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욱(논설위원)
인간의 한계. 그것은 참으로 극복하기 힘든 문제이다. 우선 인간으로 태어난다는 그 자체가 가장 신비스러운 일 중의 하나지만 그 안엔 한계가 담겨 있다. 인간의 한계는 곧 인류의 한계로 규정지을 수 있다. 인간 개개인은 단일체이지만 인간의 집합체는 인류가 된다. 인류의 한계. 인간의 한계. 이것은 둘이 아니라 하나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다.
인간을 나무로 보면 인류는 숲으로 볼 수 있다. 여하튼 인류든 인간이든 인간이 가진 한계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인간만의 숙제이다. 그러나 그것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언제까지냐 하는 것은 인간의 종말, 지구의 종말, 태양의 종말, 우주의 종말이 될 때까지라 할 수 있다. ‘나’라고 하는 개체는 ‘내’가 없으면 없는 것이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으면 세상도 없고, 지구도 없고, 우주도 없다. 이처럼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 니체가 말한 짜라투스트라의 바위 굴림처럼 ‘나’라고 하는 커다란 바위를 등에 짊어지고 태어난다. 어쩌면 이것은 불교에서 말하고 있는 ‘고’, 즉 고통을 의미할 수 있다.
‘나’라고 하는 이 고통의 짐.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인류가 넘어설 수 없는 큰 한계 중의 한계이다. 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인간은 없다.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영적이든, 그 어느 것에서도 나는 나로부터 자유 할 수 없다. ‘나’는 ‘내’안에 갇혀서,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죽는 그 순간까지 함께 안고 가야할 떨어지지 않는 바위 같은 커다란 짐인 것이다.
나라고 하는 고통의 짐은 나에게만 짐 지워져 있는 것이 아니라 인류 모두에게 지워져 있다. 인류 모두가 개개인적으로 ‘나’란 고통의 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그 고통의 짐 속엔 인간 본능의 ‘욕심’이란 것이 들어 있다. 욕심, 탐욕. 넘어설 수 없는 인간의, 인류의 큰 한계성이다. 인류의 모든 분쟁은 모두가 다 이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된다.
이렇듯, 인간으로 태어나면 모두가 다 ‘나’란 짐을 지고 고통 같은 욕심의 본능을 품고 살아가야 한다. 인간에게 ‘나’라고 하는 이 고통을 포함한 탐욕이 없다면 세상은 바로 천국이 될 것이다.
고통이 없는 세상이란 슬픔이 없는 세상이다. 고통이란, 즉 아픔이다. 나를 비롯해 인류에게 주어진 욕심이라는 본능의 고통과 아픔은 영원히 풀 수 없는 인간의 한계 중 하나다.인간은 거꾸로 살아 갈 수 없다. 과거로 돌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과 인류 역사의 한계다. 지난 시간은 다시 돌이킬 수 없다. 현재와 미래의 보다 나은 삶과 좋은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 지나간 역사의 발자취를 뒤돌아 볼 수는 있다. 그러나 재현은 할 수 없다. 개개인의 삶 또한 마찬가지다. 오늘이 지나면, 우주가 없어지는 그날까지 ‘오늘’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역사는 반복 된다’란 말이 있다. 이것은 과거와 비슷한 상황이 된다는 말이지 과거와 똑같은 날들이 다시 시작된다는 뜻은 아니다. 1초 전과 1초 후의 순간은 찰나라 하더라도 똑같을 수는 없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있는 순간순간의 생각과 판단도 이와 같을 수 있다. 오늘의 결단이 내일은 약해질 수 있다. 오늘과 내일이 다르게끔 되어지게 되는 것도 인간의 한계다.세월이 감을 멈추게 할 수 없다. 춘하추동의 변함 같은 자연의 법칙도 인간의 힘으로는 바뀌게 할 수 없다. 달나라에 인간이 발을 디딜 수는 있어도 달의 운행을 멈추게 할 수는 없다. 지구도, 태양도, 은하계의 운행도 마찬가지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운행하며 변해간다. 인간 몸속에 있는 세포가 변하여 늙어감도 막을 길이 없다.
인간의 몸은 미생물들이 살아가는 또 다른 삶의 터전이다. 수천억 아니, 헤아릴 수 없는 미생물들이 인간의 몸 안에는 살아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 미생물 중엔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다. 나쁜 미생물이 많아지면 인간의 몸은 파괴되고 죽음을 향해간다. 비정상적인 세포의 번짐인 암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몸을 어찌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가 여기에도 있다. 글은 아무리 잘 쓰려 해도 글 쓰는 사람이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한계 안에서만 표현 될 수밖에 없다. 글 쓰는 것을 포함해 다른 모든 것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다. 나로부터 자유 할 수 없는 고통의 짐. 본능인 욕심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과 인류의 한계. 자연의 힘을 능가하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 어제를 오늘과 내일로 대체할 수 없는 세월의 한계. 나쁜 세포가 생겨남을 막을 수 없는 인간 육체의 한계. 크리스마스가 가까웠다. 하느님이 인간이 되어 인류를 구원하려 내려온 예수 탄생의 의미. 인간의 한계를 넘을 수 있는 희망의 메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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