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색국면의 남북관계가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2주전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은 군복을 입고 나와 남한과의 전면적인 대결태세를 역설하고 나섰다.
외무성이나 조평통 혹은 국방위원회가 아닌 인민군 총참모부가 대남 관련 성명을 발표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아나운서가 아닌 군 대변인이 직접 TV에 나와 입장을 밝힌 것은 더더욱 생소하다. 내용에서도 북한은 단호한 입장의 본보기로 서해상의 해상경계선 고수를 언급함으로써 남북관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조성하고 나섰다.
서해 해상경계선은 남과 북이 직접 군사적 충돌까지 감수했던 뜨거운 감자다. 1999년과 2002년 두 차례의 교전에도 불구하고 남과 북이 양보하지 못했던 서해 경계선 문제를 직접 거론한 것은 지금의 남북관계 경색이 직접적인 무력충돌로도 이어질 수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 대목이다.
물론 북한에게는 나름의 전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관심을 끌기 위한 긴장조성 행위가 필요했을 것이다. 오바마 행정부를 의식, 북한의 원칙적 입장을 강력하게 천명했던 지난달 13일 외무성 대변인 담화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자 북한은 군사적 충돌까지를 겨냥한 남북관계 악화로 미국의 관심을 끌려고 한 것이다.
미국의 관심끌기와 함께 북한은 긴장고조 위협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전환을 가장 높은 수준에서 압박하려는 의미도 갖고 있다. 지난 해 12. 1 조치를 통해 개성 관광 중단과 개성공단 인원축소 등의 남북관계 차단을 실시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측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자 북한으로서는 조금 더 강력한 압박을 통해 이명박 정부의 정책 전환을 얻어내려는 의도이다. 특히 경제위기 극복에 매달리고 있는 이명박 정부에게 군사적 긴장고조는 투자 리스크의 확대라는 측면에서 매우 감내하기 힘든 압박이 될 수 있음을 겨냥한 것이다.
그러나 북한 나름의 전략적 계산을 이해한다 하더라도 최근의 대남 성명은 북한에게도 결과적으로 이롭지 않다. 우선 미국의 관심 끌기 측면에서 보더라도 이번 성명은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 불신을 더욱 증폭시키는 데만 기여할 뿐이다. 북이 한반도에서 군사적 긴장을 의도적으로 조성하는 것이 미국에게 뉴스거리는 될지언정 그것이 향후 북미 협상에서 북한에게 결코 유리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남북관계를 악화시키거나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고조시키는 북한의 행동이나 발언은 미국으로 하여금 협상 상대로서 북한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할 뿐이다. 경험적으로도 북미간 협상이 진전되고 북미관계가 호전되었던 경우는 예외 없이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의 평화무드가 진전되었을 때였다.
대화가 아닌 대결 지향의 남북관계를 선택하는 북한의 입장은 새롭게 바뀐 협상상대를 앞두고 미국에게 쓸데없는 오해를 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또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를 바꾸려는 전략적 의도도 이번과 같은 대남 위협으로는 가능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북이 전면적 대결 불사로 남을 압박할 경우 이명박 정부는 더더욱 대북정책을 전환하기가 어려워진다. 내부의 필요에 의해 바꾸려다가도 북의 호전적인 대남 압박에 밀려 바꾼다는 비판만큼은 정치적으로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현역 군인이 군복을 입고 TV에 나와 전면적인 대남 대결 의지를 천명한 성명은 북한 스스로 얻으려는 전략적 의도에도 부합하지 못하게 되는 셈이다. 오히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그같은 말의 위협이 남북 간에 불필요한 불신과 긴장을 유발함으로써 실제적인 행동의 위협으로 이어지고 나아가 군사적 충돌로도 비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남측은 전군에 대북 경계태세 강화 지시를 하달했다.
2006년 북한의 핵실험 이후 처음이다. 문제 수역인 서해상에서의 방어태세도 철저히 점검하고 있다. 북한 역시 총참모부의 단호한 입장 표명이 있었던 만큼 대남 군사 작전에서 훨씬 강경한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최고위급의 의도적인 지시가 없었다 하더라도 초강경한 말의 위협이 자칫 현장에서 실질적인 행동의 부딪침으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북에게도 남에게도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압박은 말의 압박으로 효과를 볼 때 성공한 것이지 그것을 넘어 군사적 충돌로 이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실패한 압박이 되고 만다. 장기 경색 국면에서 남과 북은 상호 오해와 불신을 증폭시키는 불필요한 언행을 자제해야 한다. 그것이 향후 남북관계를 복원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자 첫걸음이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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