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7월25일자 하프타임에서 스테로이드로 얼룩진 배리 본즈의 메이저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언급하며 “그나마 다행스런 일은 본즈가 차린 ‘명예롭지 못한 성공’이라는 ‘맛없는 음식’을 야구팬들이 그리 오래 먹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사실”이라고 쓴 적이 있다. 그때 본즈의 기록을 가장 먼저 갈아치울 선수로 꼽은 이름이 뉴욕 양키스의 알렉스 로드리게즈였다. 당시 그의 페이스로 보면 2013년께 본즈의 기록을 넘어설 것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로드리게즈는 팬들의 이런 기대를 저버렸다. 그 역시 스테로이드에 의존해 온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주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는 로드리게즈가 지난 2003년 실시한 메이저리그 선수들에 대한 약물복용 검사에서 스테로이드를 복용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보도해 야구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로드리게즈는 9일 이 사실을 시인했다. 메이저리그 최고 연봉 선수로서의 중압감 때문에 3년간 스테로이드에 손을 댔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그가 언급한 중압감은 탐욕을 포장한 표현일 뿐이다. 어쨌든 스테로이드 덕분인지 로드리게즈는 양성 반응이 나왔던 그 해에 커리어 첫 아메리칸 리그 MVP를 차지했다.
메이저리그는 1980년대 후반부터 스테로이드로 얼룩져 왔다. 갑자기 선수들의 파워가 늘어나고 체격도 커지기 시작했다. 시원한 홈런포가 터지면서 팬들을 열광시켰지만 선수들의 불법 약물 복용에 대한 의구심 또한 그에 비례해 증폭됐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메이저리그의 많은 대 기록들이 스테로이드의 힘으로 작성됐음이 밝혀졌다. 그런 가운데 맥과이어, 본즈, 클레멘스 등 메이저리그 흥행을 이끌었던 수퍼스타들이 몰락했다. 스테로이드 복용 혐의를 부인했던 본즈와 클레멘스는 위증혐의로 형사 처벌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여 있다.
메이저리그의 ‘스테로이드 시대’는 월스트릿의 ‘탐욕의 시대’와 겹친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로만 봐야 할까. ‘승리 지상’ ‘결과 만능’을 추구한 시대적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선수들이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성적을 올리면 고액의 연봉으로 직결됐다. 슬러거들이 시원하게 홈런포 날리고 투수들이 시속 100마일의 광속구를 뿌려주면 흥행이 되니 구단으로서도 좋다. 메이저리그는 스테로이드 문제를 뒤늦게 안 것이 아니라 일찌감치 알고도 눈을 감았다. 아니, 눈 감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조장한 혐의까지 보인다.
공정한 경쟁을 생명으로 한 스포츠에서 불법 약물을 사용하는 것은 거짓된 행위다. 많은 메이저리거들이 스테로이드 복용이라는 진실하지 못한 행위를 한 후 이를 부인하는 또 다른 거짓말을 하고 있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진실을 말하는 것보다 쉬운 행위가 아니다. 그런데도 거짓말을 일삼는 것은 단기적인 보상이 따르기 때문이다. 선수들에게는 거액의 돈과 팬들의 찬사가 그것이다.
로드리게즈는 메이저리그 스테로이드 복용 실태에 관한 미첼보고서가 발표된 지난 2007년 12월 CBS의 여성앵커 케이티 커릭과 마주 앉았다. “당신은 스테로이드나 성장 호르몬, 혹은 기량향상 약물을 복용한 적이 있느냐”는 커릭의 질문에 그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강력히 부인했다. “어떤 수준에서도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러나 부인을 하는 그의 표정은 상당히 경직돼 있었다. 이것 때문에 당시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본 표정 전문가들이 많았다. 이런 추정은 결국 사실로 판명됐다.
“성공한 거짓말은 처벌 받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선거에서 이긴 후 선거 기간에 한 말을 뒤집는 정치인들을 빗댄 것이지만, 드러나지만 않는다면 그것 또한 성공한 거짓말이라고 할 수 있다. 처벌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보상까지 챙길 수 있으니 거짓말의 유혹은 클 수밖에 없다.
반면 실패한 거짓말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지금 본즈와 클레멘스가 처한 입장이 그렇다. 스테로이드 없이도 충분히 가고 남았을 ‘명예의 전당’행조차 불투명한 상황이다.
성공한 거짓말쟁이가 될 뻔 했던 로드리게즈는 이번 보도로 거짓이 드러나면서 이미지와 시장 가치에서 엄청난 타격을 입게 됐다. 하지만 복용 사실을 즉각 시인함으로써 거짓 은폐가 또 다른 거짓을 낳았던 어리석은 선배들의 전철은 피했다.
2003년 검사를 받았던 1,198명의 메이저리그 선수 가운데 양성 반응을 보인 사람은 모두 104명이었다. 차제에 로드리게즈뿐 아니라 다른 103명의 이름도 밝히라는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합당한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이름을 밝히지 않을 경우 깨끗한 대다수의 선수들이 잠재적 복용자로 남게 될 터이니 말이다.
메이저리그의 많은 기록들은 진실과 거짓으로 범벅이 돼 있다. 다시 불거진 스테로이드 파동을 계기로 얼룩진 기록을 가려내는 작업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야 말로 메이저리그가 지향하고 있는 ‘클린 베이스볼’의 진정한 첫걸음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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