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연말이 되면 지난 한 해 동안 큰 사건을 모아서 10대 뉴스를 선정하는데 올해에는 월스트릿의 금융위기가 단연 수위를 차지했다. 이 금융위기가 미국뿐 아니라 세계의 거의 모든 나라에서 제일 큰 뉴스로 선정된 것은 그만큼 세계 경제에 큰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은 오늘날 세계 경제의 기본질서가 된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혈액과 같은 구실을 하는데 혈액을 공급하는 심장 구실을 하는 월스트릿의 위기로 인해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금융산업은 자본주의의 발생과 함께 생긴 산업분야이다. 17세기 세계 최고의 해상 강국으로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된 네덜란드의 헤이그에서 1600년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인 동인도회사가 설립됐다.
이 회사는 주식을 발행하여 위로는 정부로부터 아래로는 가정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의 투자금으로 설립되었는데 이 주식을 사고팔기 위해 1609년 암스텔담에 최초의 주식거래소가 등장했고 자금을 융통하기 위한 은행이 최초로 개설되었다. 이 주식거래소에서는 동인도회사의 주식뿐 아니라 각국의 국채가 거래되었고 네덜란드 국내뿐 아니라 멀리 런던과 뉴욕에서도 고객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세계의 경제 패권이 영국으로 넘어가면서 금융산업의 중심지도 영국으로 넘어갔다. 영국에서는 1773년 증권거래소가 생겼고 1802년 런던 증권거래소의 건물이 신축되면서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가 됐다. 이 당시 뉴욕에서는 커피하우스에서 증권이 거래되다가 1817년 증권거래소가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세계 1차 대전 후 미국 경제가 크게 번영하면서 미국은 영국과 금융산업에서 경쟁하게 되었는데 1929년 증시 대폭락 이후 1934년 증권거래위원회가 설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세계 제 2차 대전 후 미국 경제가 세계 경제를 지배하면서 월스트릿이 세계 금융산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런데 미국의 제조업이 신흥개발국으로 옮겨가면서 미국의 산업에서 금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졌고 따라서 금융업이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특히 1970년대 중반 이후 금융업에 대한 규제가 대폭 완화되면서 각종 파생상품과 헤지펀드가 등장하여 증시가 호황을 이루면서 월스트릿은 투자 열기로 달아올랐다.
이런 투자 열기의 덕분으로 월스트릿은 호황을 누렸다. 이른바 투자은행 시대가 열린 것이다. 투자회사는 직원에게 수백만달러의 연봉과 보너스를 지급하여 돈이 넘쳐났다. 이런 주식 호황은 과욕과 탐욕을 불러 주식가격이 천정부지로 솟았다가 거품이 꺼지는 붕괴를 거듭했다. 1987년의 블랙 먼데이와 1990년의 나스닥 거품 붕괴가 대표적 사례이다. 이런 널뛰기 장세의 주식시장은 투자가 아니라 도박장 같은 분위기가 되었는데 드디어 이번에 세계 경제를 파국으로 몰아넣은 금융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월스트릿이 얼마나 허구에 찬 곳이라는 것은 메이도프의 금융사기 사건을 보면 여실히 알 수 있다. 나스닥 증권거래소의 이사장을 역임한 버나드 메이도프는 월스트릿에서 수익성이 좋은 펀드를 만들어 유럽의 많은 은행과 일본은행, 헤지펀드, 자선단체, 세계 부호들의 투자를 끌어들였다. 그런데 이 펀드는 나중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원금으로 먼저 가입한 사람들에게 수익금을 주는 사기수법을 써 왔다. 증권시장을 비롯한 금융산업은 일반의 돈을 모아 자본을 형성하는 투자 루트이다.
미국의 산업화 과정에서 자본이 축적될 때 열심히 일한 근로자들이 알뜰히 돈을 모아 한 주, 두 주씩 사 모은 주식이 개인의 재산을 불렸고 이 돈이 기업을 키웠다. 그러나 이제 증권시장은 기업 투자가 아니라 주식장사로 돈을 따고 있는 도박장이 되다시피 되었다. 이 주식장사를 전문적으로 하는 헤지펀드가 판을 치고 있고 실물의 뒷받침이 애매한 파생상품이란 종이장이 고가에 팔리고 있다. 성실한 근로자들이 얼씬거리기에는 너무도 살벌한 곳이 되고 말았다.
오바마 대통령 당선자가 이런 월스트릿에 대해 개혁 감독을 강화하겠다고 했다. 너무도 지당한 말이다. 이번 금융위기로 인한 경제 위기를 수습하는 것이 급선무이지만 이 위기가 왜 발생한지를 따져볼 때 월스트릿을 그냥 둘 수 없다. 이번 기회에 월스트릿의 도박성과 사기성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미국의 금융산업과 나아가서 자본주의 경제에 근본적 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이기영
뉴욕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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