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한 해가 저문다. 과거라는 망각의 심연 속으로 2008년이 사라져 갈 차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한 해를 접는 그 끝자락은 그러나 유난히 길어 보인다. 누가 그랬나. 2008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이라고. 그 탓인가.
“갤런 당 4.10달러를 주고 개스를 넣었다. 그게 불과 몇 달 전 일이다. 이제는 1.75달러다. 그 사이 은퇴기금은 반 토막 나다시피 했다.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서는 오바마를 찍었다.”
USA 투데이지는 하루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한 평범한 생활인의 결코 평탄치 않았던 지난 한 해를 추적하면서 2008년을 ‘결코 잊지 못할 해’로 명명했다.
‘란’(亂)이란 글자가 꼽혔다. ‘변’(變)으로 결정됐다. 한자 문화권인 대만과 일본에서 올해의 한자로 각각 亂과 變이 선정된 것이다. 이 두 글자를 합치면 ‘변란’(變亂)이다. 변고로 세상이 어지럽다는 말이 된다.
하기는 현기증 나는 뉴스의 연속이 2008년이었다. 그것도 온통 컴컴한 뉴스뿐이었다. 그 뉴스들이 몰고 오는 변화의 질량이 여간 묵직한 게 아니다. 변환의 속도도 그렇다. 그래서인지 몇 달 전이 까마득한 옛날 같이 느껴질 정도다.
‘결코 잊지 못할 해’ ‘변란(變亂)의 해’로 기억될 2008년의 뉴스 중의 뉴스는 그러면 어떤 뉴스일까. 올해 지구촌에서 발생한 각종 사건에, 이벤트를 ‘톱 10’이 아닌 ‘톱 5’로 압축한다면 그 순서는 어떻게 매겨질 수 있을까.
한 논객이 던진 질문이다. 그리고는 스스로 순서를 매겼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 버락 오바마 당선, 북경 올림픽,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 여기까지는 주저 없이 써나갔다. 그 다음이 문제다. 엄청난 사건의 연속이 올해지만 그 선택이 쉽지 않아서다.
단순한 경기 사이클이 아니다. 시스템의 고장으로 보아야 한다. 베를린 장벽 붕괴와 비교될 수 있다. 2008년 9월15일에 발생한 리먼 브라더스 파산을 이렇게 진단했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을 시발로 번져나간 금융위기로 투자은행이라는 것이 없어졌다. ‘빅 3’로 불리는 미국의 자동차 회사들도 빈사상태를 헤매고 있다. 중국 경제도 말이 아니다. 러시아 경제는 아예 성장이 멈췄다. ‘권위주의형 자본주의 부상론’도 무너진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금융위기의 여파다. 그 충격이 얼마나 큰지 타임은 금융위기를 ‘하늘도 무너진다는 것을 깨닫는 날’로 묘사했다. 올해의 최대 뉴스는 단연 금융위기라는 지적이다.
흑인 대통령 탄생도 분명 한 전환점이다. 그러나 그 뉴스가 진정한 역사적 전환점이 될지는 기다려 보아야 한다. 앞으로 펼쳐질 오바마 시대가 어떻게 평가될 지가 관건이라는 거다.
그저 그런 대통령으로 평가될 때 최초의 흑인 대통령 탄생은 별 의미가 없다.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최초의 여성 대통령 등의 뉴스에 가져질 수도 있는 것이다.
북경 올림픽과 러시아의 그루지야 침공은 한 짝을 이루는 뉴스다. 2008년 8월8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한 쪽에서는 올림픽 개막식이라는 화려한 무대가 펼쳐졌다. 다른 한쪽에서는 러시아군이 탱크를 몰고 그루지야를 침공했다.
모양새는 전혀 다르다. 같은 날 발생한 이 두 해프닝은 그렇지만 권위주의 체제의 서방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도전이라는 점에서 같은 성격의 사태로 앞으로 국제질서에 몰고 올 파장이 만만치 않다. ‘톱 5’안에 든 이유다.
그 다음의 빅뉴스는 그러면. 뭄바이 테러사건. 소말리아 해적의 선박납치. 사이클론 ‘나르시스’ 미얀마 강타…. 이렇게 나열해 보았지만 그 중량에 있어 못 미친다는 평가다. 그래서 마지막 ‘톱 5’로 지목된 뉴스는 들쭉날쭉 석유가 동향이다.
한 때 배럴당 147달러를 마크했다. 동시에 러시아의 코가 높아졌다. 그 석유가가 급락하면서 러시아 경제는 공황상태를 맞았다. 베네수엘라의 우고 차베스의 기세도 한 풀 꺾였다.
이 ‘톱 5’ 뉴스는 한 가지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경제가 정치를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제 시스템이 고장 나면서 세상이 ‘변란(變亂)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한 가지 주목해야 할 뉴스가 있다. 북한 사태다. 굶어죽는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은 자본주의를 발견했다. 그게 90년대 말의 일이다. 이후 시장(市場)은 모든 것을 뒤바꾸었다. 그 상황에서 김정일의 신상에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집권세력은 아연 긴장했다.
시장 운영시간을 대폭 줄였다. 중국 상품도 시장에서 몰아내고 있다. 시장에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는 필사적 몸부림이다. 체제유지를 위해 자유를 추구하는 시장 세력에 대해 전면전을 선포한 것이다.
북한은 걷잡을 수 없는 변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이것이 ‘숨겨진 올해의 뉴스’다.
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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