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께다. 당시 북한관련 뉴스 중 상당히 비중 있게 다뤄진 뉴스는 북한이 또 다시 대기근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었다.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마다 대기근 가능성을 제시했다.
북한의 작황이 말이 아니다. 거기다가 해외의 식량원조가 상당부문 끊김에 따라 최악의 식량부족 사태가 예견된다는 것. 예측은 완전 빗나갔다. 북한이 여전히 빈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근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어디서부터 잘못 돼 이런 엉터리 전망이 나왔나.
윈스턴 처칠은 일찍이 스탈린의 소련을 ‘온통 미스터리인 에니그마(enigma)’ 그 자체라고 불렀다. 북한은 스탈린의 소련의 형상을 따라 태어난 체제다. 김일성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탈린의 정책이 너무나 관대하다는 비판과 함께 체제를 더욱 옥죄었다.
왜 예상이 빗나갔나. 바로 체제의 속성이 그 설명이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비밀이다. 농산물 작황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세계 식량기구 등 시찰단들이 올 때마다 최악인 지역으로만 보냈다. 잘못된 데이터를 입력시켜 결국 잘못된 예측을 내놓게 한 것이다. 그 속셈은 다른 게 아니다. 더 많은 원조를 우려내자는 것이다.
북한을 상당히 알 것 같다. 특히 최근 수 년 간의 경험으로 보아서는.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을 이 ‘잘못된 대기근 예측’ 에피소드는 새삼 말해주고 있다.
“(남북 간)정치·군사적 대결 상태 해소와 관련한 모든 합의 사항을 무효화한다. 남북기본합의서와 그 부속합의서에 있는 서해 해상군사경계선에 관한 모든 조항을 폐기한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이다.
남북화해니, 평화공존이니 하는 것들은 거들떠보지 않겠다. 앞으로 막나갈 테니 알아서하라는 막가파식 공갈이다. 올해 들어 벌써 두 번째 협박이다. 그 진의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갓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에 대한 경고일 수 있다. 우선 나오는 분석이다. 한국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 오바마 측근들의 실토라고 한다. 긴장국면을 조성함으로써 그런 오바마의 주의를 한반도로 돌리게 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다. 주로 한국 국내 언론의 시각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역도(逆徒)라고 매도했다. 그리고 통일부 장관 후보자 인선까지 문제 삼으면서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중심으로 군사적 긴장을 예고한 점 등이 그렇다는 분석이다.
또 다른 의도는 없을까. 관련해 한 가지 주목할 게 있다. 김정일의 발언이다.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험악한 말을 쏟아내며 전면 대결태세를 선언했다. 그 얼마 뒤 김정일은 한반도 긴장상태를 원치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말했다. 그리고 바로 뒤이어 북한체제 선전기구인 조평통이 남북관계를 긴장관계로 몰아가는 성명을 발표한 것이다.
왜 모순된 발언에,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나. 외부보다는 내부적 긴장이 더 필요한 까닭이다. 외부적 도발로 내부를 강력히 단속할 이유가 있다는 이야기다. 북한의 잇단 공세적 대남동향을 이해하는데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닐까.
가장 구조적인 문제는 ‘시장 세력’의 확산이다. 대기근과 함께 발달한 게 암시장이다. 암시장이 자생의 자본주의로 발전하면서 수령절대주의 정당성을 지키는데 위험수위에 도달했다.
“21세기형 사회주의는 시장을 수단으로 삼는 것이다.” 북한 집권층 내 일부의 주장이라고 한다. 왜 중국식 개혁개방정책을 도입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을 강력히 제기하면서.
시장 자유화의 염원은 북경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와 함께 더 확산되고 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다. 그 중국이 개혁개방정책을 통해 경제적 성공을 이룩하고 올림픽까지 치른데 대해 북한 주민들은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문제는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가 좋아지면 수령절대주의 체제의 허구성이 폭로되는 데 있다. 때문에 대남 도발을 통해 내부 결속을 다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북한은 올해 공동사설을 통해 후계체제 구축을 강력 암시했다. 이런 상황에서 후계구도와 관련된 보도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고 있다.
김정일이 3남 정운을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다. 연합통신 보도다. 같은 스토리가 일본에서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런가하면 장남 정남은 이례적인 기자회견을 통해 그 같은 후계 설을 부인한다. 이 엇갈린 보도들은 북한내부 권력층이 김정일 이후를 바라보고 권력투쟁에 들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을 불어넣고 있다. 내부단속이 필요한 또 다른 이유다.
또 하나. 북한 정권의 느닷없는 공갈은 아마도 ‘동류를 부르는 하이에나의 규성(叫聲)’ 같은 게 아닐까 하는 관측도 나온다. 체제유지에 버겁다. 그 돌파구를 남쪽에서 찾았다. 남남갈등을 확대시키는 거다. 그 시그널이 바로 조평통 성명이다. ‘남한의 좌파여 봉기하라’는.
맞는 관측일까. 상황을 조금 더 지켜보아야겠다. 마치 블랙홀을 연상시키는 체제인 만큼.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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