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신문에서 한국의 수능시험장면을 보며 꼭 저래야 되는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의 천문학적인 사교육비 통계를 접하면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광경을 보면서 나와 가까운 블루칼라 미국인 친구 가족이야기를 삶의 다른 면으로 소개하려한다.

지난주 오랜만에 이 친구 집에서 하는 크리스마스 오픈하우스에 다녀왔다. 우리가 사는 베이 지역에서 자동차로 두어 시간 걸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금광이 발견된 1800년대 중반 영미 문학의 대가 마크 트웨인이 왕성한 집필을 했고 지금도 매년 개구리 높이뛰기 시합을 하는 곳이기도 하다.
70에 가까운 친구 부부와 그의 아들 넷과 딸이 반갑게 우리를 맞았다. 이들은 거의 35년 동안 알아온 반가운 가족이다. 1970년대 내가 노동조합 감사를 하며 알게 된 가정이다.

고등학교 자격시험(GED)이 교육의 전부인 그는 처음 나와의 학력차이 때문에 좀 서먹해 했다. 하지만 30대 중반인 우리들은 금방 친해졌다. 그 가정을 통하여 미국의 전형적인 중산층 블루칼라와 접하게 되며 나의 미국생활을 익혀 가는데 큰 도움도 받았다.

동부 끝 메인 출신인 그는 고등학교 동창인 베벌리와 19살에 결혼한 후 아이가 생겨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뒤이어 2차 대전에서 돌아온 아버지 아래서 목수 일을 배웠다.

두 번 째 아이가 생기고 생업이 힘들어지자 그는 아버지가 정착해있던 산호세로 왔다고 한다. 당시 산호세 지역은 건설경기가 한창이었다. 직업이 안정된 노조원이 되려 하니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어 견습공으로 일하며 밤에 학교 다녀 자격증을 얻고 정식노조원이 되었다. 성실함과 지도력이 인정되어 노조 지도자가 되고 나이 40에 접어들며 산타클라라 벨리 4만여명 회원을 갖고 있는 목수 노조의 총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은퇴기금공단의 노조 측 이사가 되며 기라성 같은 회사 측(고용주) 이사들과 기금공단에 관여하는 공인회계사, 변호사들과 임금협상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대학 나온 사람들 이상으로 풍부한 지식으로 교섭에 임해 나갔다. 그는 노조관계 기관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신을 꾸준히 발전시켜 나갔다. 그가 대표하는 노조원들의 권익과 안정을 위하여 불철주야로 정진했다. 빠르게 승진한 그는 노조 내부의 불화로 54세에 은퇴했는데 은퇴연금이 그가 받던 연봉보다도 더 많았다고 한다.

그는 아들 넷과 딸한테 직업에 귀천이 없음을 가르치고 기술전수를 집안의 전통으로 삼았다. 그가 노조 지도자로 활약할 때 그의 아버지는 평회원으로 아들 휘하에서 일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마치자 그는 아이들이 직접 선택하게 했다. 대학에 가던지 아니면 평생 일할 수 있는 기술을 배우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보아온 아들 셋은 목수가 되었다. 목수도 세분화가 되어 하는 분야가 다르다. 시간당 30여 달러를 받는 큰 아들은 나이가 50이 넘어 5년 후에 은퇴를 하고 연금을 받으면서 그때 다른 일을 시작해 인생을 즐기겠다고 한다. 셋째는 10년 뒤에 막내는 12년 후에 은퇴 할 때 그들 나이 50중반에 연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그들이 지금 받고 있는 연봉이 6만달러 이상이다. 딸은 소시지 회사에서 제품관리 일을 하는데 얼마 전에 직장근처에 집을 샀다고 자랑을 한다. 코흘리개 때부터 알던 이 아이가 42살 중년 부인이 되고 지금은 이혼한 첫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얻은 두 딸한테서 손자 손녀 다섯을 두었다고 한다. 한때는 마약을 하여 내 친구부부의 속을 꽤나 상하게 했다.

이 젊은 할머니가 다음 학기부터 대학을 가겠다고 한다. 이 집에서는 셋째가 초급대학을 다닌 게 전부인데 이 딸이 뒤늦게 대학생이 된다.

우리처럼 자녀들을 대학을 보내는 열성은 없지만 내 친구 부부는 그의 아버지가 그랬듯이 자녀들에게 기술을 전수시켰다. 그리고 그들을 블루칼라 중산층으로 키웠다.

가끔 나는 내 한국친구한테 하는 이야기가 있다. 대학에 가고 싶지 않은 아이들을 억지로 돈을 써가며 보내지 말고 차라리 그들이 하고 싶은 일을 하게 하는 게 부모 된 도리가 아닌가 하는 이야기다. 미국은 한국과 달리 꼭 대학에 가야 번듯한 사회인이 되는 곳이 아니고 본인이 무엇을 하며 인생을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참 기분 좋은 방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어린 아이였던 그들이 이제 은퇴를 생각하고 나름대로 가정을 꾸민 사회인들인 게 보기가 좋다. 우리 이민자들도 블루칼라한테 배우는 바가 많다.

이종혁
경영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