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들의 윤리의식에 대해 ‘국제 투명성기구’에서 조사한 적이 있다. 대상은 아시아 4개국 중·고등학교 학생들이었고 그 중 한국 학생들의 윤리의식이 최저로 나타났다고 한다.
“정직하게 사는 것보다 부자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한국 청소년의 22.6%가 “그렇다”라고 답하였다. 또한 여섯 명중 한 명은 “감옥에서 10년을 살아도 10억을 번다면 부패를 저지를 수 있다”고 답했다. 또 다섯 명중 한 명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기꺼이 뇌물을 쓸 것”이라고 답했다.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설문 결과는 한국 청소년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겠지만 이것이 청소년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것은 바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어른들의 자화상이다. 뇌물수수를 일삼는 정치인들, 학벌위주의 사회, 또한 거기서 만들어진 엘리트 집단의 물질만능주의 같은 사회의 뒤틀린 가치관이 어린 청소년들에게 그대로 투영된 결과인 것이다.
한국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은 유명하다. 이것이 한국의 눈부신 발전에 큰 기여를 하고 원동력이 되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언제나 과하면 문제가 있는 법이다. 과도한 교육열은 입시위주의 교육, 촌지 관행, 사교육이라는 기형적인 시장을 탄생시켰다.
정직성과 도덕성보다는 어떠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하고 그것이 성공적인 인생과 직결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에게서 자란 우리 청소년들이 ‘부패 불감증’을 가졌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사교육 시장 규모가 통계상으로만 24조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사실상 30조원을 넘어섰다고 평가한다. 미취학 아동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어마어마한 사교육 시장은 뒤틀린 가치관을 보여주는 작은 증거에 지나지 않는다.
한국의 교육방식을 보면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진 경우가 많다. 실제를 무시한 이론만 달달 외워 시험지에 쓰면 좋은 성적을 받는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교육제도의 불합리한 요소들로 인해 청소년들이 인생에서 중요한 시기를 정신적 성장이 아닌, 입시 기계가 되는 일을 위해 쏟아 부어야 하는 현실이 대단히 안타깝다.
창의력을 무시하는 기형적인 교육열의 한 요인으로는 특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과 행동을 많이 의식하는 집단주의 한국문화이다. 한국 사람들은 자신과 유사한 지위나 계층의 행동 양식에서 벗어날 경우 불안감을 느낀다. 또한 부모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학력의 사회·경제적 가치를 높게 평가해 기득권 유지를 위한 학벌의 세습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세계는 지금 무서운 속도로 급변하고 있고 가히 혁명의 소용돌이라고 할 수 있는 대변혁기를 지나고 있다. 대변혁기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능력이 요구된다. 그러나 아직도 한국 사회는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과거의 사고방식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이것이 과연 한국만의 문제일까. 한국뿐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목격된다.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미국에서 교육 받은 1.5세나 2세들도 명문대에 진학한 후 중퇴율이 44%에 달한다는 보고가 얼마 전 나왔다.
그 이유는 많은 한국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주입식 공부를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진 탓에 자기 논리를 세워 주장하는데 익숙하지 않고 독창적인 자기 자신만의 생각을 표출하는데 서툴다. 좋은 대학에 입학했던 학생들이 표절로 인해 퇴학을 당한 일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성세대에 많은 우려를 안겨주고 있는 한국 청소년들의 의식을 남의 일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학부모들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갖고 자녀를 교육하는 부모가 있는 한 미주의 한인자녀들 또한 그들을 비슷하게 닮아갈 수밖에 없다.
급변하는 세계무대에서 우리는 더 전문적이며, 창의적 발상을 지닌, 그리고 무엇보다도 도덕적으로 무장된 인재들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이 일은 단시일 내에 이루어 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단한 교육과 노력에 의해서만 이루어 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기성세대들의 도덕적 가치관의 재정립이 필요하다. 그리고 정말 우리 자녀들에게 무엇이 중요한가에 대한 발상의 전환 또한 필요할 것이다. 자기는 옆으로 가면서 자녀들에게 앞으로 가라고 다그칠 수는 없는 일이다. 전혀 모범이 되지 못하면서 아무리 도덕과 창의성을 외쳐댄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제나 추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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