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는 별로 크지 않을 ‘워낭소리’가 한국 내 방방곡곡을 크게 울리고 있다. 워낭소리는 독립영화사가 만든 영화제목이다. 낯선 말의 뜻을 사전으로 찾아보니까 ‘워낭’은 마소의 귀에서 턱밑으로 늘어 단 방울이란 설명이 있었다. 이 영화는 팔순 노인과 황소의 30년에 걸친 동행 양상을 3년간에 걸쳐 경비절약을 위해 HD 카메라로 촬영한 기록영화이다. 그래서 몇몇 개봉관에서 상영을 시작하였지만 뜻밖에 큰 반응이 있어서 현재는 개봉관 수효를 128개로 확대하였고 50만 관객 돌파를 예측한다는 것이다.
어느 날 우연히 TV에서 그 영화의 편린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사람도 소도 나이가 들어서 힘겹게 논밭 일을 하고 있었다. 때로는 둘이 같이 쉬고, 노인이 소에게 여물을 주고, 소를 씻어주고 등등 농가 나날의 생활이었다. 거기에는 시간이 멈춰서 모든 것이 조용히 서서히 움직였지만 일상의 삶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런데 그 모습이 왜 이렇게 아름다울까.
워낭소리에 모여드는 관객은 20대가 많다는 것이 의외이면서 이해할 수 있다. 강렬한 활동이 있으면 조용한 정적인 분위기가 필요한 것이다. 화려함에 피곤을 느낄 때는 소박한 정서에 젖고 싶을 것이다. 도시생활의 번잡함은 단순한 일상을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해소시킬 수 있는 것이 ‘워낭소리’의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에서도 그런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면 미국에도 워낭소리가 있다. 계산기소리, 세탁기 소리, 여닫는 열쇠 소리, 자동차 시동 거는 소리, 촬영기 소리, 가게 문 여닫는 소리, 옷걸이 움직이는 소리,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 접시 닦는 소리, 수표 끊는 소리 등이 모여서 오케스트라를 연주한다. 이렇게 다양한 워낭소리가 30년 40년 이어지더니 사회에 유능한 일꾼들을 길러냈다. 한국내의 워낭소리와 다른 점은 내는 소리의 색깔이고 사람과 가축이 아닌 사람과 기계와의 관계이다. 공통점은 삶을 이어가는 생산적인 소리가 가진 아름다움이다.
생각해 보면 생활이란 매일 매일 쌓이면서 누적되어 가는 상황이다. 단조로움이 계속적으로 이어지면 이런 즐거움이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다가 어쩌다 리듬이 깨지면 비로소 평상시의 생활을 감사하게 된다. 매일 식료품을 구입하고 요리하는 일이 끔찍하다가 병석에 누워있으면 그 귀찮던 일상생활이 그리워진다. 평평한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다가 어떤 일을 당하게 되어서야 재미없던 날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즉 그 동안 재미가 있었지만 본인이 느끼지 못했을 따름이다.
한국에 돌풍을 일으킨 워낭소리의 주연인 나이가 든 할아버지와 황소의 표정은 잠잠하다. 그들의 관계는 사람과 가축의 담을 넘어선 가족이고 삶의 동행자이다. 불평불만이 있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흥에 겨운 만족스러움을 보이지도 않는다. 이런 잔잔한 느낌이 밥맛 같고 물맛 같은 인생의 참맛인 것 같다. 이 영화에 감동하는 관객들은 이 점을 깨닫게 된 것이다. 본인의 표현이 있고 없고에 관계없이 삶의 진수가 보여서 단조롭고 소박한 워낭소리에 빠져들은 것이다.
이런 현상을 바람직하다고 본다. 순간적으로 입안에 상쾌함을 주는 청량 음료수를 마시다가, 자연의 물맛을 알게 된 것이다. 천연의 물맛은 한 순간의 상쾌감 대신 온몸에 편안함, 건강함, 자연스러운 흐름을 준다. 우리들이 바라는 일상생활은 어떤 모습이면 좋겠는가.
때때로 “심심해요”라고 호소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그래, 그대로 조금 있으면 재미난 놀이가 생각날 거예요. 기다려 보아요”라고 말해준다. 누가 옆에서 심심하지 않게 도와줄 필요가 있을까. 그 방법을 찾는 것도 제 자신이 할 일이다. 그리고 때때로 심심해도 좋다. 그래야 재미있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고 그 시간을 더 즐기게 될 것이다.
삶이란 멈춘 것 같은 시간에도 변화하고 있으며 앞으로 나가고 있다. 심심한 것 같으면서 재미가 있고 재미있는 것 같으면서 때때로 삶의 의미를 자문자답하며 이어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밥맛 물맛과도 같은 참맛을 느끼게 되면 행복의 조건을 갖췄다고 하겠다. 워낭소리가 주는 감동은 인간과 동물의 애정을 바탕으로 한 그런 느낌이라고 본다.
워낭소리는 온 나라 사람들의 삶에 대한 가치관에 영향을 주는 듯하다. 자연 속에서 서로 사랑하면서 평화롭게 소박하고 단순하게 영위되는 삶의 가치에 초점을 맞춘 기록이다. 이 지역에서도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이면 색색의 워낭소리가 우리에게 희망을 주고 있다. 우리는 워낭소리를 들으며 생활하고 있다.
허병렬, 교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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