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대통령이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 제한을 철폐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오바마는 “과학적 데이터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왜곡되거나 은폐돼서는 안 된다”며 과학적 결정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사실에 근거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줄기세포 연구를 반대해 온 부시 행정부를 겨냥한 것이다.
부시가 지난 8년간 줄기차게 줄기세포 연구에 반대한 것은 물론 그의 정치적, 종교적 신념에 따른 것이다. 오바마는 “과학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고 했지만 이런 다짐 역시 정치적인 성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민주당 정권이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는 없지만 언젠가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 연방정부 입장이 다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줄기세포 연구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정치적 공방은 마치 탁구경기 같다.
이처럼 이념에 따라 입장이 극명하게 나뉘는 것이 줄기세포 연구이다. 논란의 핵심은 연구에 사용되는 배아의 지위를 둘러싼 윤리논쟁이다. 줄기세포를 얻기 위해서는 배아를 파괴해야 하는데 그 배아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얼마 전 과학계와 종교계 간에 ‘14일 논쟁’이 오갔다. 생명과학계에서는 수정란이 만들어지면 그것은 세포덩어리에 불과하고 14일 정도가 돼야 비로소 나중에 척추로 발전하는 ‘원시선’(primitive streak)이라는 희미한 선이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이때까지는 사람의 특성이 생겨나기 전이기 때문에 생명으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물론 종교계, 특히 가톨릭과 보수적인 개신교는 이런 입장을 거부한다. 수정과 함께 생명체가 되었다고 봐야 하며, 그렇기 때문에 배아를 파괴하는 행위는 곧 살인행위라는 것이다. 이런 두 가지 견해를 절충한 제3의 입장도 있지만 이념과 관련된 대부분의 논쟁이 그렇듯 배아논쟁은 상대에 대한 설득이나 합의의 여지가 거의 없어 보인다.
오바마의 행정명령으로 자금의 족쇄가 풀리고 연구에 탄력을 받게 된 과학자들은 한껏 고무돼 있다. 또 난치병 환자들과 그의 가족들은 줄기세포 연구가 가져다 줄 새로운 치료법에 대한 기대로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오바마는 명령에 서명하면서 인간복제는 있어서 안 될 일이라는 단서를 분명히 달았다.
하지만 이런 단서와 윤리적 규제가 과연 얼마나 충실히 지켜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난치병 치료에 대한 사람들의 성급한 환상과 과학자들의 탐욕, 그리고 거짓이 뒤섞일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 우리는 몇 년 전 황우석 사태를 통해 확실히 목도했다.
과학에 대해 사람들은 “보편적이고 불편부당하며 객관적”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물론 과학은 일반 사회보다는 이런 특성이 두드러진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특히 과학자 사회에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이곳에서도 논문조작 등 속고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이언스 편집자’로 과학계의 기만과 사기를 다룬 ‘배신의 과학자들’을 쓴 니콜라스 웨이드는 “전통적인 과학관이 대부분 길을 잃는 것은 과학자들의 동기나 욕구 같은 것을 무시하기 때문”이라며 “오늘날 과학에는 출세주의에 의한 압력이 존재할 뿐 아니라 겉치레만의 성공에 대해 보상을 해 주는 경향이 두드러진다”고 지적했다. 황우석 사태는 바로 이 진단이 딱 맞아 떨어지는 케이스였다.
오바마는 정치로부터 과학을 독립시키겠다고 말했지만 이런 약속은 공허한 수사일 뿐이다. 특히 거대한 자본, 과학자들의 개인적 욕구, 그리고 환자들의 통제되지 않는 집단적 기대라는 트라이앵글 속에서 과학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이미 정치화 돼 버렸다.
정치화된 과학을 그나마 견제하고 규제할 수 있는 장치는 엄격한 윤리뿐이다. 윤리의 규제를 받지 않는 과학은 괴물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간복제에 대한 우려가 바로 이것을 말해준다. 반대로 윤리에 질식된 과학은 성장을 멈춘 아이처럼 왜소해 질 수 있다. 과학으로서의 역할을 다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윤리와 연구윤리는 과학발전의 장애물이 아니라 건전하고 안전한 연구로 이끄는 소중한 인프라이다. 윤리적인 문제 제기를 방해물로 여기는 한 생명과학의 바람직한 발전은 기대하기 힘들다. 오바마의 행정명령 서명의 후속조치로 배아 확보 등과 관련한 구체적인 지침이 마련되고 있다. 새로 나올 윤리 규정은 과학자들의 탐욕과 유혹을 제어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엄격해야 한다.
생명과학과 생명윤리를 이분법적인 틀로 보는 시각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 오바마의 서명을 계기로 줄기세포 연구의 필요성과 윤리성을 둘러싼 논쟁이 또 한차례 뜨겁게 벌어질 전망이다. 아무쪼록 이번만은 소모적인 양상에서 벗어나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이 무엇인가를 고민하는 생산적 논쟁으로 확산돼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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