김옥순 실장도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니 당연히 사무실 안을 뒤져볼 생각을 하지 않았고 김 전 회장에게 공문을 보내 자료 제출을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이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 공문은 한 달 넘게 헤매고 다니다가 지난 2일 연합회관으로 돌아왔고 이 위원장은 정일순 이사장을 통해 돌려받게 된다. 또 모 한인회 임원은 “회계 장부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왜 인수위에게 알려주지 않았을까? 그 임원의 대답은 “요청하지 않았기 때문에 알려줄 필요를 못느꼈다”는 것. 인수위가 한 달이 넘게 장부를 찾느라 숨바꼭질 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현 회장단은 그저 지켜보고만 있었다는 얘기다. “회계 장부가 있다니 6일 확인하고 재조사를 하겠다”는 이 위원장의 말에 한인들이 어떤 결과가 나올지 큰 관심을 갖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배를 탔던 사람들 맞나>
이해할 수 없는 일은 또 있다. 인수위가 회계 장부 제출을 요구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던 김 전 회장이 그게 어디 있는지 인수위에 언질 한번 주지 않았다는 것도 상식 밖이다. 김 전 회장의 말 대로 연합회관 내에 소중하게 보관돼 있었는데도 현 회장단에서 지금까지 아무도 그 장부를 볼 수 없었다는 대목은 한인사회를 대표한다는 단체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격이다. 김 전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역대 어느 회장도 재정 기록을 넘겨준 적이 없고 이번이 처음”이라고 강조했다. 한인연합회가 그 정도로 부실하게 운영돼 왔다는 걸 인정하는 발언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김영천 회장은 한국에서 돌아오면 인수위와 김 전 회장 간에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가려야할 책임이 있다. 만일 회계 장부가 고스란히 회관 내에 보관돼 있었는데도 인수위만 몰랐다면 명함만 걸고 정작 제대로 조사한 게 뭐냐는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발전된 한인회를 만들어가자는 공통의 목표를 저버린 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의 발목을 붙잡는 행위는 가해자, 피해자 가릴 것 없이 공멸의 빌미만 제공한다. 회계 장부 하나 가지고 소동을 벌이는 한인회 임원들 간의 갈등은 빨리 끝날수록 좋다. <이병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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