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어머님은 이제 논리력이 없으신 것 같아”
“우리 어머님도 마찬가지셔”
학교에서 동료와 이런 말을 주고 받았다. 자신을 이해 못하는 부모에 대한 사춘기 청소년들의 말 같지만, 실은 40대 중년의 자식들이 기억이 흐려져 가는 늙은 부모에 대해 걱정하는 말이었다. 나이가 들면 “먼저 기억력, 그 다음엔 논리적 사고능력이 없어진다”고 한다.
전산과학자들은 ‘기억과 논리’를 다루는 사람들이다. 컴퓨터 칩이 기억과 논리에 근거하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부모에 대한 말을 할 때도 자신도 모르게 하드웨어에 문제가 있는 컴퓨터를 말하듯 한다.
논리적이란 게 뭘까? 다음과 같은 말을 하는 한국사람들을 만난 적이 많다(특히 맥주 서너 잔 마신 후에). “한국 사람들은 논리적 이질 못해요. 논리라면 독일 사람들이지 우린 아냐”
논리가 필수인 전산학, 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논리에는 한 타입만 있는 게 아님을 잘 안다. 프랑스 치즈의 종류만큼 많진 않아도 그에 비할 만큼 다양한 것이다. 시간 추론에 대한 논리가 있는가 하면, 믿음 추론에 대한 논리도 있다. 진실도 아니고 거짓도 아닌 그 둘 사이에도 논리가 성립된다. 자신에 대해 말할 때 서로 상반되는 두 정의를 동시에 존재케 할 수 있는 게 논리다.
그러니까 어머님도 연세가 많아지는 대로 다른 논리가 필요할 뿐이다. 한국 사람들은 어떤가? 정말 비논리적일까?
사실 한국어는 기초논리의 한 예를 아주 잘 보여주는 언어이다. 이번 학기 학생 중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인학생이 있다. 얼마 전 ‘만약(if)’ ‘아니다(not)’ ‘혹은(or)’에 대한 공부를 할 때였다. ‘X or Y’는 가장 보편적 논리에 의하면 ‘X 가 아니면 Y(if not X then Y)’와 같다는 설명을 하면서, 그에게 ‘X or Y’는 한국말로 어떻게 말하느냐 물었다. 모른다고 했다. 한인 친지가 많아 듣는 것은 잘 이해하지만 집에서 영어를 썼기 때문에 말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내가 대신 ‘X 아니면 Y’라고 말해 주었다. 어려운 말을 모를 그에게 쉬운 한국말로 하려니 ‘X 혹은 Y’가 저절로 ‘X 가 아니면 Y’가 된 것이다. 한국 문법은 그렇게 논리적으로 상응하는 두 문장을 서로 자연스럽게 바꾸어 쓸 수 있을 정도로 논리적이다. 한국인들은 논리를 그렇게 자동적으로 이해하지만, 영어를 쓰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만 그 두 문장이 같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는데 말이다.
“아, 정말 재미있네요” 그는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활짝 웃었다. “우리 엄마는 한국 사람들이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했는데요” “그러니까 한국말 공부 열심히 해” 나는 명령하듯 그에게 말했다. 그의 23살짜리 두뇌가 부러웠다. 어릴 때부터 한국말을 접했던 그는 말은 몇 문장밖에 못해도 액센트가 전혀 없었다. 조금만 공부하면 유창해 질 것 같았다.
내 경우엔 희망이 별로 없다. 논리력을 잃기 전에 새 말 배울 능력부터 잃을 것이다. 한국말 수준을 조금 높이는 것조차 힘들어질 것이다. 지난 안식년 때처럼 한국에서 일 년쯤 살려면 몇 년을 더 기다려야 하니 그땐 50을 넘을 텐데. 아니면, 새로운 나라에서 안식년을 보낼까? 항상 페르시아 말을 배우고 싶었는데. 아니면, 몽골에 갈까. 흠.
또 다른 문제가 있다. 어린 사람이 외국어를 배우면 귀엽고 실수를 해도 재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나이든 사람은 답답해 보일 뿐이다. 실수하면 처량해 보이기까지 한다.
한국말을 막 배우기 시작했던 27세 때 LA의 처가를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짧은 내 한국어 실력을 어디서든 마구 자랑하고 싶었다. 한 식당에 갔을 때였다. 우리 일행의 숫자는 많은데 작은 테이블들만 몇 개 있었다. 내가 아내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식탁 위에서 관계 합시다” “쉬!” 아내가 난처해하며 내 입을 막았지만 이미 여기저기서 폭소가 터진 뒤였다. 내 딴엔 모두 같이 앉을 수 있도록 “테이블 위를 붙여 놓자”고 제안한 것뿐이었는데….
그때 내가 54세이었다면 지저분한 중늙은이 취급을 당했을 게 뻔하다. 글쎄, 몇 년 후에 이란에 가서 페르시아 말로 또 그런 실수를 해야 할까? 나의 모국어에나 충실할까 보다.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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