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TV는 25일 저녁 뉴스매거진 ‘60분’을 통해 웨스트뱅크 지역의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간의 분쟁을 다루면서 이스라엘군의 횡포를 고발했다. 프로그램은 이스라엘 군인들이 망루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 고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 팔레스타인 민가들에 마구 침입, 무단 점거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기자가 찾은 한 민가의 주인은 “군인들이 집안에 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눌 수 없다”며 “우리는 감옥에 있다”고 겁먹은 표정으로 말했다. 조금 열린 문틈으로는 기관단총을 든 이스라엘 군인들이 계단에 서 있는 모습이 잡혔다.
이스라엘 군인들은 민가를 무단으로 점거해 주인 가족은 부엌으로 몰아넣은 채 며칠 씩 머물다 고마움이나 사과의 말 한마디 없이 떠난 버리곤 한다는 것이다. 너무나 억울하지만 그냥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이 지역 토박이들의 하소연이었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오래 전부터 안하무인의 태도를 보여 왔다. 생존권과 자위권을 명분으로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 왔다. 엄청난 민간인 희생을 초래한 가자 지구 공격이 최근의 예이다. 그래서 진보적 지식인들은 이스라엘을 ‘중동의 문제아’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이런 태도를 보이는 것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서방 여론을 장악하고 있는 유대인의 파워가 그것이다. 미국 내 유대인 인구는 3%에도 미치지 못하지만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역사가 흔히 승자의 기록이듯 강자의 목소리가 여론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그들의 힘이 여론을 만들어 가기도 한다. 유대인들을 잘못 건드렸다가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 ‘찍히면 죽는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유대인들의 심기를 자극했다가 호된 곤욕을 치렀다. 그는 지난 2007년 말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의 중동정책을 비교적 객관적인 관점에서 회고한 책을 낸 후 유대인들로부터 ‘반유대주의자’라는 공격을 받았다.
그러나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카터도 녹록치 않은 인물. 그는 “이런 비난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공정하게 대접 받아야 한다는 나의 결심에 영향을 미치지 못 한다”며 맞섰다. 하지만 며칠 못가 사과와 함께 결국 꼬리를 내리고 말았다. 이 과정에서 카터의 입장을 두둔해 준 언론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또 많은 미국인들은 문화적·종교적 이유로 이스라엘에 대해 유대감을 갖고 있다. 미국 기독교인 가운데 80% 이상이 이스라엘을 좋아하고 지지해야 한다는, 도덕적이면서 성서에 부합되는 의무감을 갖고 있다고 밝힌다. 성경에 수도 없이 등장하는 이스라엘이라는 언급과 그들의 역사에 대한 친근감이 현 중동문제에 대한 판단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인식이 거의 무조건적이라는 점이다.
2주 전 미국인 친구의 초청으로 부촌인 벨 에어의 미국장로교회를 찾았던 한 한인은 깊은 인상을 받았다. 한때 레이건이 출석하기도 했던 이 교회는 교인 수 2,000명 정도지만 빅 샷 교인들이 많아 LA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교회로 꼽힌다.
설교를 위해 강단에 오른 담임목사는 설교를 시작하기 전 대형 스크린에 이슬람에 관한 다큐멘터리 동영상을 틀었다. 내용은 이슬람의 역사와 현재의 교세분포 등에 관한 것이었다. 이어진 설교를 통해 담임목사는 “우리는 중동의 갈등을 말하면서도 정작 이슬람에 대해서는 너무 모른다. 맹목적인 증오는 이런 데서 생겨난다”며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것을 교인들에게 당부했다. 이슬람에 관한 중립적인 언급조차 금기시하는 근본주의 교회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지난 주 취임식에서 이슬람 세계에 화해의 메시지를 보냈던 오바마 대통령이 26일 이슬람 방송인 알아라비아와의 회견에서 강조한 것도 상호존중이었다. 그는 회견에서 “나의 말이 아니라 행동을 보고 판단해 달라”며 편향되지 않은 자세로 중동문제 해결에 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오바마가 유대인의 영향력에서 얼마나 자유로울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지만 일단 시작은 긍정적이다.
중동문제는 난마처럼 얽혀 있다. 그래서 전체 맥락을 제대로 보지 않을 경우 쉽게 흑백논리의 함정에 빠지게 된다. 제 3자가 이런 문제에 접근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이 같은 양자택일의 협소한 논리다. 이런 논리는 사태를 해결하기보다 오히려 증오와 갈등을 증폭시키며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맹목적인 ‘묻지마 애정’은 종종 ‘묻지마 증오’의 또 다른 얼굴이기 때문이다. 중동문제는 그동안 그렇게 악화돼 왔다.
조윤성
논설위원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