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나는 모르겠습니다. 우리 앞에는 험난한 날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내게 그런 건 정말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산정에 올라가봤으니까요. … 나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내가 산정에 올라가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곳에서 나는 아래를 굽어보았습니다. 그리고 약속의 땅을 보았습니다. 나는 그곳에 여러분들과 같이 가지 못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약속의 땅에 도달할 것입니다”
마틴 루터 킹 목사가 테네시, 멤피스의 메이슨 교회에서 한 ‘산정 연설’(I’ve Been to the Mountaintop)의 끝부분이다. 1968년 4월3일 저녁이었다. 자신의 앞날을 예견이라도 한 듯했던 이 연설을 마지막으로 그는 우리 곁을 떠났다. 4월4일 그는 암살당했다.
41년 전 킹 목사가 비전으로 제시했던 ‘약속의 땅’으로 순례의 행렬이 줄을 잇고 있다. 미국에서 흑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다는 것은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 나의 네 자녀가 피부색이 아니라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그런 나라에 살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킹 목사의 꿈의 완성이자 ‘약속의 땅’의 도래를 의미한다.
20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 취임식을 앞두고 이번 주말 사상 최대의 인파가 워싱턴 D.C.로 몰려들고 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200만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 하에 2만명의 경찰관, 주방위군, 경호원들이 비상에 들어갔다.
선거운동 기간 오바마를 지지했던 ‘풀뿌리’들이 전국에서 몰려들고, 특히 흑인들은 이 어려운 시기에 카드빚을 불사하고 온 가족 여행길에 나선다고 한다.
오바마 취임은 단순한 취임식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 ‘평생에 한번 있는 일’ ‘축제’라는 인식 때문이다. 1963년 아버지의 목마를 타고 킹 목사가 이끄는 워싱턴 대행진을 구경하고 그의 ‘꿈’ 연설을 들었을 아이들이 이제 50줄에 접어들며 아들딸과 함께, 손자손녀를 목마 태우고 오바마 취임식에 참석을 하는 것이다.
역사에는 이정표적 사건들이 있다. 장거리 달리기에서 선수들이 바통을 이어받아 달리듯이 역사에는 희망의 횃불을 이어받아 달리는 위대한 영혼들이 있다. 미국의 가장 뿌리 깊고 뼈아픈 오점인 ‘인종차별’이 오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킬 만큼 개선된 데는 바통을 이어받은 선각자들의 용기와 결단, 희생이 있었다. 에이브러험 링컨과 마틴 루터 킹이 대표적이다.
오바마 진영이 세심하게 신경을 쓴 부분도 있지만 오바마의 대통령 취임은 위의 두 위대한 인물들과 신기할 정도로 긴밀하게 연결이 되어있다.
우선은 취임식 날이다. 1937년 이래 미국의 헌법은 대통령 취임식을 1월20일 정오로 정했다. 그런데 올해는 마침 마틴 루터 킹 기념일 다음날이어서 킹의 ‘꿈’과 ‘약속의 땅’이 ‘오바마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순리가 더욱 명료해지는 느낌이다.
지난해 8월28일 오바마는 킹 목사가 ‘내게는 꿈이 있습니다’ 연설을 한 워싱턴 대행진 45주년 기념일에 맞춰 민주당 후보지명 수락을 했다. 킹 목사의 워싱턴 대행진은 링컨의 노예해방선언 10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였다.
그런가 하면 올해는 링컨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오바마가 취임한 다음 달이면 링컨이 태어난 지 200년이 된다.
사람들에게 가장 큰 장벽은 사고의 장벽이다. 생각이 손발을 묶는다. 링컨이나 킹은 가장 넘어서기 힘든 시대적 통념의 장벽을 무너트렸다는 데 그 위대함이 있다. 흑인은 노예일뿐 사람이 아니라는 통념을 무너트림으로써 링컨은 흑인의 손발을 자유롭게 했고, 흑인도 동등한 권리를 누릴 자격이 있다는 ‘불온한 꿈’을 퍼트림으로써 킹은 흑인들의 사회진출을 유도했다.
흑인들이 이번처럼 대통령 취임행사에 대거 참석해 눈길을 끈 것은 1865년 링컨의 두 번째 취임식 때였다. 그전까지 참석이 금지되었던 흑인들이 그때 처음으로 축하 퍼레이드에 참석해도 되도록 허용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바마는 당시 링컨이 사용했던 성경책을 이번 취임 선서에 사용한다. 링컨의 ‘횃불’을 이어받겠다는 상징으로 이해된다. 링컨의 탁월한 리더십과 킹의 위대한 정신을 바탕으로 오바마가 미국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기를 기대한다.
권정희 논설위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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